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데이비드 뱃스톤 지음, 나현영 옮김 / 알마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저술은 단순히 아동의 노동과 성 착취에 대한 반복되는 줄거리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이러한 현실의 배후 숨어있는 세계의 인신매매 및 노예노동의 추악한 실태에 대한 고발과 노예매매업자들의 범죄경로와 사슬 분석, 노예의 구출과 사후관리프로그램 등 구호조직과 운영현황의 검토와 같이 세계노예시장의 중요한 메커니즘의 이해를 통해서 노예노동에 의존하는 불온한 경제를 뿌리 뽑고, 세계의 선량한 사람들을 향한 구호에의 참여 제안을 요구하는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리 쉬이 접하게 되는 표현이 아닌 이들 노예노동이 대체 실감이 나지 않아 먼 나라 남의 이야기정도로 들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과연 남의 나라 이야기일까? 그리고 우리나라 이야기, 내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무관심할 수만 있는 것일까?

불과 수일 전,‘제임스 레바인’의‘인도 뭄바이’의 사창가를 배경으로 하는『블루 노트북』이라는 9살 소녀의 성노예로서의 삶에 관한 작품을 읽어내면서 통렬한 아픔과 분노에 가슴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은 우리와는 무관한 부패하고 무능한 남아시아의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화정도로 마음에서 떨쳐냈던 기억이 새로워진다. 이러한 일이 결코 우리의 사회에는 존재치 않으리라는 무지한 위안을 하면서 말이다. 허나 책장을 넘기자마자 한국은 인신매매와 노예이동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며, 노예의 수요자이자 공급자로 내내 세계의 주목을 받는 국가라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면 수치심과 내 연민의 가벼움에 부끄러움이 몰려든다.

노예매매의 최초 발생지, 종착지, 중간 기착지에 관여하는 나라가 150개국이 넘으며, 세계의 노예인구가 2,700 만 명이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되고, 노예산업이 연간 320억 달러로 폭발적 성장세를 이루는 산업이라는 세계노동기구(ILO)의 발표를 보면서 그만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게 된다. 더구나 이 수치에 한국이 빠지지 않고 한몫한다는 것은 나, 그리고 우리사회의 도덕적 불감증과 무지가 어느 정도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여기에 소개되는 주요 사례국은 캄보디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우간다, 수단 등 아프리카, 루마니아, 알바니아, 몰도바,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페루 등 남미, 그리고 미국이지만, 한국은 이들 나라의 아동의 성 착취와 인신매매, 아동의 노예노동, 매매춘산업의 수요자로서 또는 공급자로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들 노예산업의 부도덕과 불의에 대해 이렇듯 세계가 명확하게 인식함에도 왜 근절 되지 못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러면 영국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인용해보자.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량한 사람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우리 대다수의 사람들이 부정의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결과론적 현상을 말하는 것으로 원인을 해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의“시간과 돈과 재능”을 회피해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임을 강조해두자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에는 분명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이 만연한 곳” 즉 사회 안전망이 무너진 지역의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서 인신매매업자들의 노예공급 사슬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또한 자본주의의 자유 시장경제 하에서 노예 소유자의 입장을 보면 노예산업만큼 거의 모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며 하늘 높은 고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없다는 점이며, 극도의 가난과 무력 갈등, 급격한 산업화와 폭발적인 인구 성장으로 사회의 안정성이 붕괴된 지역에서는“예비노예들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넘친다는 것이다. 소개되는 가슴 아픈 사례들은 바로 이러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인신매매업자들의 폭력과 납치, 채무노동을 미끼로 한 각종의 사악한 수법과 국경을 넘어서는 국제적 노예의 이동 루트를 조명하고 있기도 하다.

참혹한 중노동과 구금에 시달리던 일가족, 프놈펜 사창가의 어린 소녀의 노예화 과정에서 구호단체의 구출작전과 이들의 보호와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후관리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실질적인 구제와 구호를 위한 세계의 숨은 노력들이 소극적이기만 했던 참여의 연민을 일깨운다. 더구나 우간다 반군에 납치되는 어린 소년, 소녀들이 살인기계로 양성되어 동족을 학살하는 무심한 인간으로 변질되는 과정의 추적은 법과 도덕적 질서가 무시되고 조롱되며 그 집행이 유명무실해진 나라에서 정의를 말하는 것은 정말 헛되기만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까지 되기도 한다. 급기야 권력의 상층부에 있는 정부관리들은 물론 경찰,검찰 등 공권력까지 성매매알선 사업에 깊이 개입하거나 결탁하는 페루와 같이 국가의 안전망이 완전히 해체된 사회에서는 아동과 여성들은 노예산업의 피해자로 그대로 노출되어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혹감을 넘어 세계사회의 분노를 보여주고 싶을 정도이기도 하다.

한편 서유럽 인신매매 루트의 주요 관문인 이탈리아의 어업도시‘산포카’를 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생각게 되는데, 미국사회를 발칵 뒤집은 미국일간지에 사흘에 걸쳐 특집기사를 장식한 “한국에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팔려간 십대 소녀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문제로 간과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각성을 하게 한다. 법집행기관과 인신매매업자의 결탁이란 현상을 내재하고 있는 이러한 양상은 곧 사회의 부패와 정의의 실종을 드러내는 표상이라 할 수 있다. 세계 노예노동과 인신매매의 공급사슬에 버젓하게 이름을 내미는 우리 사회의 내부를 진지하게 점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며,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 높은 고수익 산업이란 물질중심의 탐욕이 만들어내는 노예산업의 공급사슬을 추적하고 그 뿌리를 뽑아내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선량한 대중들은 이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범죄조직, 부패한 권력과 정의를 위한 싸움에 헌신하고, 자유가 박탈된 고통에 시달리는 성 착취와 노예노동에 신음하는 이들을 탈출시키고 구제키 위해 분투하는 인도적 구호기관과 단체, 그 구성원들에게 작은 격려와 참여로 지지를 보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사고 팔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한낱 구호로서가 아니라 더 이상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몰고 온 이 처참한 물신주의의 폐해를 넘어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일궈내기 위한 노력으로서 인간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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