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조종자들 - 당신의 의사결정을 설계하는 위험한 집단
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현숙.이정태 옮김 / 알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기술결정주의, 특히 정보결정주의 환경의 지배력 확장과 이러한 현상에 무기력하게 종속되어가고 있는 현실 세계에 대한 경종이자 비판이다. 정신없이 쏟아지고 있는 정보통신 기기들과 소프트웨어들은 각종의 융합기술을 동원하여 그 어느 때보다 생활의 획기적인 이기라 선전하면서 미디어의 세계로 인간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웹기반의 인터넷 환경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일상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을 정도에 위치하고 있어, 소수의 거대 포탈사이트는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사람들은 그저 사이트가 토해내고 있는 내용을 클릭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 그들이 노출하는 것만을 본다. 메인화면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뉴스를 비롯한 콘텐츠라는 것들은 감각적이거나 달콤한 유혹을 부추기고, 연예인 동정과 같은 거짓 이슈로 채워지고 있다. 정작 인간 세계가 이루어내기 위해 알아야 하는 중요한 사안은 보이지도 않는다. 보이는 것과 믿는 것을 동일시하려는 인간의 경향은 이들이 보여주는 것만이 세상이라고 믿는다. 결국 자기표현과 자기실현에만 가치를 두는 ‘탈물질주의’에 광분하는 기형적 인간과 사회로 몰아가고, 이렇게 공공의 문제가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자신의 열망만 부채질하는 인간들에게 정치는 사회의 정의나, 도덕성, 민을 위한 정책과는 무관한 인기만으로도 권력을 재생산하며 수월하게 지켜나갈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초기에는 인간들은 그 다양한 정보의 세계에 탄성을 외치고, 어떤 매개자 없이 직접적인 민(民)의 소통이 이뤄지며,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도 분산되어 다수의 민이 참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 열광하였다. 그러나 지금 어떠한가? 소수에게서 권력을 빼앗아오기는 커녕 오히려 그네들의 권력은 더욱 집중되고 공고해졌으며, 정보의 비대칭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체 30여년의 과정에서 어떤 현상들이 발생한 것이기에 초기의 기대가 이렇게 우울한 상황으로 전환 된 것일까?

웹, 미디어의 실패

저자가 시종일관 중점을 두어 설명하는 것은 ‘인터넷 필터’를 통한 ‘개별화’이다. 거대 사이트들은 물론 군소 사이트들 모두 자신의 사이트에 방문한 개인들을 추적하면서 예측 엔진들을 가동한다. 그리고 그 개인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실제 무슨 일을 했는지 추론하고 예측하여 행태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낸다. 그리곤 이 데이터를 이용하여 정보와 아이디어를 조작하고 개인들의 입맛에 맞는, 그들이 친근함을 느끼는 세상을 펼쳐낸다. 이렇게 “정보를 맞닥뜨리는 방법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현상을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 부른다.

이 필터버블, 즉 개별화라는 맞춤식 전개는 일견 소비자중심의 이상적인 진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참담하며 사악한 요소가 압도적으로 우세적이다. 개별화된 맞춤식 필터는 개인마다의 생각만을 더 주입하고 친숙한 욕구만을 더 찾게 한다. 그래서 타자의 견해나 심각하고 복잡한 세상의 문제, 다양한 세상의 현상을 외면하게 하고 중요한 공공문제를 사라지게 해버린다. 사람의 인식을 왜곡하고 인식의 쳇바퀴 속에서 편협한 인간들만을 증식시키는 것이다.
실제 구글에서 동일한 단어를 검색해보라. 평소 서로 술자리를 같이하는 친구이지만 한 사람은 증권분석가이고 다른 한 사람은 소설가라 하면, 그 두 사람이 같은 검색어를 입력 했을 때 전혀 다른 검색결과가 나열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주장의 근거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공통의 견해, 자기와는 다른 견해를 알 수가 없게 된다는 의미이다. 인식의 균형은 파괴되고, 자신의 견해만이 고착화되어 확증 편향에 빠져 세상의 소통은 단절되고 만다. 공통의 경험이 사라진 세상, 편협하고 이기적 인간들만 양산된다.

한편 소비자를 우선하는 듯 보이는 이 이상적 진화의 의도 역시 순수함과는 아예 거리가 멀다. 어떤 병명을 검색하면 동시에 컴퓨터에 당사자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최대 223개의 쿠키가 설치되고, 그 병과 관련한 서비스를 판매하려는 다른 웹사이트에 의해 개인의 온라인 행태가 추적된다. 검색 댓가로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우리의 행동을 비롯한 정보가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양상은 심화되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보험료도 뛰어 오를 수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에 관심이 있어 무심코 몇 차례 관련 사이트를 방문하면 보험사는 우리가 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사람이라고 판단해 버린다. 과연 어떤 개인이 온라인에서 몇 번 클릭 한 과거의 결과, 재산, 직업, 구매성향, 수입, 의료기록이 그 사람을 설명 할 수 있는 것일까? 더구나 현재의 소망이 미래의 욕구를 이해 할 수 있기나 할까? 이 기술 맹신주의가 낳은 오만은 인간을 점점 참혹한 구렁텅이로 내몰고 있다.

