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
자크 랑시에르 지음, 허경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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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민주주의’란 우리에겐 결코 낯선 용어가 아니다. 또한 마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선명하지는 않지만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이며, 민주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 그리 저항감이 들지도 않는다. 게다가 민주주의는 선(善)한 것이지, 악(惡)한 것과는 결코 친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으며, 자신이 소속된 국가의 통치권력은 자신들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통치자들은 당연히 자신의 권리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대표자들일 뿐이라는 점에 의문을 달지 않는다. 대체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이해와 신념이 이런 환상을 갖게 한 것일까? 더구나 정말 우리사회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사회임에는 분명한 것인가?

만일 민주주의가 선한 것이라는 우리들의 믿음이 옳은 것이라면‘자크 랑시에르’는 왜 ‘민주주의는 증오의 대상인가?’하고 묻는 것일까? 누군가는 민주주의라는 것이 결코 옳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일 것이며, 증오할만한 명백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 누군가란 누구이며, 민주주의가 어떤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어떤 양상을 타나내고 있기에 그렇게 혐오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논의와 주장은 정당하고 타당한 것인지를 아는 것은 우리의 삶을 에워싼 환경을 이해하고 삶의 방식을 결정하는데 중대한 양식이 될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민주주의에 내재되 있는 그 이중적 모습과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정착되고 운용되고 있는지, 나아가 민주적 삶이란 것이 오늘날 어떤 형태를 띠고 있는지, 민주주의가 만들어 낸 세계의 실상을 성찰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진정 범죄적인가?

민주주의란 인민의, 인민의 대표의 통치 체제이다. 또한 누구도 타자에 대한 우월성이 존재하지 않는 원칙이며, 따라서 통치를 위한 모든 자격을 배제하는 무정부적 체제이다. 그러하다보니 개인 저마다의 욕망을 충족하려는 열정에 사로잡혀 무질서를 창조한다. 개인과 공통의 이익을 지닌 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기위해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각종의 요구로 혼란을 증식시킨다. 그런가하면 공동체를 위한 공공선에는 무관심한 인민이 양산 된다. 민주적 삶이란 이런 것이다.

이렇듯 민주주의는 인간들마다의 욕망에 기초한 혼란과 무질서를 속성으로 한다. 우리 사회를 조금만 응시해보면 공동체의 이타성이나 중심을 결여한 채 분산되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는 민주주의적 인간이 만들어내는 실상을 볼 수 있다. 즉 개인들의 무제한적 욕구가 지배하는 사회체제, 이기적 소비자인 민주주의적 인간들의 탈정치화된 삶의 모습, 소수자와 약자의 권리, 문화산업, 줄기세포 등에 무관심한 부(負)의 과잉을 목격하게 된다. 악(惡)으로서의 민주주의이다. 한편으론 사회에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분출하는 욕구의 과잉, 다른 한편으론 공공선에 무관심한 이중적 과잉으로 치닫는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 속에는 이기적 개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소비지향적 인간들의 경박함을 비난하면서 이것을 이유로 인민의 권력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일까? 민주주의가 비록 통치력에 압력을 가하는 요구들의 불가피한 증가를 의미하지만 이것이 없다면 폭정, 독재, 전체주의와 같은 적이 발생한다. 또한 소비주체로서의 개인화에는 민주주의 부재와 평등의 결여를 은폐하려는 거짓된 평등의 개념과 자본주의 경제의 무제한 성장추구를 대중적 개인주의 탓으로 돌리려는 음험한 책략도 숨어있다. 이것은 자신들의 거친 파렴치에 기초하는 이기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측들의 편협한 주장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통치되어야 할 사회도 아니며, 한 사회의 통치체제도 아니다. 그것은 통치불가능 자체이며, 이러한 통치불가능성에서 모든 통치행위가 그 기초를 찾아야 한다.”는 말처럼 정치적 장(場)에 집결된 과도한 에너지를 개인적 행복,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추구하며, 이중적 과잉을 제어 할 수 있는 조화의 장으로 전환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스캔들

