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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 Mystery Best 1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의 작가는‘엘러리 퀸’으로 공식 표기되어 있으나, 정작 집필자는‘버나비 로스’이다. 그런데 버나비 로스조차 본명이 아니고, 사촌형제인 ‘맨프리드 배닝턴 리(Manfred Bennington Lee) ’와 ‘프레더릭 더내이(Frederick Dannay)의 공동 집필명인 엘러리 퀸을 교대로 대표하는 또 하나의 가명이라니 복잡하기 그지없다. 이 정도의 신비주의 전략이 필요했다면 당시 추리소설의 치열한 경쟁상황을 짐작케 된다. 그래서인지‘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과‘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함께 세계 3대 추리소설로 이 작품이 불리게 된 것은 어쩜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러한 시장적 배경이나 평단의 평가에 현혹되지는 않았다. 사실 이 작품을 전부 읽고 난 후에야 세간의 목소리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 역시 최고 추리 걸작품이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추리소설 고유의 스릴을 포함한 지적 쾌락과 이상심리학, 사회학, 병리학, 그리고 윤리학적 토대에 선 심원한 도덕적 메시지까지 더해 문학적 균형은 물론 독자의 지적 체면까지 배려하는 세심함에는 그저 그 완결성, 완벽성에 저항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우선 이 소설의 첫 번째 매력적 특징으로 현란한 트릭이나 작위적 연결을 배제하고 순수한 논리적 기반에 의해 서스펜스와 스릴 등 추리문학의 강박적 쾌락을 완전하고 유연하게 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따라서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며 오직 독자 자신만의 추리력만으로 주인공들과 지적 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사건 현장의 묘사나 수사 정보는 소설 속 수사관이나 독자가 공히 공유하고 있으며, 나중에 추가적인 단서나 증거가 있었다고 우롱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소한 전환이나 대반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공감하면서도 자책하게 되는 몰입의 즐거움을 박탈하지 않는 구성과 전개의 탄탄한 축조역량이라고 할 밖에 없다.
그 둘째는 사건의 당사자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설정된 개성의 명쾌함이다. 언론의 가십(gossip)란을 단골로 장식하는 가문, 악덕과 천재성 등 세상의 이목을 모으는 기이한 집안으로서 추문으로 얼룩진 여성 부호‘에밀리 해터’를 중심으로 하는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잔뜩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5주전에 실종 신고 되었던 에밀리의 남편인 화학자 ‘요크 해터’로 추정되는 사체의 발견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의문에 휩싸였던 이 집안의 인물들이 세상에 노출되는 것이다.
요크와 에밀리 사이의 첫째 딸인 천재 여류시인‘바바라’, 알콜 중독의 방탕하고 성마른 아들 ‘콘래드’, 미모 뒤에 숨겨져 있는 악덕으로 뭉쳐진 막내 딸 ‘질’, 이 미친 듯한 해터 집안의 혈족이 아닌 아들의 아내 ‘마사’, 그녀의 두 아이들, 그리고 그 불구(不具)성으로 인해 더욱 주목 받는 벙어리이자 장님이고 귀머거리인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40세의 딸‘루이자’는 이들의 독특한 개성으로 인해 이미 강력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세 번째 미덕은 법이라는 인위적인 인간의 제도와 윤리 도덕적 관점의 충돌에 대한 성찰이랄 수 있다. 자칫 이러한 관념적 판단에 대한 내용이 소설의 흐름과 괴리되어 겉돌 수 있음에도 완전히 사건의 전개과정에 녹아들어 일체의 소설적 즐거움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례로 사건이 영원한 미제(未濟)사건이면서도 동시에 해결된 사건이 되어버리는 결말에 이르면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연민이 법적 경직성을 초월하여 이해를 구할 수 있는 것인지 처럼 즐거움 못지않게 인간적 본질에 대한 애정, 인간을 하나의 존재자 그 자체자로서의 이해라는 심원한 메시지에 절로 도달케 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더해 사건의 중심축에 놓이는 인물인 장님이자 벙어리이며 귀머거리인‘루이자’를 통한 오감(五感)을 동원한 범인의 추정과정은 물론 의도된 살인 미수, 위장된 살인 등 치밀하게 설계된 악의적 행위의 이면에 은폐된 진실의 추적, 소위 밀실구조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사건의 연쇄적 발생이라는 안달이 나게 하는 구조는 사건에 투입된 뉴욕경찰의 강력반 ‘샘’경감을 돕는 유명 연극배우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드루리 레인’이라는 수사 자문역에 거의 자신을 동일시하게 할 만큼 깊숙이 빠져들게 한다.
사실 수사관이 된 것처럼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직감이 작동하게 되는데, 이것은 작가가 여기저기 흩뿌려 놓은 정황과 증거들의 무의식적 조합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수사관들에게자신들의 저택이 장악된 침체되고 어두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악의를 발산하는 아이들’이나, ‘천재성과 광기’의 형질적 동일성을 야기하는 유전성의 질병과 같은 암시아닌 암시들과 전 남편의 딸인 불구자인 딸, 루이자의 가여움에 집착하는 엄마 에밀리에 대한 형제들의 적대감까지 한 집안의 광기어린 몰락을 예견케 하는 배경들은 사건의 동기를 다면화시켜 사실상의 무동기로 만들어버리는 발칙함으로 지적 경쟁심이 유발되게 하기도 한다.
한편 소설의 제목인‘Y의 비극’이 어떤 의미에선 이미 범인을, 소설의 모두를 말하고 있기도 하다. ‘비극’이란 단어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운명적 요소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Y'는 사체로 발견된 ‘요크 해터’의 이니셜 머리글자여서 이 Y가 실체화되는 곳에서 진실을 찾아야 할 것임이 암시되기도 한다. ‘홈즈’를 떠올리게 하는 수사 자문역 ‘레인’과 경감 ‘샘’의 듀오가 범인의 실체를 추리하는 매혹적 이야기가 탈규범적이며 존재론적이기 조차 한 인간의 성찰, 즉 범죄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유전론적 또는 환경론적 물음까지 하고있는 이 다층적 미스터리 작품은 추리소설 고유의 스릴과 지적 쾌락을 가히 완전하게 즐기게 한다. 예견된 반전조차 마치 그 지적 탐색의 동반자였다는 기분으로 즐거움이 될 만큼 어떠한 흠결도 지니지 않은 추리문학의 전범(典範)이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