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의 역사
조성권 지음 / 인간사랑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자연으로부터의 산물, 설혹 그것에 인간의 인공적 조작이 관여하였더라도 그 대상 자체가 좋은가 나쁜가는 항상 인간이 그것을 어떠한 태도로 바라보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우라늄이 악의 물질이라서가 아니라 인간과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는 용도인 핵폭탄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마약 역시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치료물질로 사용될 경우에 이것은 선한 의약제가 된다. 그러나 중독을 통해 물질에 종속되게 하거나 범죄적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면 비로소 악한 물질이 된다. 마약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이다. 즉 인간이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마약은 혐오의 물질로, 불법적 물질로서 배척되는 물질의 대명사로 악명을 떨친다. 무엇이 이렇게 인식하게 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아마 이 책의 내용이라 할 것이다.

 

마약의 기원과 이해의 역사

 

마약은 인간의 역사에서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까? 마약 식물에 대한 최초의 문자 기록으로 볼 때 BC3000년경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 대체로 원시 샤먼의 종교적 의식 및 치료용으로 이용되는 초자연적 객체로서 샤먼이 주술을 실행할 때 환상의식 혹은 환생의식을 통해 정신세계로부터의 교감을 얻는 매개 수단으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마약이 종교와 치료의 도구라는 긍정의 물질이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후 이러한 사용은 구약의 <출애굽기> 등이나 호머의 <오디세이>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데, 출애굽기의 ‘신성한 향유(Holy anointing oil)’는 대마초를, 오디세이에서 헬렌의 네펜테가 아편임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종교에, 그리고 치료제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묘한 것으로 이해되던 물질이 히포크라테스(BC 460-370)에 이르러 처음으로 과학적 객체로 새롭게 인식되기 시작한 모양이다. 신비함에서 과학으로의 변화, 즉 마약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샤먼에 대한 초자연적 종교적 의식을 몰락시키고 점차 세습적 권력 엘리트에 의한 정치적 의식을 선호하게 됨”으로써 지배력의 이전이라는 결과의 초래를 이해 할 수 있다.

 

고대 로마사회는 이렇게 마약식물의 신성에서 치료물질로 이해되어 육체의 고통을 줄이고 정신을 안정시키는 수단으로서 주로 양귀비에서 추출한 아편과 대마초가 주류를 이루어 대중에게 폭넓게 사용되었던 듯하다. 그러나 기독교의 대두는 이러한 마약식물을 금기시하게 되는데, 알코올이나 마약으로 인간 육체의 고통을 줄이는 것은 기독교 교리에 위배는 것으로 순수한 신앙으로서 육체적 고통을 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독단 때문이다. 이로서 마약식물은 과학적 기반의 물질로서 약리학 발전을 몰락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무려 1000년의 중세 암흑기에 접어들게 된다. 더구나 기독교 자체의 교리를 위해 부정하던 악마의 존재를 13세기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교부가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마약은 그야말로 악마와 공통의 언어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아무튼 기독교란 일개 원시적 종교가 인류사회에 미친 해악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듯하다.

 

결국 이러한 중세 기독교의 마약에 대한 인식 배경은 대기근, 자연재해, 흑사병, 백년전쟁, 장미전쟁 등 오랜 내전과 종말론적 현상으로 고립화되자 위기를 탈출하려는 시도로 대중의 통제를 시도하게 되는데 그것이 종교란 이름으로 무려 200여 년간 잔혹하게 수행된 마녀사냥이다. 기독교의 본질인 여성혐오를 배경으로 팽배한 사회 불안감의 해소구로 약초지식을 가지고 있던 여성들에게 마녀 혐의를 뒤집어씌움으로써 사회통제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당시 마녀 재판의 공통요소가 ‘여성+마약+섹스=사탄의 유혹’이라는 점은 곧 마약에 악(惡)이라는 의미를 편의적으로 고착화 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악의 선물로서 마약이 ‘신의 선물’로서 다시 명예를 회복하게 되는 것은 근대 이성주의, 계몽주의의 대두로 부터이다. 중상주의와 과학적 이성의 대두는 마약의 치유 성분에 대한 긍정적 발견을 의미하는 것이고, 아편을 함유한 셰리와인으로 제조된 로더넘과 같은 소프트알코올은 광범위한 대중적 약제로 확산된다.

더구나 모르핀, 헤로인, 코케인과 같은 새로운 합성 마약의 생산과 피하주사기의 발명은 마약의 대중적 확산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는‘중독’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마약의 이름을 보더라도 당시 마약에 대한 생각을 엿보게 되는데, 모르핀이란 바로 꿈의 신인 오르페우스의 독일식 표현인‘모르피움(morphium)’에서 따온 것이나, 독일 바이엘 제약회사가 헤로인을 모르핀의 치료제로서 추출 재발견하는 예에서 찾을 수 있다. 신의 선물, 긍정의 물질이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습관’과는 달리 개인 자신의 행위 통제력을 상실한 탐닉인 중독의 문제는 개인 습관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죄악으로, 즉 범죄로 간주하는 태도의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현대 마약사 - 범죄화, 그리고 권력화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마약은 이렇듯 중독이라는 통제 불능의 개인 습관에 범죄의 딱지를 붙인다. 벤담이나 J.S.밀과 같은 자유주의자들이 대두하면서 마약 중독에 대한 책임은 개인 자신의 범죄로 치부되지만, 사회구조적으로 약자인 노동자들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몰상식한 계급주의적 발상이란 비판을 면치 못하기도 한다.