무책임하고 비도덕적인 정보기술자들

우리가 사는 오프라인 세상에서 법을 기획하고 제정하는 일련의 작업은 어느 한 사람의 독단에 의해서 결코 이루어지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루어 질 수도 없다. 그러나 프로그래머들, 코드를 만드는 사람들은 법체계나 법률가도 없이 만들고 완성되는 즉시 즉각적으로 시행한다. 이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자신들의 결정이 무엇을 초래하는지 전혀 무관심하며 무책임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같은 젊은 사업가는 이러한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의식의 요청에 대해 “원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말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소위 ‘매수자 부담의 원칙’이라는 사악한 상인의 의지만을 고수하는 것인데, 자신에게 천문학적 광고수입을 안겨주는 수십억의 사용자들에 대한 도덕적 책무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들 정치적 사고가 미성숙한 이들에게 엄청난 권력이 손에 쥐어진 것은 진정 인류에게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이 심화시키고 있는 개별화라는 필터버블은 도덕적 개념이 전혀 없는 기계시스템에 인간과 인간사회를 내맡기자고 광분하는 것이다. 귀납적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정보결정주의를 맹신하는 부도덕하고 무책임하며 인간에게 무관심한 이들의 행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교정되어야 한다. 지금의 온라인 시스템, 그리고 개별화를 강화해 나가는 시스템은 인간들을 일반적인 지식의 통합 대신 과잉 집중에 몰입케 함으로써 인간 내부의 정신과정과 외부 환경간의 상호작용을 방해하고, 동떨어진 아이디어의 병렬을 통해서 가능한 인간의 창의력과 혁신성을 실종시킨다.

더구나 개별화를 통해 획일화된 세상은 ‘J.S.밀’이 그의 『자유론』에서 말했듯이 “반증 가능성이 진리를 찾는 핵심”이라는 여지를 말살함으로써 점점 인간사회는 진리구현과는 멀어지는 어둠의 세계로 전락하는 길을 재촉하게 될 것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인터넷에 대한 애초의 기대인 권력 분산의 길이 아니라 집중화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처럼 맥락의존적인 귀납적 시스템의 추구, 고착화와 인식의 왜곡, 공공영역을 멸실시키며 정적인 개념의 개성으로 내모는 무한반복의 함정에 빠뜨리는 시스템은 여론의 조작과 정보의 비대칭을 심화시키게 된다. 지식의 비대칭은 곧 권력의 비대칭을 낳는다. 권력이 없는 민(民)에게서 다시금 권력이 있는 소수에게 정보권력을 재분배하게 되는 개별화, 필터버블은 공동체의 단절과 참을 수 없는 침체의 세계를 만들게 될 것이다.

필터버블의 대항과 감시를 위해서

분리하고, 조작하며, 의도적으로 세분화하여, 대화에 적대적인 공공영역을 만들어 내는 개별화를 향한 웹미디어의 행태는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기술지상의 광신적 부도덕성의 결말은 인류의 공멸이다. 결국 미디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비추는 개별화의 무조건적 추진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엇을 모르는지 보여줄 수 있는 미디어로서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 공동체간의 연결도 없고 겹치는 부분도 없는 단절과 불통, 소외의 하위문화가 아니라 삶의 시선과 관점을 폭넓게 인식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기술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용자가 알 수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자신들만의 규칙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체계가 아니라 투명한 시스템이어야 한다. 개별화의 진행은 필히 사용자의 승낙을 받아야 하며 실종된 편집윤리도 도덕적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국가권력 또한 기득 권력의 보존과 확대를 위해 외면하고 이들 거대 웹미디어 세력과의 결탁에 혈안될 일이 아니다. 개인의 행태를 추적하는 금지체계의 기술적 도입을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하며, 개인정보 통제권이 지금처럼 사이트에 있어서는 안 된다. 사용자에게 주어지고 승낙이 있어도 그 사용에는 구체적 용도가 개별적으로 피드백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정보사용규칙의 변경과 정보사용 감시체계의 도입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여야 할 것이다. 웹미디어 기업들에 옴부즈만 제도를 의무화하는 것도 하나의 제도적 장치가 될 것이다.
툭하면 터지는 개인정보들의 도난과 중개사건을 민사사건이라고 술수방관만 하는 국가는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토대를 말살하고 공공지향의 영역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소수권력이나 사용자인 대다수의 민중에게 공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 한다.

정보결정주의에 빠진 웹미디어의 위험천만한 행태를 치밀하게 탐색하고 그의 재앙적 문제점들을 인문학적, 기술적 지식의 토대위에 예리하게 분석해낸 정보기술의 현상학이라 할 수 있는 이 저술은 개인의 이기적 욕망이란 기형화된 자유주의적 삶의 실태를 냉철하게 통찰하고 있다. 우리에게 편협한 이해관계만이 모든 것이라고 주입하는 세계는 우리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존재치 않는 것으로 몰아 낼 수 있음을 알리기 위한 진심의 노력이 곳곳에 배어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웹미디어에 의존적인 오늘의 세계에서 코드가 법이라고 외치는 새로운 입법자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의 절대적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이 저술의 의의와 가치는 더 없이 중대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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