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노비스를 죽였는가?
디디에 드쿠앵 지음, 양진성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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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 타인간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인간의‘방관자 효과’를 설명 할 때면 대표적 사건사례로 예시되는 것이 ‘제노비스 신드롬’이라 할 수 있다. 당시의 신문기사들을 보면 27살 여성이 이웃들에 도와달라는 구원의 외침을 하는 32분간 살인이 진행되는 장면을 지켜본 “38명의 이웃 어느 누구도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38 Watched Murder -- And Did Nothing) ”라고 타인의 고통, 죽음을 방관한 인간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듯한 신문의 헤드라인을 볼 수 있다. 아무튼 이후 이 사건은 심리학적 한 현상을 표현하는 고유명사가 되었을 정도로 우리 인간들에게 어떤 근본적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소설은 이 유명한 심리학적 과제를 던진 사건의 증언들과 정황, 이후 판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도시 생활에 내재하는 개인의 소외와 공동체 의식의 결여를 되짚어 보게 한다.

1964년 3월 13일 뉴욕의 퀸즈 구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라는 실화를 토대로 재구성된 일종의 팩션인 이 소설은 익히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당시 목격자인 이웃들의 증언, 아니 변명들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을 자극한다. 왜 자기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웃 처녀의 잔인한 피살상황에 수수방관을 하였는지는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자기 인생을 가꾸어나가던 이태리계 미국인인‘캐서린 수잔 제노비스’가 자기 집이 있는 주택가에서 그것도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상황에서 38명의 이웃(실질적으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추정)이 마치 텔레비전 화면 보듯 지켜보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태도를 대체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해석하는데 중요한 실증자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소설적 구성의 측면을 무시하고 사실의 나열만으로 구성된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인간의 ‘다원적 무지’라든가 ‘책임 분산 효과’와 같은 너무도 유명한 심리학적 사례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 인문학적 관심에 묻히는 것은 이 작품이 각오한 한계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학문적 흥미와 관음증적 원시욕구를 건드리는 소재여서 흥미를 호락호락 양보할 수는 없다 하겠다.
살인당시의 장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가 하면, 살인자의 신원과 성향, 재판과정부터 목격자인 이웃들의 핑계이자 자기 방어를 위한 (도덕적)책임의 회피적 증언 등이 맛스럽게 배열되어 주제에 대한 의문과 다양한 인간 본성에 대한 사고의 재미를 더해준다.

나 같으면 그녀를 위해 뛰어나갔을까? 아 역시 자기중심적인‘나쁜 사마리아인’처럼, 퀸즈의 방관한 주민들처럼 행동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자문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이 방관과 무관심을 만드는 심리적 동기는 무엇일까? 우리의 도시란 곳은 이처럼 황폐한 곳일까? 하는 의문도 떠올리게 된다.
“목격자가 많으면 아무도 안 도와준다? ” 여기에는 모호한 상황에 맞서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결정할 때 우리 인간들은 타인의 인도와 도움에 의지한다는 ‘다원적 무지’의 심리가 깃들어 있으며, 결국 구경꾼들 모두 서로 타인에게 인도를 구할 경우 실제로 아무런 행동도 없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즉 아무도 행동하지 않고, 그러고 나서는 자기 위안적 판단으로 스스로의 심리를 보호하며, 적절한 핑계로 회피하는 것이 바로 본성인 것이다. 이웃인 목격자들의 증언을 보면 역시 동일한 이러한 범주 내에서 변명의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랑싸움인지 알았어요, 남녀간의 희롱이라고 판단했어요, 나서면 골치 아픈 상황에 빠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그랬어요, 사람들이 많다보니 다른 누군가가 신고할 줄 알았아요,... 등등 과 같이 책임분산의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소설은 살인자와 그의 평범한 일상에 대해서도 조명하고 있는데,  죄의식 없는 살인행위와 사이코패스로서의 성향이 일상과 부조화를 이루지 않는 모습은 더욱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방관자의 심리에 묻혀 가려진 범죄자의 죄악, 죽음과 시체를 탐하는 살인괴물의 악마성도 하나의 축을 형성하여 실화적 사건을 더욱 입체감 있게 재구축한다. 냉담했던 목격자들, 악을 행하는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악행을 보고도 저지하지 않는 우리들, 우리의 사회가 더럭 두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비극적 사건, 인간 심리의 치부를 드러낸 이 사건은 타인의 고통과 위험에 대한 우리의 행동양식 교정(矯正)이란 중요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유명한 심리학적 연구 모델로 회자되던 소재에 다각적인 관점이 입혀진 인문학적 성향을 지닌 독특한 소설이라 하겠다. 아마도 작품에 등장하는 뉴욕타임지의 편집장 "로젠탈(A.M. Rosenthal)"이 쓴“38명의 목격자들(Thirty-Eight Witness)"이란 저술의 소설 판(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흥미와 지적욕망을 아우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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