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생각해
이은조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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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왠지 내 마음은 신산한 느낌을 비켜가지 못하는 것 같다. 제아무리 세속적 화려함을 구사하거나 생과 사의 초월적 경계에 이른 달관한 사람이거나를 막론하고‘자기’의 저 심연에서 말하는 것을 그대로 실현하면서 살기위해서는 시간적 희생은 물론 숱한 장애를 극복할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코 강요되는 것이 아닐지언정 온갖 사회적 속박을 무시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명료한 일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휘말려 끌려 다니다 보면 어느새 삶의 황혼이 다가서 착잡한 심정에 놓이곤 당황해 하는 것이다.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또한 표현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랑이 되었든, 정체성이 되었든, 그 무엇이 되었든, 조금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의 인물들은 그래서인지 자기가 요구하는 행복의 근원이랄 수 있는 사랑과 삶의 방식을 추종한다. 그것이 동성애적이건 이성애적이건, 자기 재능의 실현이건, 연대에 대한 의무이건, 행위의 자기 주도적 결정은 만족이란 걸, 미소와 평온을 준다. 연극 극단의 홍보 팀장이자 극작가인 스물여덟 살 미혼 여성인‘유안’을 중심으로 여배우인 엄마, 이혼녀인 한 여성과 정신적 동반자로서 동거생활을 하는 언니, 가족을 등지고 떠나버린 아빠, 자신의 불안정한 미래에 갈등하는 남자친구, 그리고 뼛속까지 연극인인 중년의 실장, 평생 고독한 삶을 살다간 할머니까지, 이들의 자기실현과 현실사이의 번뇌,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이 순환하는 삶의 변주곡들을 들려준다.

그러나 이 변주곡들에 실린 사랑의 현실적인 우리의 모습들은 의외로 낯설다. 아니 그 사실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지도 모르겠다. 만나면 음식을 먹거나 자기만(모텔)을 줄기차게 하는 유안의 사랑, 엄마와 엄마의 친구, 할머니의 동성애적 정체성과 같은 또 다른 사랑, 언니의 동반자인 이혼녀와 그녀의 딸이 조성해내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관과 사랑의 방식, 아내와 두 딸을 떠나 제2의 인생을 꾸려가는 아빠의 사랑은 이들 각각에 여하한 이론적 분석을 떠나 이것이 우리네들 사랑의 실제임을 보게 된다. 때문인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새로워진 삶의 방식을 확인케 된다.

한편 가난한 극단의 실장으로서, 연극의 지원자로서, 보조자로서, 자기 인생을 함몰시킨 중년의 남자가 돌연 지방 극단의 배우로서 자기 삶을‘바야흐로’새로이 시작하는 모습은 비로소 세상과의 타협이 아닌 자신의 재능에 대한 사랑의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칫 실패, 파멸 할 수 있는 인생 행복의 구원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게 한다. 여기에 극단의 주체가 되어 세상과 부딪히며 자기를 구축해나가는 여정이나, 쇠퇴해가는 아버지사업의 지원자로서 가족이라는 연대의 의식을 키워나가는 젊은이들을 통해 변할 수 없는 삶의 역사성, 건강성에 대한 믿음을 다지게도 된다.

사랑 그리고 삶을 선택하는 방식이 이젠 꽤나 주체적이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어제의 금기와 구속이 더 이상 자기의 목소리를 제약하지 못하는, 어쩌면 거대한 20세기 식 담론이란 것이 사회의 작동 원리로서의 힘을 상실하는 그야말로 다원화되고 개인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의 선명했던 이미지, 사랑과 삶의 원인이었던 추동력이 시간이 지나 퇴색되고 변색되어 흐릿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오늘의 사랑과 삶의 방식은 과거의 그것과 다른 모양이다.
일상적 피로에 억압되어 내면 깊숙이 가두어졌던 것들이 현대 여성의 도회적 감수성으로 진솔하게 그려졌다는 느낌을 갖는다. 사건이나 서사적 변화무쌍함과 같은 화려함, 거대한 사회적 선정성이 없음에도 세련된 정갈함으로 고상한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나는 내‘자기(individuation)’를 위해 이제라도 용기를 실현화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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