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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비지 가든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비채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인물들이 발산하는 지성과 유쾌함, 그리고 우아함 때문일까? 작품 전체를 우울한 아름다움이 감아 돈다. 매력적인 사람들, 오랜 세월 지켜온 비밀을 잔뜩 품고 있는 듯한 피렌체 남쪽 투스카니 산자락 거대한 저택과 근처 골짜기에 조성된 작은 숲의 추모정원이 어울려 매혹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사랑과 욕망, 질투와 허영, 그리고 죽음의 신화가 잇닿아 있는, 그래서 가벼운 흥분과 설렘, 알 수없는 호기심이 몸을 가득 채운다.
케임브리지大 재학생인‘애덤’은 지도교수인‘크리스핀 레너드’교수가 졸업논문 주제로 제안한 투스카니 지방의 작은 정원을 연구하기 위해 피렌체로 향하고, 교수의 옛 친구인‘프란체스카 도치’여사의 저택이 품고 있는 작은 추모정원의 예술적 진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다. 1577년‘페데리코 도치’가 직접 설계하고 조성하여, 죽은 아내‘플로라’에게 바쳤다는“추모정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빽빽한 호랑가시나무 숲이 위협적으로 조성”되어있어,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무단으로 침입한 듯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의 부정한 의도를 감지한다.
400년의 세월을 간직한 작은 정원이 400쪽에 이르는 작품을 가득 채울 정도의 마력을 뿜어내는 것은 예술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성한 지적 향기 때문일 것이다. 정원에 세워진 조각상들과 부조들의 조사를 위해‘오비디우스’의『변신』과 『달력』을 통해 유추하지만, 죽은 아내를 표현한 조각상의 얌전을 빼면서도 유혹하는 듯한‘추모’와는 조화롭지 못한 몸짓은 더 이상 연구를 진척시키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히아킨토스’,‘나르키소스’,‘아도니스’ 등 전부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은 부조들을 보면서,‘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기억에 이른다. 수세기 동안 지켜진 침묵을 풀어내려는‘애덤’의 일과는‘푸생’의 풍경화처럼 펼쳐진 낭만적 배경, “무심한 듯 어떤 허영도 담고 있지 않는”도치여사의 손녀인 아름다운 여인‘안토넬라 볼리’의 사랑의 지원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간다.
24살 안토넬라의 나이로 추정해보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57년이 되고, 독일군이 퇴각할 때 살해되었다는 도치여사의 큰아들‘에밀리오’와 굳게 잠긴 저택 꼭대기 층의 비밀은 시간의 근접성으로 현재화되어 정원의 비밀에 더해 이야기를 더욱 미스터리한 국면으로 이끈다. 죽은 에밀리오의 사진을 애덤에게 보여주는 도치여사의 행동, 유전적 형질표현을 통한 출생의 비밀, 저택과 소유토지에 대한 탐욕을 보이는 둘째 아들‘마우리치오’까지 가세하여 사랑과 상실, 욕망이라는 영원한 인간의 메시지가 도치 저택을 휘감아 돈다.
“이별의 시간이 도래하여 우리는 각자의 길로 헤어지니, 나는 죽고 너는 산다. 어느 것이 더 나은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는 소크라테스의 웅변이 새겨진 추모정원과 폐쇄된 꼭대기 층은 혐오와 증오를 상기하는 교묘한 상징으로 전환된다. 화려함과 쾌활함의 이면에 간직된 야만의 비밀들이 우아한 지성의 내음에 실려 복선과 반전조차도 예술적 문장을 배반하지 않는다. 달콤 쌉싸래하면서도 조금은 위험한, 그러나 결코 미적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미스터리의 수작(秀作)이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