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6
오타비오 카펠라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들녘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은 B급영화를 보는듯한, 아니 노골적으로 그렇게 한 인상이 짙다. 마피아들의 수식 없는 냉혹한 살인 장면에도 불구하고 왠지 어설픈 코미디 분위기가 맴 돈다. 일부 평론에서 “무자비함과 시시껄렁함”이라 했던가. 딱 그렇다. 작품의 분위기, 얼개, 성향 등이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urious Basterds) ’로 잘 알려진 감독‘쿠엔틴 타란티노’와 판박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타란티노 스타일(tarantino style)'이라고 불리는 복고적 분위기와 폭력, 그리고 수다스럽고 재미있으며, 통속적이고 각기 따로 놀던 인물들이 정교하게 얽히고 짜여지는 특성이 그대로 식재되어있다. 한편 내용은 ‘마리오 푸조’의 ‘대부(the godfather)’의 장면들을 떠올리게 하는데, ