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일본탐정기
박덕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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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를 역사소설의 대상으로 한 것만큼 이 작품은 낯설다. 인구에 회자되기는 하였지만 세속의 인물이 아닌 불가(佛家) 즉, 성(聖)에 속한 인물이라는 선입견 탓에 그리 본격적인 관심을 갖지 못한 이유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속인도 아닌 스님이 이웃나라를 탐정(探偵)한다니 호기심을 끌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작품에 진입하자마자 우울함이 몰려온다. 시대적으로 임진년 및 정유년의 조일전쟁을 전후하고 있으니 무능함을 넘어 무책임하기까지 한 당시의 국왕은 물론 사대부들의 몰염치와 파렴치까지 더해져 그 비열함이 먼저 시선에 들어오는 이 짜증을 피할 도리가 없는 연유이다.

작품은 허균, 이달과의 친교로부터 시작해 억불숭유책을 쓰던 조선사회에서 유학자들과도 폭넓은 교류와 주자학에도 조예가 깊어 유교와 불교, 소위 오늘말로 하면 통섭에 가까운 폭넓은 학문적 식견을 소유한 유정의 인물됨과 전쟁 중 승군(僧軍)으로 스승 휴정대사를 이어 구국의 역량을 발휘한 호국승려로서 조명한다. 사실 조선의 왕과 사대부 중심인 주류의 역사는 수치스러움과 오명(汚名)의 기록이다. 전쟁 후 대마도주를 비롯한 도쿠가와 막부의 조선과의 강화제안은 피해의식으로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는 조선의 관료들에게는 공포와 죽음, 위협으로만 느껴졌을 터이다. 결국은 천민으로 치부하던 승려인 유정에게 위험이 내재한 외교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조선 지배층의 야비함을 드러내는 대표적 예라 하겠다.

이 소설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는 사실 너무도 단순명료해서 그 의도를 그냥 외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직설적이고 외형적이다. 어쩜 소설의 이야기에 내면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서걱거림같은 것이라 할까. 그 첫째는 부산의 다대포항을 출발해 대마도에 도착한 사명대사 일행이 전쟁을 도발한 침략국으로서 일본이란 나라와 그 구성원인 국민들이 전쟁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하려하지 않는다는 점의 표면화이다. 아마도 작가는 이를 통해 20세기 제국주의 야만성에 유린당한 아시아 나라들과 국제사회를 향해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 오늘의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인식과 경계의 의미에서 일 것이다. 그리고 둘째는 승려가 왕과 사대부들을 대신하여 성취한 외교적 업적을 통해 유정이란 인물의 역사적 재조명의 서치라이트를 비추어 보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의 의도를 배제하면 이 소설은 사실 허망하고 허름하다 할 수 있기조차 하다. 간간히 뱉어내는 역사의 단편적 일화들, 이도다완이나 도쿠가와 막부와 덴노(天皇)의 관계, 일본의 소소한 사적(史蹟), 일본의 주자학 전래, 조선옹주 등 피로들 이야기, 이후 조선통신사의 시효가 되었다는 사적 의의등 문학적 해석이나 향취와는 거리가 먼 단순한 역사관광 가이드 같은 기록만 남는 것이다.

물론 대마도의 한반도와 일본본토와의 지리적 거리처럼 일본보다는 우리의 문화적, 경제적 배려에 의존했던 대마도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심층적 고찰과 같은 문제의 제기도 엿 볼 수 있으며, 당시대의 일본의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조명으로 일본에 대한 역사적 재인식의 기반제공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소설문학이지, 역사에세이나 인물평전이 아니기에 주제와 이야기가 서로 분명하게 결절되어 존재하는 것은 소설적 재미를 반감시키고 있는 요인임에 확실하다.

마치 소재들을 여기저기서 수집해 하나씩 짜깁기하다보니 누더기임이 선명하게 인식되는 것 같은 남루함마저 느껴진다. 유정이란 인물의 삶의 본질적 탐색이나 역사적 진정성이라기보다는 그저 승려의 일본과의 강화를 위한 외교사의 한 토막이야기라 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다. 양호한 대중용 역사 참고문헌이라 부르고 싶을 정도로 문학적 향취가 무척 아쉬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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