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결혼시대
왕하이링 지음, 홍순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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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 근대화 등 서구의 자본주의적 물질주의를 단시간 내에 쉴 새 없이 흡수하고 있는 사회, 오늘의 중국이 거치고 앓아야 하는 일상의 갈등과 이해의 문제를‘결혼’이라는 화제에 담아 그 속성과 본질을 규명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삶의 성찰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유교적 봉건전통 문화와 서구의 물질적 합리주의 문화의 충돌,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에 따른 사회적 갈등 등 우리의 70,80년대와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어 작품 속 인물들이 겪고 있는 홍역을 이해하는데 별도의 해석이 필요 없을 만큼 친근한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배용준’, ‘김치’, 한국의 대중문화, 등속의 표현들이 잘사는 나라의 모델처럼 스치듯 지나가는 일화에서 이 작품의 통속적 취향을 엿볼 수 도 있는데, 오늘의 중국인들이 부딪는 현상이 아주 낯익은 것이라는 점에서 시시콜콜한 지나간 한국의 TV 드라마 속 장면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이 갈등하고 고통 받으며 때론 기뻐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들이 마치 한국인의 그것과 같은 동질감을 느끼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의사 엄마, 교수 아빠라는 선택된 가정에서 양육된‘샤오시’라는 도시 여성과, 오지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지만 세칭 일류대를 졸업하고 잘나가는 IT기업의 촉망받는 사원인‘젠궈’와의 결혼생활을 플롯으로 하고 있다. 눈치 챌 수 있겠지만 이미 도농(都農)의 대비가 암시하듯이 이들의 일상이 순탄치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여전히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유교의 봉건적 관념이 젠궈라는 남성의 가계(家系)에 있어서는 굳건히 틀을 잡고 있다. 가부장적 질서, 남존여비, 여성의 자손번식자로서의 의무와 같은 전근대적 유산들과 관계에 의거한 청탁과 의존에 대한 의식 없음과 같은 무례함으로 대표되는 남자의 집안과 합리주의와 도시의 규격화된 일상, 근대적 이성주의에 기초한 도시 상류계층인 여자의 집안은 사사건건 마찰과 마주한다.

특히나 결혼이 사랑하는 두 젊은 남녀의 결합만이 아니라, 두 사람의 가족과의 결합이라는 인식과 대립하면서 이들 부부의 신랄한 갈등의 촉발은 끊임없이 양쪽 가계가 제공한다. 도시에서 출세한 아들이 가난한 시골의 부모와 형제, 친척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젠궈의 아버지는 사돈 집안의 도시에서의 영향력이 당연히 자신의 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샤오시는 이러한 시아버지의 무리한 요구에 반발하지만 번번이 수용하여야만 하고 고통을 감내하여야만 하는 수동적 자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분노한다. 이야기의 중심을 관통하는 제재는 이렇듯 양가가 상징하는 도시와 농촌, 근대와 비근대의 쟁투를 담고 있지만, 이에 못지않은 또 다른 의미에서 선보이는 결혼관도 재미를 더한다.

출판사 직원인 샤오시와 그녀의 동료인‘젠자’라는 여성의 이성관과 결혼관인데, 대재벌 총수의 정부(情婦)로서 6년여를 보내지만 결코 자신과의 결혼을 거부하는 남자를 떨치고, 샤오시의 동생인 연하의 남성,‘샤오항’과의 사랑과 결혼을 향한 사회 관습과의 갈등과 이의 돌파를 위한 과정을 통해, 물질과 학벌과 같은 속물적 조건에 내둘리는 오늘의 젊은이들이 지니는 결혼관과 풍속을 해체하고, 결혼의 의미를 진중하게 정립한다. 또한 자신의 성취를 향해 철저했던 아내를 둔‘샤오시’의 아버지가 상처(喪妻)를 함으로서, 일생 한 끼의 식사에서부터 작은 보살핌등과 같은 아내로부터 내조를 받지 못했던 남자가 맞이하는 노년의 삶을 재조명함으로써 혼자된 노인들의 결혼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감성적 접근은 물론 사회의 태도와 대중적 시선을 일깨우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남편의 형수(손위 동서)의 친정 할아버지의 상(喪)에 곡(哭)을 위해 마지못해 오지 산골로 찾아가지만, 그 사이 친정 엄마는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지 베이징이라는 도시의 잘 교육받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변에 과시하려는 시골 형수의 체면을 위해 반드시 가야한다는 남편의 채근에 못 이겨 이루어진 여정이었으니, 이 사건이 초래한 파국은 극단을 만들어 낸다. 이처럼 이 작품을 수놓는 두 남녀와 도농 가족 간의 에피소드들, 그리고 연상연하 커플, 노년의 삶을 통해 그네들이 당면한 시대의 충돌들을 유머와 재치 넘치는 문체로 그러나 진지함을 잃지 않은 노련한 의식을 담아 대중에게 사유의 기틀을 던진다.

이해와 배려의 과정, 물질을 넘어서는 사랑의 진정성, 자본의 중용적 가치라는 결말의 시사처럼 중국사회가 안고 있는 그네들로서는‘신(新)’결혼 시대의 통증은 수습되고 안착될 터이다. 그러나 우리사회가 선택한 배제와 배타, 물질숭배, 자본지상의 조건만이 남아있는 우울한 결혼시대는 오히려 구태(舊態)스럽고 케케묵은 이네들의 티격태격하는 신 결혼시대라는 과도기의 산물을 부럽게 한다. 오늘의 중국인들을 들여다보는 모처럼의 즐거운 계기가 되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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