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관람차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7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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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을 쫓는 측면에서 얘기하자면‘격차 사회’를 조성하고, 사회의 저 꼭대기로 올라가려는 무분별한 욕망에 시달리는 오늘의 인간들, 사회의 보잘 것 없음을 어느 고급주택가에서 벌어지는 가족들의 히스테릭한 모습을 통해 조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사회는 양극화의 심화로 인한 계층의 차별화와 그 고착화를 위해 달려가는 사회를 격차사회라 부르는 모양이다. 여건이 되지 못하는데도 지니고 싶고,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부글부글 끓어대는 속물적 갈망은 한국사회의 우리들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을 것이다. 허나 이 작품의 묘미는 디테일, 즉 등장인물들마다의 심리와 행동, 외부에서는 알 수 없는 가족 개체들만의 내면, 서로 다른 계층의 의식과 행위의 적나라한 포착에 있다고 하여야 할까.

‘히바리가오카’는 명문 사립학교들에 인접한 언덕길 위의 고급주택가의 이름이다. 또한 넓은 땅에 고급스럽게 지어진 양옥들이 들어선 이 주택가는 일종의 상류층에 대한 사회적 기호이다. 이 지역에 진입하기만 하면 “나는 이런 곳에 사는 특별한 인간”이라고 믿게 되고 절로 걸 맞는 신분과 사회적 지위라는 사다리에 기어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곳의 자투리땅을 매입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생의 대단한 기쁨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옹색한 면적의 땅을 구입하고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싸구려 주택을 지어 이사한 그 가족에게는 과연 행복의 웃음이 피어날까?
기대와는 달리 이 볼품없는 가족은 불란(不亂)이 그칠 날이 없다. 계집아이의 사립중학교 입학 실패는 콤플렉스가 되어 가족 갈등의 근원이 된다. 엄마에게 ‘당신’이니, ‘그쪽’이니, 아빠에게는 “아저씨는 빠지시지”라고 망발을 거침없이 내뱉는 아이의 폭력적 모습은 읽는 내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울화가 치미는데, 아마 내 옆에 있었다면 싸대기를 올려 부쳐도 한참을 그랬을 것이다. 정말 인내가 필요할 만큼 못된 계집아이가 있다. 

사건은 이 점잖은 고급주택가의 정적을 깨는 계집아이 ‘아야카’의 천박한 소란과는 달리 이 보잘것없는 가족과 마주보는 고급저택에 사는 엘리트 의사와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는 자식들, 현숙한 아내로 구성된 가정에서 들려온 단 한차례의 고성에서 시작된다. 한없이 고상한 부인 같았던 의사의 아내가 남편의 머리를 내리쳐 살해한 것인데, 직접 신고하고 살인 당사자임을 진술했다는 것이다. 상류 계층의 상징인 동네의 명성을 둘러싸고, 게다가 사건의 진실에 대한 입방아는 물론이고, 사건 당사자의 자식들, 친척들에게 까지 죄의식을 뒤집어씌우는 악의적이고 치졸한 군중들의 언어폭력, 또한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못난 계집아이처럼 “교만한 마음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 모습은 더 없이 오늘의 추악한 인간들의 면모를 뚜렷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주택가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사람 좋아 보이는 아주머니의 탈을 쓴 부잣집 사모님”의 주제넘은 오지랖에서, 그 대단함의 위세란 것이 무지하고, 하찮으며 천박한 속물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가하면, 허영과 허위의식 속에서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온통 빼앗긴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인간무리들의 구차한 의식이 다시금 까발려 진다. 자신들이 기를 쓰고 축조한 욕망이란 탑이 한 없이 부실하고 불완전한 것임을 깨닫는 순간 발밑부터 허물어져 내릴 그 조악한 세상의 실체를 알았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상류와 하류로 구분하고 욕망조차 차별 짓는 세상 둘 다  한 번에 굽어 볼 수 있을 것 같은 관람차의 설치를 기대하는 사내아이, ‘신지’의 격차 없는 세상의 공존에 대한 희구는 왠지 더욱 간절한 진정함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변덕스럽고 모순적이며 양면적인 심리들을 공감 할 수 있는 언어화하여 들려주는 작가의 역량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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