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틸다
빅토르 로다토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부모의 열광적인 응원과 지원이 계속되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독립된 주체로서 분리된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별의별 시시콜콜한 일상의 사건들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던 그 어느 시기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꽤나 오랜 세월이 흘러도 통증으로 남아있는 것이 있는가하면, 너무 유치했던 것에 왜 그리 심각했었는지 웃음이 나오는 대목도 있다. 또한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하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추억도 있고, 지워버렸으면 싶은 죄책감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모든 것들과 그 과정이 오늘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자각에 이르면 인간의 성장이란 것이 슬프고도 경이롭기까지 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인지‘마틸다’란 열네 살 소녀의 변화무쌍한 감성의 기록인 이 작품에서 맹랑하고, 당혹스러운 시선과 행동은 물론 죄책감과 도덕적 회의 등 그 내적 혼란과 세상에 대한 적의, 그리고 어느 샌가 넓어진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타협하는 인간을 발견케 되는 것은 인간의 성장이란 바로 자연과 우주의 리듬을 절로 익혀가고 외롭지만 홀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이해케 한다.

마틸다에게 열여섯 살 언니‘헬렌’의 죽음은 1년이 되도록 지울 수 없는 상실감과 깊은 상처로 작동하기만 한다. 엄마와 유대가 깊었던 언니의 죽음은 마틸다와 엄마의 관계를 더욱 소원하게 만들기만 하고, 사랑과 미움이 뒤섞인 다스리기 어려운 교묘한 감정이 되어 마음을 괴롭힌다. 엄마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실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엄마를 구해내기 위해 자극적인 행동을 일삼지만 이는 관계를 회복시키기는커녕 더욱 손상된 감정을 키우기만 한다.
누군가에 의해 철로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밀려 사망했다는 믿음은 커 보이기만 했던 우상인 언니의 죽음 이면에 놓인 진실을 찾으려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언니의 이메일 휴면계정에 들어가 유령의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한다.

실의에 잠겨 무력해진 가족의 사랑을 복원하기 위해, 아니 지워지지 않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키위해 언니의 마지막 자취를 따라가는 마틸다의 행로는 왠지 모를 아픔으로 숙연해지게 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가족의 연대, 사랑의 복원을 위한 걸음뿐 아니라, 유일하다시피한 친구‘애나’에 대한 우정이 미묘한 질투와 인정이라는 복잡한 심리적 과정을 겪으면서 보다 성숙한 관계로 변화하는 모습이나, 동갑내기 남자친구‘케빈’에 대한 이성적 호기심으로의 진전 또한 의젓하게 수용하는 모습에서 자기애의 훌륭한 정착을 인지하는‘성장’이란 독특한 여정에 신뢰를 갖게 되기도 한다.

인간이 성장해 간다는 것, “정말이지 서두를게 뭐람?”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서히 다가오는 것일 게다. 죽은 언니의 노란색 드레스, 언니의 1주기에 입고서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다치게 하였던, 극복하지 못한 정신적 고통은 누군가가 덜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사랑으로부터 잊혀 질수밖에 없는 언니에 대한 죄책감의 진실을 확인하기위해 언니의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행위는 이 작품에서 그 상징적 위치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어린 소녀의 마음에 더 큰 상처가 나지 않을까 가슴을 졸이게 된다. 마주한 언니의 남자친구로부터 듣게 되는 그렇게 완벽하고 자신에 찬 모습으로만 비추어지던 언니의 고통을 비로소 이해하게 됨으로써, 바로 사람들마다 지닌 그 고유한 비밀의 실체, 즉 모든 사람들이 갖게 되는 두 개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얀 눈이 내리는 밤, 케빈과 가진 자기만의 비밀이 생긴 날, 언니의 노란색 드레스를 묻는 마틸다의 행위는 눈시울을 적실 정도의 감동이 되어 몰려온다. 언니만의 비밀, 엄마만의 비밀, 아빠의 내면은 그들만의 것. 그렇게 삶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비밀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성장을 위해 거치는 무수한 감정들과 세상과의 타협, 그리고 이해를 쌓아가는 여정이 발칙하게, 때론 애달프고, 안타깝게 그려지지만 그러나 당당하게 마주하고 이겨나가는 열네 살 소녀의 깨달음에 어느새 격려와 갈채를 보내게 된다. 모든 첫 경험은 실로 두려운 것일 게다. 아스라한 절망과 슬픔을 지나 비로소 피어나는 꽃봉오리를 본 느낌이다. 또 하나의 감동적이고 숭고한 성장소설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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