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중에서 ‘생각’이란 말처럼 폭 넓게 쓰이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생각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뜻이 포함되어 있다. ‘오랜 생각 끝에 대답했다.’ 라고 했을 때에는 자신의 머리를 써서 깊이 헤아리고 판단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그녀 생각이 간절했다.’라는 말에서는 어떤 기억이나 일을 간절히 하고 싶어 하거나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상상했다는 의미로서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왔네.’라고 쓰이기도 한다.
생각의 의미는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왠지 쓸쓸한 생각에 잠겼어.’처럼 어떤 일에 대한 느낌이나 의견을 지칭하기도 하고, ‘그는 생각이 깊다.’와 같이 사리에 대한 분별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처럼 생각이란 단어는 특정 의미로만 규정지을 수 없게 한다. 판단, 분별, 사려, 상상, 기억, 느낌, 혹은 ‘내 입장을 생각 좀 해주게.’에서와 같이 성의나 배려의 의미로까지 광범위하다. 그런데 이렇게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생각이 오늘의 우리에게서 실종되고 있는 듯하다. 생각이 없는 말만 난무하여 생각을 할 여지가 없는 말이 공허하게 세상을 채운다.
생각은 진지한 헤아림과 판단의 작용이며, 간절한 염원이기도 하고, 사리분별과 배려, 그리고 누적된 지식의 산물인 상상력이다. 생각이 없다는 말은 그래서 헤아림도 간절함도, 배려도 지식도 없다는 다른 표현이 된다. 이런 말들의 무성함에서 우리가 어떤 진실과 진리를 캐낼 수 있을까? 천박하고 표피적이며 정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게다가 아무런 지식도 없는 말이니 이러한 말들이 사회를 지배할 때 사람들은 허탈하고 소외되어 좌절과 분노에 내 몰릴 것이다. 생각을 하려면 소음에서 한 걸음 떨어져 천천히 그리고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극한적인 경쟁에 매몰된 사람들에게 이러한 주문은 현실적 감각을 갖지 못한 비상식적 얘기로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이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시간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다. 올바른 사려, 판단, 분별을 위해서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 지식과 지혜는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서,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행동을 관찰함으로서, 그리고 우주자연의 현상들을 체험함으로서 축적되는 것이다. 이 경험에 대한 겸허한 학습과 이에 대한 시간을 배려하지 못하고서는 어떠한 행위도 진실의 공감을 획득하지 못한다. 서로 공감하지 못하니 교감하지 못하고, 곧 소통이 단절된다. 신뢰에 금이 가고 불신과 의심이 세상을 가득 채워 거짓이 난무하고 갈등과 적대로 분열된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꼭 이러하다. ‘생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조금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살아야 한다. 자신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내 주어야 한다. 한국사회에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생각 없는 무수한 말들이 또 생각 없는 무수한 말들과 부딪히고 진리와는 한참이나 멀어진 어처구니없는 결과로 상처만을 입은 사람들이 씨근덕거린다.
생각은 얄팍한 테크닉으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무슨 방법술이나 되는 것인 마냥 생각기술, 생각방법과 같은 상업주의에 편승한 자기계발류 따위의 책들이 서점가를 채우는 것을 보면 쓴 입맛을 다시게 한다. 그것들은 생각이 아니다. 상상력을 빼앗고, 자기학습의 진지함을 놓치게 하며, 세상의 사물과 현상에 대한 진중한 판단력을 결코 제공하지 못한다. 정말의 생각은 이러한 것이 아니다. 자기체험과 간절함과 성의를 기초로 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말하기 전에 생각을 하자.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들에게 주자. 그래야 우리들의 사회는 소통이 증진되고 분열이 봉합되어, 서로 인정하고 이해하는 화합으로 유쾌한 상식의 사회가 될 것이다.
* 권하고 싶은‘생각’에 관한 좋은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