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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소설선
다자이 오사무 지음, 송숙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5월
평점 :
시대의 간극이라 해야 할까? 작품 속 인물들은 오늘의 인간상으로는 지극히 나약하고 인간의 특질들에 대한 이해역시 새삼스러울 정도라 해야 할 것이다. <인간 실격>은 몇 차례 읽었던 것을 세월이 지나 다시 읽게 되었지만 결국 근대화가 가져온 물질과 자본주의의 유입에 변해가는 세상과 그 갈등정도에 불과한 시대상의 엿보기라 할 수 있다.
작가가 집필할 시기에 있어서는 아마 중대한 가치의 혼란이었을 것이다. 작중 ‘요조’라는 인물이 자신을 온통 소진해버리는 모습은 1920년대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허무주의적 풍조를 닮아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뢰의 결여, 물질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전통가치의 붕괴, 이러한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근대인은 혹독한 무력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세계대전의 패전국 일본의 몰락해가는 화족(일본의 舊 귀족)의 모습을 쓸쓸한 화면에 담은 <사양(斜陽)>은 작가가 편입된 계층에 대한 안타까운 미련과 고통을 그리고 있을 뿐, 유명 소설가의 아이를 낳겠다는 ‘가즈코’라는 이혼한 황녀의 혁명 행위는 사실 대중의 보편적 공감을 획득키는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 작품은 세상과는 격리된 채 가족의 보살핌 속에 생을 거두는 주인공의 어머니에게서 고고한 귀족의 품위를, 그리고 변화된 새로운 시민체제에 적응치 못하고 아편과 술로, 마침내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로부터 진실한 인상을 찾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한편 이 작품들을 대하면서 아시아 식민지로부터 착취한 풍요로운 물질과 서구체제의 이식으로 변모해가는 사회의 비판과 갈등이라는 가진 자의 여유로서 당시대 일본인들의 고통을 읽게 된다. 지독한 수탈에 몸서리치던 우리에게는 생존과 민족자존감의 회복이라는 고통이 있었으니, 작중 인물들의 고뇌라는 것이 얼마나 허위이며 무지하고 편협한 것인지 하는 착잡함과 분리하는 것이 그리 수월치 않음을 느낀다.
결국 부조리하지만 거대한 질서에 거스르는 개체의 최후란 참담한 삶의 위협일 뿐이라는 다소 진부한 결론을 제시한다. 정신병원으로, 자살로, 수긍해야만 하는 질서로 말이다. 다만 <사양>의 가즈코가 보여주는 신분의 궤도를 이탈하고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향하는 발길 만이 돋보일 뿐이다. 가난의 극복과 계급간의 갈등, 민족의식으로 혼란스러웠던 당대의 우리문학에 새삼 시선을 돌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