실제에 있어서도 마약은 노동자들에게 자본가들이 의도적으로 공급하는 시스템을 낳는데, 광산주나 철도건설주들이 아편 공급범죄단과 연계하여 육체적 고통과 배고픔을 잊도록 하여 저임금으로 생산력을 착취하는 효과적인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마약은 자유주의자들의 말처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회구조적 책임이었음을 부정 할 수 없다.

 

이러한 사회구조적 차원에서의 마약의 이해는 현대 마약사에 있어서 중요한 관점이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일반 대중에게 마약의 침투는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차원의 이기심에서 출발한 역사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대이래 최초의 국가 간 불평등 조약이라 할 수 있는 ‘난징 조약(1842년)’이 바로 영국이 자신들의 무역 역조를 시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국에 아편을 무차별적으로 공급하여 개인과 사회를 피폐화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세관관리는 물론 부패한 권력자들과 결탁한 것은 말 할 필요도 없다.

 

이처럼 부패한 권력 혹은 정치적 이해로부터 마약이 범죄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이 19세기에서 21세기 오늘에 이르는 역사이다. 손문이 신해혁명을 위해 마약조직인 삼합회 홍방으로부터 자금을 조달 받았고, 장개석은 국공내전을 위해 청방으로부터 군사비용을 조달한 것은 마약과 정치권력이 연계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후 중국 공산당 집권이후 삼합회가 동남아로 마약생산기지를 이전 구축하는 과정에서 반공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미국이 적극적으로 묵인하고 지원하였던 것도 권력연계의 일례이다.

 

특히 오늘날 가장 많은 마약 중독자가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마약 시장으로 골머리를 앓는 미국의 현실은 부메랑 효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냉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반공조직을 지원하는 자금원으로서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서남아시아 지역의 마약 생산기지를 육성하고, 후원하며 또한 이라크-이란의 8년 전쟁에서 미국이 자국의 이해를 위해 마약밀매 시장을 어떻게 주도적으로 사용하였는가는 국제정치는 물론 마약조직의 국제화, 즉 범죄의 국제화가 이루어지게 된 동인을 목격하게 한다. 결국 자신이 키워놓은 악의 근원에 자신의 목이 죄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마약, 이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마약은 이제 국제적인 조직망에 의해 움직이는 거대한 권력이 되어있다. 정치권력, 국가의 이기심이 키워놓은 존재이다. 미국, 영국 등 유럽 등 선진국들은 마약의 밀매를 근절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마련하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적 밀매를 종식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콜롬비아 메데진 카르텔, 러시아 마피아, 멕시코 카르텔, 중국 삼합회 등 거대한 마약 조직은 합법적 비즈니스 시장에 진입해 있고 또한 부패 권력과 연계하고, 법집행기관으로부터의 안전을 위하여 테러조직이나 범죄조직과 끈끈한 동맹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인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더러운 동맹이라 할 수 있다. CIA+노리에가 친미독재정권+콘트라스반군+메데진 카르텔을 연결하는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은 마약조직과 권력의 추악한 밀원관계를 보여준다. 더구나 콜롬비아나 멕시코는 아예 대통령은 물론 국가권력의 핵심부가 마약조직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국가 기관에 정면 도전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이렇듯 거대한 자본을 축적한 마약조직이 초국가적 범죄조직이 되어 세계화라는 기류를 타고 전 세계에 확산되는 것은 이제 불가항력적이기만 한 것 같다. 한 지역을 차단하면 금 새 새로운 지역에 생산기지가 옮겨가는 풍선효과로 인해 그 종식은 요원하기만 하다.

 

금지와 억제 정책은 풍선효과로 인해 오히려 폐해만을 증폭시킨다. 강력한 생산지 봉쇄정책은 마약의 국제 거래가를 폭등시켜 범죄조직의 이윤만을 늘려줄 뿐이다. 다시 말해 수요의 변화 없이 공급을 막는 정책은 그 효과가 의심스럽다는 말이 된다. 네덜란드는 이러한 마약수요의 억제를 위한 하나의 정책 모델이 된다. 마리화나 같은 소프트한 마약은 비(非)범죄화 하고 범죄자가 아니라 환자로 간주하여 의료계를 끌어들여 개인 및 사회적 해악을 최소화하는 정책이다. 실제 중독자 수를 줄이고 AIDS 방지에 효과를 거두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고 한다.

 

국내법이 강화될수록 불법수익이 높아지는 마약밀매의 경향은 마약 유통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쾌락에 대한 인간의 본질적 탐욕으로 인한 유발이기에 그 근본적 단절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마리화나 같은 소프트 마약의 비범죄화가 하드 마약 사용으로의 전환 계기만 제공한다는 비판도 존재하지만, 마리화나 흡연이 알츠하이머병, AIDS, 폐암, 유방암의 치료와 환자의 고통을 경감하는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고 하며, 호주, 벨기에, 캐나다, 이스라엘, 네덜란드, 미국 15개주 등 일부 선진국들에서는 이러한 소프트 마약을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추세인 모양이다.

 

금지와 획일적인 불법화, 나아가 “완전 박멸 같은 실현 불가능한 전략보다는 소비에 대한 적절한 관리를 유지하면서 확산을 방지하는 선택적 통제전략의 추구가 장기적으로 실용적인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제언은 우리의 문화적 현실로 볼 때 고려해 보아야 할 정책으로 이해된다. 보이지 않는 백색 유령을 인간이 어떻게 접근하느냐하는 태도의 문제라는 말은 되새겨 봐야 할 생각일 것이다. 마약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마약의 종교적, 치료적 기원에서 악의 선물이 되고, 다시 신의 선물로서, 그리곤 중독과 권력의 부패를 상징하는 악의 언어가 되기까지의 인류문화사이자 마약정책의 흥미롭고 유익한 이해를 갖는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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