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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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이야기에 이 만큼 완결성을 내재한 구성력을 갖춘 작품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쩜 행운일지도 모른다. 구태여 분류하자면 범죄 스릴러의 장르라고 하겠지만 ‘존 버든’의 소설은 이런 어정쩡한 구분을 넘어선다. 삶의 방향감각에 대해서, 인간과 사물, 어떤 대상에 대한 이해, 성 에너지와 같은 인간 내면의 독특한 심상들이 특정 사건의 해결을 향한 추리와 탐색이란 과정과 분리되지 않고 촘촘히 얽혀 뻔한 재미 이상의 진중한 무엇을 선사한다.

 

전작 <658,우연히>에서 느껴졌던 전직 뉴욕형사‘데이브 거니’의 자기 성찰과 삶의 정작 중요한 것들에 대한 이해로 다가서는 고뇌의 원천이 계속하여 저변에 흐르고,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취약한 정신세계를 조롱하는 지적도발 역시 이 작품의 세련됨을 더해준다.

소설 속에 인용되고 있는 노벨상 수상자인 영국의 극작가‘헤럴드 핀터’의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성되는 가장 큰 두려움은 말로 설명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것”이란 말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첫 페이지의 문장들은 그야말로 평온 속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담겨진 위협들로 엄청난 공포의 직면을 기대케 한다.

 

“뻔뻔한 년을 제거하는 작업은 여러모로 성공적이었다고 결론지어도 좋으리라. - 中略 - 거울 앞에 서서 미소 짓는 자신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또한 이 문장은 한 사람을 살해한 자의 도취적 독백과 모습을 암시함과 아울러, “제아무리 추리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를 쫓을 수 없었다.” 라는 한껏 고양된 자신감으로 아예 초장부터 도발해 댄다. 많은 하객들이 모인 결혼식에서 신부가 살해되었지만 현장에는 불가능한 단서들, 조작된 단서들 이외에는 흔적조차 없다. 다만 사건과 함께 사라진‘멕시코인 정원사’라 알려진‘헥터 플로레스’란 인물이 유일한 추적의 대상일 뿐이다. 이미 전작에서 경험한 답변이 불가능한 살인사건에의 봉착이란 동일한 플롯임에도 이 작품은 더욱 지적 깊이를 더한 복선들로 한 없이 몰입되게 한다.

 

소설의 키워드라 할 것들을 감히 정리해본다면 ‘섹스 중독’혹은 ‘성 에너지’, ‘경계 의식’혹은 ‘반사회적 인격 장애’, ‘잠복근무’혹은 , ‘감정적 이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어휘들은 소설 저변을 도도히 흐르는 이야기의 정체성이자 주제이고, 사람과 삶의 방식에 대한 빛나는 통찰적 언어들이라 해도 무방할 듯싶다. 성적 피해자였으나 가해자로서 폭력성을 습득하게 된 여자 아이들의 성 중독을 치료하겠다는 특수학교, 섹스 중독 치료분야의 권위자인 정신과의사가 소설의 배경을 가득 채우고, “다른 사람이 칼에 찔리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 움찔하는 하는 것처럼” 친절하게도 인간의 불완전한 경계의식이야말로 타자에 대한 연민의 기초임을 설명하며 사이코패스들의 완벽한 경계의식을 통해 인간 본성의 본질을 생각게 한다. (사이코패스들은 움찔하지 않는 단다!)

 

특히 거의 작품을 지배하는 정의라 할 수 있는 “상대가 믿어주기를 바라는 사실을 그가 스스로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기술”이 바로 잠복근무임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감정적 이득으로 인해 시야를 흐릴 수 있음을 지적 하는 대목은 우리들의 삶의 방향감각과 이해에 대한 정곡을 가리키며, 동시에 사건 해결의 단서로 향하는 길목을 제대로 바라볼 것을 경고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삶에서 자신이야말로 항상 부재중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과 같이 자신의 생각이 맞기를 무의식중에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처럼 소설은 하나의 시선과 언어에서 삶의 본질에 대한 사유와 사건의 추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단서로 동시에 작동한다. 같은 맥락에서 그 자체로 가공할 위력을 지닌 성(性) 에너지의 특징들을 통해서 사건의 완전무결성, 위험성, 왜곡의 현상들을 보여준다. “인간을 그토록 완전무결하게 집중시킬 수 있는 힘”으로써 성(SEX)은 인간의 고통과 욕망의 근저에 자리잡는다. 자 속칭 ‘개잡년’이라고 명명된 섹스중독의 여자들이 잇달아 살해되는 범죄의 본류를 따라가야 하는 험난한 수사는 감정적 이득으로 판단을 흐려서도 안 되며, 그 엄청난 파괴력과 집중성이라는 힘을 이해해야 하고, 인간의 가면이라는 태생적 본질을 망각해서도 안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이야기를 믿고 싶은 바로 그 마음이 우리를 파멸시키기에 인간의 상상력만큼이나 인간을 파괴하는 것은 없으리라는 이해일 것이다. 이 소설이 가진 미덕들을 얘기하다보니 스토리가 소홀해졌지만, 소설을 지배하는 암흑의 심연이 발산하는 압도적인 흡인력은 거부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폭력적이라는 말로 대체해야 할 것 같다. 재미와 사유를 동시에 잡아맨 걸작이라 아니 할 수 없다. 60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이 오히려 부족하다 할 정도로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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