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퍼의 복음
톰 에겔란 지음, 손화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인류의 기원과 종교에 대한 고고학적 소재를 지닌 이 작품이 넘나드는 영역은 우주생물학, 천체학과 물리학, 그리고 영적 신비주의에서 A.D.325년 니케아 공회의를 전후한 성서의 정경화에서 배제된 외경(外經)을 둘러싼 신학의 갈등, 첨단 장비로 무장한 현대의 고고학에 이를 정도로 상상의 공간이 무한히 확장되고 있다. 게다가 현재와 과거의 시간을 오가면서 사건의 진실로 다가가게 하는 치밀한 플롯과 작품 곳곳에 쌓인 수수께끼들의 파편을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엮어나가며 최고의 지적흥분을 불러오는 재미는 그야말로 과학 스릴러의 정수를 보여준다.

 ‘빛의 천사’‘루시퍼?’, 루시퍼는 타락한 천사, 아니 사탄, 악의 화신인가? 그 존재의 의미는 진정 무엇인가?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고고학 조교수인‘비외른 벨토’는 키예프의 수도원 큐레이터로부터 외경과 관련된 한 필사본의 연구의뢰를 받고, 내키지 않는 비밀유출을 돕지만, 곧 큐레이터의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된다. 66개의 촛불에 에워싸인 채 피한방울 남지 않은 알몸의 시신으로 발견 된 것이다. 알 수 없는 이단(크리스트교 입장에서 보면)의 제의(祭儀)를 행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 그리곤 공동연구를 하기로 했던 동료마저 동일한 형태로 살해되고, 이를 돕기로 했던 프랑스의 고문서연구자인 여성까지 연이어 人身供犧의 희생자로 발견된다.   


 점차 죄어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벨토에게 다가오고, 아이슬란드의 한 연구소에 의문의 설형문자로 써진 필사본의 해독을 맡기고는 살해자들의 연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네덜란드에 은둔하고 있는 사탄 연구자의 요청으로 로마로 향하게 된다. 소설은 여기서 불신과 믿음에서 갈등하는 벨토를 통해, 믿음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의외의 진실을 설득력 있게 펼쳐나가는데, 바로 벨토의 손에 들어온 「루시퍼의 복음」의 필사본을 건네줄 것을 요구하는 서로 다른 조직과 마주하게 된다. 양 쪽 모두 인류의 종말을 구원하기 위해 필히 자신들이 이 필사본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한다. 무엇이 인류의 영속을 위한 진정한 행위인지를 알 수 없을 때, 선과 악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일까?

일명‘루시퍼 프로젝트’의 완결을 위해 미국의 정보기관부터 고고학, 물리학, 우주천제학, 생물학, 신학의 인사들이 망라되어 구성된 비밀 조직으로부터 벨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필사본이 세 부분으로 분리된 루시퍼 복음의 마지막 부분임을 알게 된다. 사탄을 숭배하는‘드라큘라 기사단’의 죽음을 무릅쓴 필사본을 향한 무서운 집념을 피해, 루시퍼의 진실로 한걸음씩 접근하는 과정의 전율이 아찔하다. 결국 <모세의 오경>이 되었든, <에스마엘 서>나, <요한 계시록>등 신앙의 중요한 바탕은 항상 지구의 종말론에 이르는데, 작품 속에서 지적하듯이 “종말의 개념 없이는 존재의 영적 정화는 물론 삶의 목적이나 의미조차 찾기 힘들기에”, 다시 말해서 종말의 날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의 문제가 종교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할 수도 있기에 그 진실에 대한 인간의 집요한 탐색은 불가피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작품은 나아가 상징적 표현인 성서의 문장들을 그대로의 의미로 해석하여 그 예언적 문장을 실현하려는 터무니없는 근본주의자들과 진정의 의미를 과학적 진실을 통해 규명하려는 집단과의 갈등으로 귀결시킨다. 물론 이라크의 사막 한 가운데, 알 힐라, 옛 우르지역에서 전설의 바벨탑 흔적인 지구라트(ziggurat)를 발굴함으로써 과학이 근본주의에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의 결실은 그리 단순치가 않다.

지구 종말론의 실체는 무엇인가? 루시퍼의 복음에서 가리키고 있는 지구라트에 숨겨진 진실이란 무엇인가? 최초의 인간, 인간의 기원은 어떤 것인가? 날개달린 하늘에서 내려온 빛의 천사, 그들은 누구인가? 이 모든 것을 밝혀낸다. 구약에서부터 길가메시이야기, 고대문서들에 등장하는 거인족, ‘네피림’의 존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200명의 천사가 빛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구약의 말은 진정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하마르게돈, 그리고 아마겟돈이라고까지 의미를 오도한 ‘하르가-메-기도-돔’의 진짜 의미, “지구로 되돌아온다.”는 말의 진의는 무엇인가? 마침내 현대과학이 파헤친 진실은“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창조론”을 만들어 낸다. “우주에서 온 손님, 오우하(Ouah)”, 여전히 미흡한 진화론의 인류 발생학에 대한 답으로서 이 뜬금없는 듯한 과학적 상상력은 꽤나 설득력을 갖는다. 만약 「루시퍼의 복음」에서 말하는 1,640,000일 후에 되돌아온다는 그 누군가의 말을 신뢰한다면 2012년에서 2024년 사이에 빛과 함께 나타나는 그들을 기다려 볼 일이다. 고고학을 비롯한 다채로운 지적도구들, 진정 호감을 가지고 읽어 볼 작품이라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인류의 기원과 종교에 관한 정말의 탁월한 기획이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