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행복
레오 보만스 엮음, 노지양 옮김, 서은국 감수 / 흐름출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책의 표제처럼 경제, 정치적 위상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문화와 풍토의 지구촌 곳곳에 사는 사람들이‘행복’을 말한다. 또한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경영학 등 다채로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이다 보니 ‘행복(happiness)’이란 하나의 관념에 대해서 실로 다양한 정의와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생태환경에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가치로서 말하는가 하면, 개인적 가치로서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며, 물질의 소비와 쾌락은 결코 행복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사람에서부터 오히려 행복은 시간, 돈,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또한 행복에 접근하는 황금 열쇠란 없으니 개인의 내면을 풍부하게 하는 노력을 하라고 주문하기도 하고, 반면에 행복의 요소라고 줄줄이 나열하며 접근로를 말하는 이도 있다. 게다가 행복은 유전적 기질에 좌우되는 것이라는 결정론적 관점을 보이는 사람도 있으며, 유전적 성향이 기반이 되지만 결국은 개인의 가치지향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처럼 행복은 이 책에 즐비하게 정의되는 것처럼 단순하고 획일적인 정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이란 얘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느끼는 행복에 대한 보편적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순간적 쾌락이기도 하고, 성취를 향한 과정일수도 있으며, 내면적 평온, 정신적 해방감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그런가하면 내면 깊숙한 곳의 어떤 고유한 생명력을 느끼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대체 행복이란 것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그것에 접근하려 하는 것일까? 이 책의 많고 많은 행복의 편린들에서 자신의 내면에 공명하는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답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선택지가 많은 행복론들이 여기 있다.

 

나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에 살고 있다. 이 도시는 작은 땅위에 엄청난 밀도의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을 두고 극한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회적 재원과 물질, 서비스가 집중된다. 이 도시는 물질과 소비를 권장하고, 각종 미디어는 수입차와 고가의 브랜드 패션을 칭송하며 물질경제의 성장을 미덕이라고 부추긴다. 끊임없이 사양을 추가한 제품이 출시되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구분하여 소비 욕구를 자극하고, 이 물질 소유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곧 인생의 성공이고 행복이라고 주입한다. 이제 미덕이 되고 선이 된 물질, 성공의 척도이자 권력의 상징이 된 물질에서 나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이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 물질이 집중되어 있는 이 도시를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혹여 뒤처질까봐. 내 고향이기에. 물질만이 삶을 행복하게 해주리라는 믿음에서?

 

그러나 이 도시에 사는 대다수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는 행복을 쉬이 발견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명품가방을 들고, 유명 패션으로 치장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있는데도 삶의 만족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복합상영관에서 영화를 보고, 수입차에 몸을 싣고 근교의 레스토랑에서 음악을 들으며 식사를 해도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다. 사실 이유는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삶의 목적, 그 지향점이 물질의 획득에 있는 한, 자신들의 한정된 돈, 부족한 돈, 없는 돈,... 없는 데 쫓는 것처럼 인간을 비참하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항상 물질이 자신의 재원을 앞지른다. 그 도달할 수 없는 욕구 충족의 미완(未完)이 행복을 앗아가고 고통으로 불행하게 한다. 그래서 삶이 불만족스럽기만 하다.

 

책에는“돈과 소비가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뉴질랜드의 어느 교수도 있지만, 아마 그는 상당한 부를 소유한 자이거나, 소비의 절제를 깨우쳐서 적절한 소비에서 즐거움을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우리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 사람처럼 막대한 돈도 없을 뿐 아니라, 물신주의를 완전히 떨쳐내지도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복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물질을 통해 얻는 행복감, 그것은 대체 짧은 순간의 희열로 끝나기 마련이고, 곧 이 상태에 적응해서 그 순간의 쾌락은 부질없이 축소되고 사라진다. 소위 경제학에서 말하는 한계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만일 무진장한 돈을 가진 거부(巨富)가 되어 최고의 물질들만 소유하고 있다면 행복해질까? 이러한 물음은 이미 수 없이 있어왔고 또한 답을 얻기 위한 수많은 실험과 연구가 있어왔다. 또 뻔한 대답이 나올 것을 우린 알고 있다. 행복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처럼 우린 물질이 우리의 삶을 결코 행복하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행복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 책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행복을 찾아야 할 곳에 대한 진지한 사색들이 도처에 숨어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글들이 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의 발견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삶의 만족스러움과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자기 노력, 자기 발견, 자기 사유 없이 얻어 지는 것이 아니듯이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자신을 사로잡는 행복의 빛을 찾을 만큼 다양하고 풍부한 진실의 얘기들이 빼곡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자율성, 사랑, 대인관계”만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없다고 한다. 즉, 가족, 친구, 연인, 이웃과의 관계성이 삶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준다는 말이다. 이것은 유대감, 사회적 연대감이 우리 인간들의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확인케 한다.

