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의 회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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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꼬리를 물기시작하면 그 생각의 심연에서 빠져나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사의 회전처럼 돌아 갈수록 더욱 죄어지고 깊어진다. 그래서인데 표현되지 못한 욕망이란 타인의 시선, 기성의 가치와 제도에 억눌려 은폐되곤 하지만,  이러한 억압의 환경을 벗어나 독단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은밀한 내면의 욕망은 환상적인 자아도취가 되어 절제 없는 자기 심화의 외곬으로 빠져든다. 아마 그 끝은 어둠의, 악의, 죽음의 그 언저리가 되지 않을까?
무의식 속에 잠재한 욕망을 실현하려는 충동은 환상을 만들어 내고, 존재하지 않는 환상을 실재하는 것으로서의 믿음을 강화하도록 이끈다. 이 강화의 행위는 절대적인 욕망충족의 과정이므로 이에 대한 장애의 제거는 필수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유령(환상)을 보았다면 자신의 심리적 욕망을 투영시키기 위한 욕구의 실재(實在)화라 해도 실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오래된 소설이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를 선구적으로 탐색했기 때문이지만, 이를 더욱 매혹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은 부존하는 대상에 대한 진술과 믿음을 주변사람들로부터 승인받으려는 심리적 기만과 강요의 모습, 그리고 타자의 심리와 진실성을 자기심리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반사회적 성향 등 모호하지만 항상 자가당착적으로 작용하는 인간의식 흐름의 세련된 묘사라 할 수 있다.

작품의 도입부인 프롤로그를 제외하면 소설 속 등장인물은 환영(幻影)이나, 화자인 가정교사의 주인인 내용상의 인물을 제외하면 네 사람에 불과하다. 가정교사인 화자(話者)와 집사격의 그로스 부인, 그리고 삼촌에 의해 양육되는 고아가 된 어린 남매인 마일스와 플로라, 즉 구성원의 간결성은 폐쇄성과 권력이 용이하게 행사될 수 있다는 의미의 배경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선한 마음씨의 집사여인이나 아이들은 가정교사의 지적사고나 사회적 위치를 넘어설 수 없는 인물이며, 이것은 가정교사에게 더 할 수 없는 욕망 분출의 장소가 되고, 자기 의지대로 타인을 조종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한 것이다.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저택에 도착하자 화자는 저택의 여주인으로서의 지위와 자유의 행복감에 젖지만, 이내 첫날 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어떤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면서, 그 소리는 자연이나 외부에서 들려온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내부에서 울려온 소리라고, 웅크리고 있던 억압된 욕망의 현재화를 위한 잠재적 준비가 그녀의 내면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너무도 아름다운 어린 소녀와 고귀한 모습의 소년, 충실한 집사, 그리고 고즈넉한 저택의 환경은 충만한 애정과 소유의 집착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결국 이러한 환경은 그녀의 상상력과 기질, 허영심이 혼합된 산물로서 유령의 존재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화자는 결코 유령이 자신의 정신세계가 만들어 낸 존재임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독자들은 유령의 출현이 위선과 거짓된 상상임을 모호하지만 알게 된다. 이러한 정황은 자기“내부의 예민한 기질이 결국 모든 것에 대한 함정이 되고 말았다.”라던가, “환상에 사로잡힌 나의 끔찍한 습성을 내 동료가 놀라움과 동정심이 반씩 섞인 채”와 같은 식으로 암시한다.

결국 유령의 부존재를 아는 독자는 가정교사의 심리를 쫒게 되는데, 자신이 본 유령의 악마성과 위협으로부터 어린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보호막으로서 속죄하는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집사를 설득하고 동료화시키는 자기 확신모습이나, 무심한 순수함의 어린 아이들의 행위에서 그들의“노골적인 매력이 계산적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거나, 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아이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기만이라고 단정하는 판단에서 인간 본성으로서의 욕망이란 것이 사회의 제약을 상실했을 때 얼마나 파렴치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지 목격하게 된다. 이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천연스러움을 “계속 순진한 표정을 가장”한 것으로 인식하고, 예전에 아이들의 보호자였던 이미 망자가 된 주인의 시종과 전임 가정교사를 유령의 정체로 함으로서 악의적인 적대세력으로 정의하여, 확신을 강화하고 심화시키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에 이른다. 더구나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유령의 출현을 아이들의 은밀한 비밀로 간주하고는 아이들과 유령의 교통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진실을 추궁하고 강요하는 상황으로 치닫는데, 경계를 허문 낯선 존재로서의 유령에 대한 공포보다 환상이라는 무의식에 감추어진 인간의 추악한 욕망, 그 본성을 보는 것에서 오히려 수치스러운 외마디 비명을 지르게 된다.

마침내 소년‘마일스’를 추궁하던 끝에 그의 거짓 없음과 완전한 순수성을 보게 되지만, 욕망에 가려진 의식세계가 고작 하는 말이란, “만일 그가 순진하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고 자문하는 것일 뿐이다. 아이들의 운명을 자신의 욕망에 일치시켜 권력을 행사하는 가정교사가 아이를 절명 시키면서 내뱉는 마지막 선언, “악령을 쫒아 낸...”에서는 그만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꽉 죄인 나사 같은 숨 막히는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심리소설의 선구작(先驅作)이라 불리는 이유를 입증하듯이 독자의 의식흐름까지 지배하는 사악하고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 소설의 탁월성을 무엇이라 해야 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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