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 1 - 가난한 성자들 조드 1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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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학이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한 영웅의 서사를 그리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하게 하는 작품이다. 소설의 도입부인 ‘늑대 서사’는 과연 우리들의 영혼을 태고부터 신체에 각인 된 무의식의 시원을 자극하는 수려한 신화의 지대로 이끌어 격한 감동으로 충일하게 한다. 사랑과 모험, 그리고 생존과 번식, 달빛 사람과 사랑한‘알랑 고아’의 후손들, 새로운 인간의 시작을 알리는 생명의 집요함 같은 것. 푸른 하늘과 대지와 산과 강과 호수, 늑대와 말, 인간이 자연과 어우러져 빚어내는 적대와 조화, 오만과 겸허, 절망과 환희의 드라마가 지면을 가득 채운다.

 

소설 1권은 이 거대한 서사를 기반으로 달빛 사람의 후손인‘푸른 늑대 부족’의‘흰 뼈(적통)’인 소년‘테무진’의 청년, 성년에 이르기까지의 혹독한 시련과 소명을 깨달아가는 전환적 사건들의 기록으로 짜여 있다. 아버지‘예수게이’의 죽음으로 해체되고 분열된 ‘어린 몽골’의 반목과 대립, 약탈과 복수가 연속되는 피폐한 세상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가진 것 없이 도망 다녀야 하는 가난한 성자에게 어떻게 그의 벗과 형제, 가족들, 흩어졌던 부족민들이 규합되는 가를 보여준다. 어린 몽골이 성숙한 어른의 몽골, 국가로의 이행으로 다가가는 진통과 산고의 시기에 대한 이야기다.

 

눈과 얼음이 뒤덮은 혹독한 겨울의 메마른 자연의 폭력 앞에 모든 생명은 죽음으로 복종한다. 이 거센 건조기의 자연력이‘조드’이다. 조드가 엄습하면 가축이 전멸하고 생존의 경쟁에 내몰린 인간들은 약탈의 세계로 내몰린다. 이처럼 자연의 조드 못지않게 인간의 발자국이 파괴하는 초원으로 인해 협소해진 초원은 서로 간의 폭력,‘발자국 조드’로 더욱 무참해 진다. 씨족간의 충돌, 부족과 씨족의 충돌, 부족간의 충돌, 서로가 서로를 사냥하는 무한 폭력의 세상이 전개된다. 이 끝없는 분열과 보복의 반복은 어린 몽골이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위기를 의미한다.

        

소년 테무진이 성년으로, 어른 몽골을 위한 소명의 각성으로 나아가는 여정은 아마 내 뇌리에 깊이 이미지화 된 두 개의 명장면만큼 선명한 것은 없을 것 같다. 그 하나는 분열된 어린 몽골을 규합하기 위해 준비하는 청년 ‘자무카’가 백 필의 말을 이끌고 조드를 피해 자신의 명마‘회색의 새’와 함께 헤를렌 강의 초원으로 달려가는 그림이다. 냉혹한 추위와 거친 눈발 속에 산과 초원을 달리는 말들을 향해 달려드는 굶주린 늑대 무리의 공격, 대열을 흩뜨리려는 늑대의 전술과 이를 방어하려는 인간과 말의 대결, 적을 사지로 몰아넣기 위한 늑대들의 끈질긴 기만전술, 절대절명의 순간, 늑대의 전술을 꿰똟고 대열을 재정비하고 생환케 하는 테무진의 출현은 청년 장군 자무카와 함께 무수한 은유적 의미를 출발시킨다.

 

그리고 또 하나는 메르키드족의 대를 잇는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희생물이 되어 테무진의 아내인 ‘버르테’가 약탈(?)당하는 것인데, 빼앗긴 아내를 되찾기 위해 케레이트족의 칸과 자무카의 군대를 연합하여 4만의 기병 연합군을 도모해 매르키드족을 습격하는 장면이다. 적진을 가로막는 킬코강을 심야에 4만 필의 말과 병사가 도강(渡江)하는 묘사는 일대 장관이다. 장애물의 완벽한 사전 숙지, 결단력, 전략에 대한 신뢰감 등 지도자의 역량이 무엇인지, 게다가 인내와 양보, 겸허의 지혜까지 살펴내어 삶의 모든 정치를 담아내고 있다. 결국 이 걸출한 전환적 사건들의 기술(記述)은 테무진의 인물됨에 대한, 세상의 이치에 대한 진실 들을 말하고 있다. 의리, 복수, 신뢰, 인내, 사랑, 명분, 술책의 진리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아내를 찾기 위해 벌이는 이 전쟁의 정당성이란 무엇일까? 소설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남김없이 살해되고 말 것 같은 무서운 몰살작전이 계속되었다.”라고! 패덕에 대한 징벌이겠지만, 이것이 전쟁을 합리화 할 수 있는 것일까? 전쟁은 전쟁의 원인과는 무관한 대다수의 민중을 희생시킨다. 다분히 전쟁을 명분화하는 논리들이란 많은 도덕적 결핍을 가지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실, 이 소설이 서구의 영웅 신화, 다시 말해 서구중심의 역사관으로 인해 배제된 아시아적 사고의 복원이라 하고 있지만 그 이유로 영웅이라는 서구식의 방법론을 반복하는 것이 패착인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제 2권의 독서에서 소설이 취하고자 하는 본질을 확인하기를 기대해본다. 이러한 비판적 논의는 따라서 잠시 유보하기로 한다. 이러한 인문학적 관점을 능가하는 지혜의 목소리들이 소설의 문장들마다 번쩍이고 있기 때문이다.

 

테무진이 최초의 벗이라 할 수 있는‘보오르추’로부터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깨달음 갖게 되는 것인데, “벗이여 홀로 외롭겠구나!”라며, 테무진의 고독한 영혼을 어루만지는 진심의 언어이다.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그토록 따뜻하고 계산 속 없는 음성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세상을 오해한 것을 깊이 뉘우쳐야 했다.”고 하는 긍정의 태도이다. 또한 어머니‘후엘룬’의 목소리를 빌어 스스로 존엄을 지키기 위해 절망에 눈멀어야 하고 슬픔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마음의 연마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시사가 큰 문장이다. 더불어 말들을 거세하는 이유에서 “욕망에 허덕이는 것들을 거세하지 않으면 남을 물어뜯게 되어 있다.”는 답변은 절제의 제동기능을 상실한 소비지상의 지금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도 한다.

 

특히 “자신의 생애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이해하기에 인간은 너무 작아. 인생은 아주 크단다. 우리는 자기 발밑도 온전하게 볼 수가 없어.”라는 문장은 삶에 대한 겸손과 삶의 지대한 가치를 가늠하게 해준다. 세계 주류의 역사에서 배제된 몽골의 역사를 통해 자연을 제압하는 오만한 영웅의 역사가 아니라, “땅 위에서 겸손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날씨”만큼이나 대자연에의 겸허와 교감이 바로 인류의 정말의 정신을 낳았다고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땅의 소리, 별들이 풀밭에 속삭이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자연과 한 톨로 뒹구는” 인간의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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