 

그러나 이렇게 거창하고 추상적인 관념적 이해만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다. 행복 자체를 추구해서는 행복이 오지 않는다는 의미심장한 얘기들도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상적 슬픔, 아니 고난이 몰고 오는 슬픔까지도 행복에 이르는 통로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유독 깊이 닿은 몇 개의 문장이 있다. “진짜 행복은 소소한 일상 속에 있다.”는 말이다. 먹고사는 일의 사사로운 구체적 만족이 사실 전체 인생의 만족을 이루는 것 아니던가? 내가 무어 그리 대단한 것에서 행복을 느꼈던가? 그런데 이 소소한 것, 먹고 사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 먹고 산다는 것의 기준이 무얼까? 노쇠하여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굶지 않고, 헐벗지 않으며, 내 몸 하나 누워 비바람 막을 곳이 있으면, 이 정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면 족한 것일 게다. 그러하면 사사로운 구체적 만족의 최저 기준은 충족된 셈이다. 여기에 내 가족과 서로 사랑하고 보호해주며, 공고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으면, 그들이 서로 믿음을 주며, 그 믿음에 기댈 수 있으면 더 할 나위없는 풍요로운 삶이 될 것이다. 그러나 왠지 밋밋하다. 일상의 단조로움을 상쇄할 무엇인가가 있어야 할 터이다. 그렇다. ‘내 캔버스에 아직은 빈 공간’이 무지하게 많다. 이렇게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나는 내 인생에 투자할 시간이 많아지고, 그것을 내가 즐거이 관심을 가진 것에 보내게 될 것이다. 아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짜릿한 전율을 일으키는 쾌락과는 다른,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에우라이모니아’! 쾌락도 욕구만족도 아닌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자라던 고유 능력이 생명을 얻는 지속가능한 평온함의 행복을 알게 되지 않을까.

 

“인생은 상대 평가다.” 그 상대 평가의 끊임없는 비교의 잣대를 내게서 떨쳐 버리는 순간, 내게서 벗과, 이웃과 사랑과 관계를 격리시키는 물질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을 떨어버리는 순간, 행복은 성큼 다가오지 않을까? 순응과, 경쟁을 가르치는 교육밖에 모르고 성장한 내게 이 만큼의 행복을 말 할 수 있게 해준 이 책은 분명 행복의 길을 발견하게 해준다. 학교 교육은 ‘회복 탄력성’을 가르쳐 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오스트레일리아 학자의 말에서 인간이 진정 배우고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기 삶의 만족을 위해 자신을 책임질 줄 아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행복은 왜 개인적 문제이면서 사회적 문제인지, 국민총생산처럼(GNP)처럼 시장경제의 모호하기 그지없는 지표가 우리의 행복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음을 깨달은 작은 산악의 나라, 부탄의 국민총행복(GNH)의 불명확한 지표가 오히려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이유를 알게 되기도 한다. 설혹 슬픔과 고통이 내 삶을 침범할지언정 정말의 행복, 삶의 풍만함을 잃지 않는 길을 발켠케 해준다. 내 가족이 돌아가며 읽어보고, 친구들에게 한 권씩 선물해야 할 터이다....

 

“사람이 없다면, 결코 천국도 갈 곳이 못된다.” - 레바논 속담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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