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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거짓말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조작하는가?
마이클 캐플런 & 엘런 캐플런 지음, 이지선 옮김 / 이상미디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저작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낳는 사회의 현상들에 도사리고 있는 믿음의 실체를 파헤친다. 그래서 그 믿음들에 내재하고 있는 무수한 오류와 위선, 기만을 만들어내는 근원의 탐색은 생물학적 반응으로서의 본능을 중심으로 인지과학, 진화생물학, 행동경제학을 넘나들며 신랄한 분석과 이해를 만들어내어 우리들의 불완전성과 몰이해를 냉정하게 되돌아보게 하고, 화합과 협력, 결속과 유대, 자유와 평등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사회를 위한 자기성찰의 지혜를 제공한다.
우리 인간들은 현실의 일상에서 결코 이성적이지도 않으며, 전통경제학이 말하는 것처럼 합리적 선택을 하는 경제인도 아니다. 또한 빈번하게 현실을 왜곡하는 인지오류에 빠지며, 많이 알고 있다는 오만으로 엄청난 실패를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인종과 지역, 이념과 종교 등 수많은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갈등을 생산하고, 저마다의 도덕율과 정의를 부르짖는다. 그럼에도 개인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과 판단, 행동은 정당하고 정의라고 주장한다. 무엇이 잘 못된 것인가? 개인마다 진실과 진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 사회의 안정성이 지속될 수 있을까?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일을 처리 할 때마다 진리의 협상과 타협을 하여야 할 것이고, 세 사람이 모이면 또 다른 질서와 규범을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수없는 갈등과 충돌, 그 혼란으로 얼마 되지 않아 인간이란 종은 아마도 멸종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신념과 행동의 오류를 낳는 것일까? 이는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닌가? 저자는 이 원인을 인류의 역사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속도를 능가하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오래된 마음(구석기 시대의 뇌)이 적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 차이는 인간 스스로를 궁지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우리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깃든 다양한 오류가 백과사전적으로 망라되어 소개되고 있다. 아마도 우리들의 마음과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이 오류의 모습들이 여기에 모두 진열되어 있는 것 아닐까 할 정도로 그 절망적 풍부함이 지천이다.
흥미롭고 날카롭기 조차한 오류의 사례들이 빼곡하지만 특히 우리사회에서 요즘 벌어지는 도덕성과 정의, 기후변화와 자원의 고갈과 같은 생태계의 문제, 그리고 이념과 종교와 같은 사상의 대립, 전문성으로 무장한 지식의 오만이 야기하는 문제점의 분석은 유독 관심을 집중시킨다.
인간의 심리적 기제를 말할 때면 단골로 등장하는‘죄수의 딜레마’와‘최종게임이론’은 바로 합리성이나 효율성과는 다른 결정을 하는 인간의 대표적 오류이다. 인간에게‘공정성’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를 말하는 것으로 이성과 합리성을 가진 존재라는 인간의 정의를 완전히 파기한다. 여기서 우리는“강한 상호성”이란 의지를 발견하게 되고, 균형을 잃어버린 불공정이 발생하면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공정성이라는 정의를 주장하고 분노를 표시하는 사회적 대등관계를 중시하던 원시시대의 우리의 뇌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한편 사회를 지탱하는 법칙의 근간인 우리가 도덕성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이성적이고 보편적인 것일까 하면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자유를 위해서 상대를 죽이고, 정의를 위해서 또 상대와 싸운다. 도덕성이 왜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는가. 도덕은 감정적이고 추상적 요소에 의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사실 엄청난 충격을 가져온다. 위선, 배반, 무자비, 비방...같은 잘못에 대한 감각은 직관적인 동시에 무조건적이며, 단지 불쾌감을 자극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느끼는 것이란 얘기다. 또한 도덕적 감정이란 영혼에서 자발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중재와 자존심을 만족시켜줄 만한 대안과 같은 집단내의 추상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역과 인종과 문화와 관습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랄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이 원시시대의 뇌가 저지르는 기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누구나 이용 할 수 있는 공개된‘공유지의 비극’이론처럼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이 불일치 할 때 인간은 사적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려는 이기심이 앞선 나머지 모두가 손해를 보는 비극을 자초한다. 일례로 전 세계에 개방된 공유지인 바다에서 참치는 이제 멸종의 위기에 처해있다. 이처럼 광물자원, 야생동물, 열대우림은 고갈되고 남획되어 공멸을 재촉한다. 또한 고정관념과 편견은‘그들’과‘우리’를 나누고 서로의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혐오를 부추기고 적대를 낳는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내재적 공동체의식이 직감과 본능적 감각들을 제어하는 한낱‘인슐라 ’라는 신경물질에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와 종교의 문제에 이르면 인간들은 이성을 상실하고, 극단적 감정에 휘둘린다. 여기에는 논리도 적용되지 않으며, 성장과정에서 습득한 저마다의 개념들에 입각한 동기에 따른 추론 결과를 사실인양 포장하고 그것에 강한 믿음과 정당성을 주장한다.
우리는 이처럼 이 저작에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오류를 만들어내는 근원을 알게 되고, 그 오류로 인한 인간사회의 위기를 직시하게 된다. 문제의 원인과 현상을 알게 됨으로써 우린 이들을 통제하고, 전환시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분리와 구별짓기와 배반과 비난, 혐오와 분노를 화합과 교감으로, 협력과 결속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영역 방호의 신호로 발생한‘춤’은 같은 영역을 공유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또한 웃음은 상호신뢰의 표현으로서 진화한 산물이란다. 함께 춤을 추고 미소를 교환하는 인간관계에서는 결코 싸움이 잉태되지 않는다. 이에 더해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의 ‘엠마’를 인용한 여성의 성 선택의 흥미로운 일화와 함께 소개되는 비록 “두 환상의 교환, 두 피부의 접촉 이상은 아닌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세상을 움직이고, 서로에게 헌신함으로써 서로를 완전하게 한다.”는‘사랑’의 정의는 인류를 지배하는 엄청난 오류에 대한 희망의 언어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관념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이러한 대처가 궁극의 해결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지만, 경험을 단순화하도록 설계된 뇌가 조작한 허구에 기만당하는 인간들이 무작위성으로 가득한 세상에 의미를 주입하며 살려고 바둥대는 그 진실을 대면케 하는 것은 이 저작의 위대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