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샷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안재권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미국 중부 인디애나의 갈색도시, 도로는 공사로 파헤쳐지고 줄어든 차선으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교통 혼잡의 짜증이 불쾌하게 전해져온다. 그리고 증축하는 주차건물에 들어선 범인은 퇴근으로 몰려나오는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저격을 가한다. 탁 트인 넓은 공공광장의 대학살, 단 4초 동안 울린 6발의 총성으로 5명의 무고한 시민이 죽었다. 맹목적인 미치광이의 광란 이상의 의미를 찾기 힘든 이 학살사건은 경찰국의 기민한 베테랑 형사 에머슨에 의해 일사불란한 수사가 진행된다.

범인차량 진출입의 명료한 CCTV화면, 범인이 남긴 섬유조직, 사용한 총기에서 벗겨진 에나멜과 사용한 탄피, 게다가 주차계기에 주차비로 넣은 사용코인의 지문까지 더할 수 없는 완벽한 증거를 확보하고 일찌감치 용의자를 확정짓는다.
그러나 이 작품의 흥미로움은 긴박했던 참살극과 김빠지는 용의자 체포로 도저히 더 이상 이야기가 진전 될 수 없으리라는 완벽하고 번복이 불가능한 상황에 있다. 그래서 이 명백한 상황을 뒤집어버리는‘리 차일드’만의 자신감 넘치는 정교한 플롯과 한 치의 틈도 없이 맞추어져 나가는 추리력에 더욱 매료되고 환호하게 된다. 용의자는 저격수 출신의 전 걸프전 참전군인, 집에 급습한 경찰은 수면제와 술에 취해 잠든 ‘제임스 바’를 체포하고, 그의 집에서 사용총기, 차량, 탄환, 의복 등 모든 증거를 발견한다. 현장의 지문과 흔적이 모두 일치하고, 저격수이기까지 했던 용의자가 범인임을 부정할 어떠한 수사상의 오류도 없다.

이때 변호사와의 대면에서 수감된 용의자‘제임스 바’가 요구하는 한 마디, “잭 리처를 불러주세요!” 전직군수사관이자 미스터리하며 터프하지만 진지하고 집요한 사나이의 대명사를 듣는 순간 책장은 급하게 넘어가기 시작한다. 아마‘잘못된 때에 잘못된 곳에 나타난다는 매력의 사나이’라는 인식을 각인시킨‘추적자(Killing Floor)'의 그 맹렬하고 탁월한 기교에 빠져버렸던 기억이 살아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긴장과 액션,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로맨스와 에로틱한 열정이 기막히게 조화롭게 어울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완전한 진수를 확인시켜 주리란 기대 탓이리라.

승소가 가능할 정도의 사건만 지휘하려는 지방검찰청장‘알렉산더 로댕’, 이런 검찰청장을 속속들이 꿰고 있는 경찰국 수사관 ‘에머슨’, 대학살의 범인으로 너무도 확실하여 변호라는 것이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함에도 무죄라는 믿음으로 오빠를 지키려는 ‘로즈메리 바’와 사건을 수임 받는 검찰총장의 딸이자 변호사인 ‘헬렌 로댕’, 너무도 싱겁게 용의자가 체포되자 낙심한 야심으로 가득한 CNN 여기자‘앤 야니’는 절로 헐리웃 영화를 상상하게 할 정도로 호화멤버의 잘 짜여진 인상을 준다. 여기에 교도소 집단 구타로 혼수상태에 빠진 용의자와 리처의 행동을 감시하고 진실 추적을 방해하는 낯선 인물들의 등장이 더해지면서 사건은 갑자기 혼란과 미궁 속으로 접어든다.

잭 리처의 사건 추적을 못 마땅해 하는 수사관 에머슨, 묘한 거부감을 보내는 검찰총장, 그리고 낯선 이들의 방해, 급기야 리처를 수렁에 빠뜨리기 위해 저질러지는 여자의 살해, 점점 궁지에 몰리고, 에머슨이 지휘하는 경찰에 쫓기는 신세에서도 궁극의 진실로 다가가는 터프가이의 침착성. 그리곤 헬렌을 비롯한 리처와 앤 야니 와의 공조와 갈등, 마침내 팀으로서의 활약이 내뿜는 흥미진진함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환하게 사건의 진실을 보여줄 때까지 긴장으로 옥죈 가슴을 펼치지 못하게 할 정도이다.

게다가 앤 야니와 잭 리처의 입을 빌려 세상에 대한 양극의 담론을 명인들의 문장으로 양념처럼 주고받는 대목은 셔츠와 바지 한 벌로 촌스러움과 궁박함이 묻어나는 리처의 외형만큼이나 현존하는 사회질서에 대한 회의와 세상의 절대 선(善)에 대한 가치의 혼란을 넌지시 비평하려는 작가의 수줍음을 보는 것 같아 살짝 귀엽기까지 하다.
전율, 불안, 흥분, 재미...그리고 이보다 정확하고 논리적이며 명쾌하고 완벽한 구성을 지닌 작품을 당분간은 접하기 힘들지 않을까 할 만큼 리 차일드는 독자를 만족시킨다. 멋지고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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