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아말리아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키냐르의 작품에서‘빌라’는 아주 특별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어휘이다. 이 빌라에 대한 정의를 위해서는 저자의 불세출의 걸작 『섹스와 공포』의 문장을 인용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은 바로 “천으로 덮여 키 안에 들어 있는 파스키누스를 향해 일제히 집중되어 있는 공포어린 사람들의 표정이 있는 벽화”이다. 소설 『빌라 아말리아』에도 이 매혹을 마주하는, 또는 죽음에 직면한 놀라움인 ‘아연실색’이란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에서 그 관계성은 더욱 명료해진다. 이것은 다름 아닌 은밀한 쾌락의 공간이자, 은둔의 장소이며, 존재가 비로소 있게 하는 시원(始原)의 장소로서의 의미이다.

 

‘빌라 아말리아’ 역시 새로운 시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시원, 즉 영(zero)의, 출발의 시,공간이다. 소설은 평온이 부재하고, 끈질기고 집요한 타성에 젖은 현실을 청산하고 완전히 다른 시간, 오롯이 자기만의 새로운 시간을 다시 살아가는 여자의 이야기다.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수동적인 고집의 본성”과 결별하기 위한 여자, ‘안 이덴’의 작업은 어느 비밀 첩보원의 흔적지우기보다 더욱 철저하게 진행된다. 태우고, 버리고, 국경을 몇 차례 넘어서면서 자신에게 들러붙은 과거의 찌꺼기들을 제거한다.

 

이 변신의 과정에서 운명을 자각한 여자는 중얼 거린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나는 결연히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떤 것이 내게 결여된 그곳에서 내가 헤매고 싶어지는 느낌”이 드는 그곳으로. 나를 온전히 나로서 자각하며 사는 삶을 기대하는 간절함에 빠져있는 나는 지금 이 여인을 이해 할 수 있다. 내 영혼 역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미지의 공간과 시간에 대한 어떤 태곳적 그리움에 자주 눈물지으니 말이다. 그래서 도달한 곳, 이탈리아 나폴리의 이스키아 섬, 쪽빛 지중해와 따사로운 햇빛이 비추는 절벽위에 파란 지붕만을 보이는 외딴 집, ‘빌라 아말리아’. 그녀에게 오라고 부르는 집, 산의 내벽(內壁), 후미진 곳, 강렬하고 임박한 어떤 것이 그녀를 맞이한다. 그녀가 사랑하고 싶었던 것, 그 대상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던 것, 그것에 매혹된다. 그것은 아마 자연 한가운데에서 맞이하는 황홀경이고 새로운 “시간의 탄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수영하고, 혼자 걸으며, 혼자 먹고, 혼자 구석에서 책을 읽는다. 이 완벽한 고독의 쾌락이 더없이 부러워진다. 영국 여류시인 ‘캐서린 필립스’의 엘레지, 「오 고독이여!」가 흐를 때 ‘발라 아말리아’는 키냐르가 말하는 경직, 아연실색 그것이 되고, 나는 꼼짝없이 굳어버리는 죽음 같은 관능의 지고함에 빠져든다.

 

「오 고독이여                         O solitude

  어둠에 바쳐진                       my sweetest sweetest choice

  달콤하기 그지없는 나의 선택이여     devoted to the Night

 

 

  오 오 얼마나 나는                   O Oh how I

  고독을 사랑하는지」                 solitude adore!

 

"나는 더 이상 꼼짝달싹 못했다. 내 삶은 멈췄어요.“ 아름다움에 마비되어 그 안에서 죽어가는 것, 인간의 탐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 진정한 의미에서의 방에 가득한 외설스런 시간이 정지한 듯 흐르고,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겁나해하는 거짓말 같은 행복이 그녀를 충전한다. 여기서 그녀는 모든 사람이 된다. 그녀를 치료하는 의사 레오에게는 고독한 예술가이고, 그의 어린 딸 레나(마그달레나)에게는 폭풍우를 잠재우는 지배자이며, 그녀를 비로소 여자이게 하는 줄리아에겐 감미롭고 믿음직하며 육감적인 커다란 육체가 된다. 또한 초등학교 동창 조르주에겐 오만하고 경계태세이며 심약한 어린 소녀이고, 죽음에서 그녀를 구해준 샤를에게는 천재 음악가이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더욱이 누구에게도 명령하지 않는“ 자기의 삶을 살아낸다.

 

시간을 새로이 쓰기 시작한 그녀가 “삶이 몸 속 깊은 곳에서 점점 더 내면화 되었다.”고 말하게 되었을 때, 그 축복의 진정함이 꿈결처럼 나를 재촉하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든다. 내 시간을 탄생시킬 어딘가의 그 곳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애틋함에 젖는다. 나도 누군가의 삶을 환히 비출 수 있는 빛을 발산하게 될 그런 완벽한 고독의 세계를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잡다함이 가득한 도시, 그 사회적 근거지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져 비로소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안 이덴의 놀라운 표정, 정신을 몽롱하게 하고 죽음을 가져오는 에로틱한 그 시선을 그려보게 한다. “매혹은 언어 사각지대에 대한 인식”이란 키냐르의 말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다. 또한 죽음을 배경으로 반짝이는 빛, 삶의 신비에 깊숙이 매료되게 하는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