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의 비밀스러운 삶
아틀레 네스 지음, 박진희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해결되지 않은 수학의 난제 중 난제,  1과 그 자신으로만 나누어떨어지는 소수의 패턴 함수인 일명 제타함수 “ζ(s)는 s=x+iy에 대해서 생각할 때 x>1/2로 0은 없다.” 라는‘리만 가설’은 신비로움, 경이로움과 어떤 미지세계로 들어가는 은밀한 암호코드 같기만 하다.  리만의 이 가설은 물질세계의 정확한 묘사 도구임이 판명되어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원리를 발견하는 직접적 영향이 되기도 하였으니 150년 전의 천재 수학자의 직관력은 마치 신의 영역에 도달한, 아니 우주의 경계를 본 사람이 아닐까하는 상상까지 하게 한다.

리만가설은‘소수’의 일정한 성질을 파악하려는 것이고, 이를 설명하려다보면‘복소수’, 실수 사이에 숨어있지만 존재하는 수가 아닌 '허수i'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는 너무 추상적인 수가 되어 우리들이 직관하기에는 어려움을 겪는 수이다보니, 현실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없는 이 개념에 대해 무심할 밖에 없기도 하다. 아마 이 소설의 매력은 언뜻 이 알 수 없고 이해하기 용이하지 않은 세계의 비밀스런 그 무엇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 할 수 있을까? 왠지 우리의 원초적인 그 무엇, 삶에 본질적으로 숨어있는 어떤 것에 대한 비밀 같은 것, 그런 것 말이다.

소설의 구조 또한 은밀하기 짝이 없다. 실종된 수학교수의 컴퓨터 파일에 기록된 내밀한 일기와 작업일지를 훔쳐보는 것 같은 구성이다. 내용 또한 일탈의 열정과 환상, 관능적 향기가 배어있어 그 은밀함을 증폭시키다보니 자못 냉철한 이성만을 요구하는 건조하고 지루한 수학과 수학자의 자취를 좆는 이야기를 저항 없이 따라가게 된다. 비범하기를 희망했지만 어느덧 마흔 세 살의 중년이 된 평범한 수학교수는 자기 성취와 인생의 확신 과정으로서 19세기 독일의 천재 수학자, ‘리만’에 대한 평전 집필에 착수한다. 그러나 인문학적 글쓰기에 서툰 그는 작문수업에 참가하고, 남아있는 기록과 자료가 별반 없는 온통 비밀에 싸인 고독했던 리만의 삶과 수학적 성과를 극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고심한다. 이러한 고뇌는 단순히‘리만 평전’을 잘 써내는 것 이상의 무엇이다.

절대적인 추상적인 수인 음수 -1 은 같은 음수인 -1을 곱하면 미지의 세계에서 보이는 세계에 그 실체인 실수 1을 드러낸다. 그러나 허수i는 결코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 수학교수는 이 미지(未知)의 세계에 동화되고 어쩌면 함몰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허수의 세계로. 그래서 현실의 세계와 저 알지 못하는 세계의 경계를 허물고 그 복소수의 세계, 일탈된 심연의 그 어느 세계를 유영하는 것이다. 작문수업에서 알게 된 여인‘잉빌드’는 이러한 그의 삶과 평전작업에 완벽한 동반자가 되어준다. 20년을 함께한 아내와 나눌 수 없었던 자신의 내면에 담긴 목소리를 단 한차례의 만남에서 들려줄 수 있었고 또한 귀담아 들어주며 스스럼없이 자기 의견을 건네는 여인에게 편안함과 위안을 느끼는 것이다. 이 느낌은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열정으로 커가고 두 사람은 더욱 농밀(濃密)한 관계로 공고해지는데, 소위 “제곱해서 -1이 되는 허근i 처럼, 양과 음으로 형성된 우리의 인식 가능한 시스템의 경계를 벗어난 불안한 영혼”이란 개념과 어울리면서 잉빌드와의 관계는 과연 현실이며 현실세계의 실체적 상황인지에 대해 의문이 피어나기도 한다.

중년의 지극히 평범한 가장,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 곧 성년이 될 아이, 그리고 작은 몸짓만으로도 상대의 상태를 알게 되는 그런 아내를 둔 남자, 사회적으로는 어떤 성취의 결과를 수확하고 짐짓 안정되고 존경받는 명예를 향해 이동해야 하는 그런 나이여야 한다는 현대사회의 압박감은 이 수학교수를 결코 피해가지 않은 것이다. 그 심리적 동요와 번민들, 공허함과 뒤에 따르는 불안함은 가난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짓눌린 괴팅겐의 천재 수학자 리만의 고독한 인생과 겹쳐 시간적, 공간적 인식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을 것이다. 그는 그야말로 자기 자신을 자기 힘으로 나누어야 하는 가엾은 수, 소수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또한 복소수에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위험하고도 불길한 존재로서의 죽음, 저 피안의 세계도 보았을 것이다. 아니 수학을 제외하고는 그 풍경을 묘사하지 못하는 4차원 세계, 그 휘어진 공간, 이도 아니면 잉빌드와 헤어진 역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자신들의 또다른 형상, 즉 평행 우주의 세계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이 소설은 중년의 현실적 번민과 고통이라는 심리적 갈등을 통해 그 안에 잠재하고 있는 욕망과 일탈의 다양한 모습들을 조명하는가하면,‘베른하르트 리만’이란 천재 수학자의 삶의 기록을 기반으로 그의 수학자로서의 성장에 영향을 끼친 가우스,  베버, 디리클레 같은 대 수학자들과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리만의 가설을 담고 있는 당시에는 관심을 모으지 못했던 <주어진 수보다 작은 소수의 개수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 얽힌 사연등 마치 평전의 듬성듬성한 초록을 보는 것 같은 느낌까지 두 가지 맛을 전해준다. “환상은 미지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라는 이 다의(多義)적 구절처럼 수학적 성취를 향해 내 달렸던 한 천재수학자의 그것이 제시한 가설의 세상이나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갈망은 어쩜 환상, 이성이 도달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수학교수가 그의 작업파일에 기록하였듯이 “내 생각, 양심, 그리고 모든 죄가 흘러내렸다.”고 되뇔 만큼 설혹 그에게는 믿음에 반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이 죄악일지언정 복소수의 세계, 차원이 다른 세계의 허구, 상상의 세계가 간절히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절반에 이른 자의 자기 삶의 증명을 위한 아주 도발적이고 지적인 도전 이야기가 되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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