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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세계사 ㅣ 보르헤스 전집 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평점 :
보르헤스가 자신의 소설세계를 처음으로 알린 작품집이다. 그만의 독특한 글쓰기의 초기 작품들이어서 이후의 그것들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디딤대가 된다. 그의 작업은 예전의 누군가가 쓴 글을 시대의 정신으로 다시 쓰는, 오늘의 언어로, 현재의 환경으로 옮겨놓는 글쓰기이다. 또한 보통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상어를 벗어나지 않는 어휘, 평이(平易)한 문장에 대한 의지반영으로 더욱 친근한 이야기들이 되어 다양한 인간들의 읽기와 독해를 가능케 한다. 그의 말처럼 써진 글은 글쓴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읽는 사람의 고유한 글이라는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집은 소위 마술적 사실주의로 대변되는 그의 작품세계에는 이르지 못했거나 옅은 전망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는 초기작들이지만 그의 또 다른 특징인 다시 쓰기라는 상호텍스트성의 원형을 이해하는 데에는 어떠한 부족함도 없다. 여기에는 새롭게 쓰인 소설이 마치 이제껏 없었던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이란 생각에 대한 강한 거부의 의사가 있다. 이것은 새로운 글이란 것도 예전의 사람들이 이미 한 말을 변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오랜 시간 전에 누군가가 쓴 글을 오늘의 자기 언어로 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작이 아니겠는가 하는 신념이라 할 것이다.
『불한당들의 세계사』라는 표제처럼 수록된 단편들은 문자 그대로 역사 속에 그야말로‘불한당’- 도둑놈, 사기꾼, 해적, 살인자들 등등 - 이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시 쓴 글이다. 그러나 이 인물들이 암약하는 세상에서 그들이 죽음에 이르는 가면의 벗겨짐 이전까지 항상 불한당으로 지목되는 것은 아니다. 한 예를 들면, 이 소설집에 마력처럼 몰입하게 하는 원동력으로써, 책의 가장 앞에 있는 작품, 「잔혹한 구세주 라자루스 모렐」의 대상 인물인‘모렐’의 개인사가 보여주는 세상의 터무니없음이다. 희대의 말(馬)도둑이자 잔인성으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흑인 노예상(商)으로 사업영역을 넓히는 것인데, 이 방법이 또한 걸작이다. 노예의 도망을 부추기고 도망한 노예를 다시금 타 지역의 백인에게 팔아넘김으로써 그 수익을 서로 나누어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약속이 지켜질리 없는 것이지만, 노예해방을 부르짖던 남북의 대치라는 혼란스런 시대 상황에 따라 모렐은 정치적으로 노예해방 운동자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잔혹한 강도이자 가장 부도덕한 인신매매(人身賣買)범이 오히려 도덕적 정치인의 선도자가 되는 것, 곧 세계는 불한당들의 역사라는 아이러니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처럼 세계를 획일적인 불한당의 역사라거나 아이러니의 세계로만 의식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각지에 처박혀 있던 이야기들이 보르헤스의 재구성, 재편집이라는 이 희한한 글쓰기에 의해 이미 풍자가 되고 조롱이 되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바로 보르헤스의 이 행위 자체에서 어쩜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아들에 대한 상심으로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귀부인의 애틋한 모성을 이용하여 뻔뻔하게 살아 돌아온 자식으로 행세하는 사기꾼 ‘톰 카스트로’의 이야기, 일본 사무라이 전설의 한 토막을 다시 쓴 ‘무례한 예절 선생’의 불명예스런 죽음의 이야기, 이야기 속에 다시 쓰기에 대한 작가의 주장이 스며들어 “우리들이 기거하고 있는 지상은 하나의 실수, 덧없는 패러디”임을 선언하는 ‘위장한 염색업자 하킴’의 이야기 등은 인간세상에서 혐오감은“본질적인 미덕”인 것이 아닌가하고 묻는다.
그리고 짧은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뻔히 보이는(이것도 작가의 의도) 숨바꼭질 같은 유머가 빛나는 「장밋빛 모퉁이의 남자」라는 작품이 있는데, 절묘한 반전과 그 음울한 유쾌함이 거의 절대적으로 각인이 될 만큼 감성을 자극한다. 거들먹거리고 젠체하며 마을의 절대자로 행세하던 자가 여러 마을을 휩쓸던 상대가 눈앞에 나타나자 비겁하고 초라하게 도망치는 것과는 달리 보이지 않을 만큼 무시되던 존재였던 화자(話者)에 의해 소리 없이 처리되고, 정말의 승자가 누구였는지를 간접적이고 우회적으로 넌지시 암시하는 기교에는 그만 슬그머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게 한다. “그날 밤 루하네라(강자가 차지하던 마을 최고의 여성)가 나의 집에 묵으로 왔고”라는, 사실 이 반전의 문장이 소설의 처음에 있었음을 깨닫는 허를 찌르는 술수 탓에 작가의 재치가 더욱 좋아지는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의 문제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하는 데 있지 않고 기존의 이야기를 어떤 방법으로 재편성, 재해석하느냐에 있는가, 즉 문학의 절망적 본질에 대한 탁월한 탐구를 비로소 접한 즐거움은 이처럼 기대 이상의 것들로 그득한 포만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