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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추구와 발견
파트리크 쥐스킨트.헬무트 디틀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독일의 유명 영화감독‘헬무트 디틀’은 불면증으로 시달리던 한 때, 계시의 한 장면처럼, 아니“연극의 한 장면처럼”, “분명하게 어떤 형상을 이룬 후 내 앞에 떡 버티고”섰던 꿈의 해석으로서 이 시나리오를‘파트릭 쥐스킨트’와 함께 만들었다고 제작의 변을 말하고 있다. 아마도 흐릿하여 알 수 없었겠지만 사랑과 죽음과 구원에 대한 암시였을 것이다. 작품은 이 두 사람이 공동 집필한 시나리오로서 사랑하는 아내‘에우리디케’를 위해 지하세계로 뛰어든‘오르페우스’의 신화가 모티브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죽음을 뛰어넘거나 죽음까지도 굴복시키는 그런 사랑, “일생일대의 위대한 사랑”같은 거를 말하면 대개 정신 나간 사람 취급받기가 십상일 게다. 어떤 세상인데 사랑 때문에 죽고, 또 저승을 따라가? 더구나 현실세계에서 그런 사랑은 결코 존재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단지 환상이라고 말이다. 자신의 음악성에 낙심한 여성과 뛰어난 작곡가의 소위 첫 눈에 반한 사랑, 그런 것일 게다. ‘비너스(슈테른헨)’와 ‘미미’의 격정적이고 영원을 약속한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미미는 자신의 모든 예술적 이성을 쏟아 부어 음악사에 길이 남을 뛰어난 명곡들로 비너스를 최고의 가수로 만들어 낸다. 그러나 미미의 독백처럼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은 꼭 7년간만 지속되었을 뿐이다. “2천 5백번의 밤과 낮, 5백번의 밤은 행복했고, 2천 번의 낮에는 자꾸 문제가 생겼다.”
이별 후에 제기하는 절망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그들의 노래처럼 미미는 비너스를 잊지 못하고, 결국은 친구‘테오’와‘헬레나’의 그리스 별장에서 자살하고 만다. 트리스탄과 이졸데,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처럼 죽음은 구원의 빛을 던져주고, 비로소 미미에 대한 사랑의 간절함으로 비너스 또한 연인을 쫓아 하데스의 입구인 우물에 몸을 던진다. 지옥의 강 스틱스의 뱃사공 카론과 문지기인 케르베로스조차 매혹시겼던 오르페우스의 릴라의 선율처럼, 비너스의 애절한 노래는 지옥의 신들을 감동시키고 연인들에게 이승으로의 구원을 허락하지만 신화처럼 하찮은 사소함으로 미미는 다시금 지하의 세계로 멀어진다.
세월이 지나, 지하세계의 신으로부터 세 시간이란 이승에서의 삶을 허락받은 미미가 오페라극장에서 열연하는 늙은 비너스를 바라보는 장면, 그리고 광장에서 두 사람이 조우하여 과거의 연인들을 그리는 장면은 두고두고 뇌리에 남는 숙연한 이미지가 되어 마음에 둥둥 떠다닌다. 어쩌면 그렇게 이별함으로써 이 연인들의 사랑은 가장 위대해질 수 있었는지도...마법에 걸린 것 같고, 시적이며, 낭만적이고, 불가능한 그런 사랑이 되는 것인지도...사랑의 감미로움, 애틋함이 오르페우스의 아리아 선율을 타고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