우린 진정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통치하고 있는 것인가? 실상은 대다수의 인민이 소수의 권력 행사에 좌우된다. 공공영역을 담당할 권한을 가진 소수가 전체를 대표하는 대의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구의 엄청난 증가에 대처하기 위한 민주주의 실현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대의제란 민주적으로 보이게 하기위한 하나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마치 민(民)의 동의를 구했다는 엘리트들의 권력 유지와 행사를 위한 교활한 수단으로 출발한 것이다. 대의제는 민주주의의 정반대의 것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인민은 엘리트들의 기대와는 달리 권력을 행사할 때마다 통치원칙에 훼손을 가하곤 했으니 대의제는 매우 불안정한 타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의제와 민주주의의 모순관계를 잇는‘선거’는 대표성을 통해 엘리트인 소수 지배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지극히 효과적 수단이었으며, 더구나 사회적 동의까지 얻는 것이었으니 일거양득의 기막힌 도구가 아닐 수 없다. 실제 ‘대의제+민주주의’를 형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어느 곳이든 선거는 정권교체라는 형태 하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한 지배층의 재생산을 보장해주고 있으며, 자신들의 생명의 위협 없이 권력을 유지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통치논리와 민의 정치적 분열을 연결하는 위선적 논리로서‘국민주권’이 얼마나 허구의 산물인지를 설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한편 이들 통치집단은 거짓된 민주주의인 개인주의적 민주주의의 논리를 통해 민주적 개인들의 게걸스런 욕구는 인류를 자멸로 이끄는 대재앙이라 하면서 평등에 증오를 내뿜는다. 한국사회의 지배권력이 툭하면 복지포퓰리즘이라 매도하면서 인민을 향해 위협적 언사를 서슴없이 내뱉는 것은 대표적 실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공공영역을 끊임없이 축소하려고 하며, 자기들의 내부로 흡수하여 사유화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리곤 국가차원의 과두체제와 경제차원의 과두체의 결탁에 의해 공공영역을 장악하려 든다. 공공영역이란 엘리트 지배계층에 의한 통치와 민(民)의 통치라는 서로 반대되는 두 논리의 만남과 갈등이 충돌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사유화에 반대하는 투쟁이자 공공영역을 확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할 것이다.

인민은 공공영역에 대해 하나의 원칙을 구현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거부하여야 하는 것이다. 또한 사회 보호망을 마치 국가의 선물처럼 호도하는 통치권력의 간교함은 배척되어야만 한다. 이는 이들 지배계층과 지난한 노동 및 민주투쟁의 결과물이며, 인민인 자기 산물의 정당한 배분일 뿐이다. 대의제가 올바른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권력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조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 우린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지 않다. 과두제적 법치국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지배계층이 지적하는 거짓된 민주주의인 민주적 삶이라 부르는 악을 퇴치하는 그런 통치를 위한 각성이 필요하다.

결 어

지배 권력이 자신들의 민주주의 부재와 평등의 결여를 은폐하기 위해 인민을 내몰고 있는 민주적 인간의 삶이라는 환상, 얼빠진 소비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주주의를 마치 사회의 한 형태로 간주하면서 국가 과두체제의 지배를 은폐하려하고 불평등의 심화현상을 조건 평등 정책 만연의 탓으로 돌려 자신들의 이념을 정당화하려는 행태 또한 제대로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이중성은 본래 그러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오늘의 사회처럼 이들 지배권력에 휘둘려 무형의 시끌벅적한 군중의 혼란에 갇힐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민에 의한 엄격한 정부형태이어야 하고 민의 타협에 의한 사회형태이어야만 한다. 끊임없이 국가권력은 금권과 연합하여 민의 정치공간을 축소하려 하는데 열중한다. “공공영역에서 과두(寡頭)적 정부의 독점을 위한 탐욕을 지속적으로 파괴하며, 민의 생활전반에 대한 유산계급의 강력한 영향력을 끈질기게 뿌리 뽑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물론 악이고 범죄적이 될 수 있다. 그 이중적 모습에서 이기적이며, 소비적인 욕망에 기초한 무질서에 안주한다면 지배계층의 교활한 탐욕의 영속을 고착화시켜주는 비극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정당성의 근거를 불평등적 우연성 상태를 인정하는‘평등적 우연성’에 두고 있는 통치할 자격을 가지지 못한 인민의 고유한 권력이다. 누구와도 공평하게 권력을 나눠가질 수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선사해주는 아직은 유일한 덕목이기에 우리에겐 포기할 수 없는 선(善)인 것이다.

민주주의의 이중적 모습을 상반되는 정치철학 논의들과 프랑스혁명, 68 학생운동 등 역사적 사건들에 내재된 민주주의의 양상들을 통해 냉철하게 통찰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의 지구촌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왜 혐오와 증오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는지, 그 이면의 사실들을 한 꺼풀씩 벗겨내어 범죄적 민주주의라는 오명을 씻어내기 위한 인민의 자성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비난과 고발이 지니는 성격의 특수성을 파헤침으로써 실질적 민주주의와 평등의 의미를 감각적인 경험의 차원에서 규명한 21세기 민주주의가 처한 현상에 대한 탁월한 분석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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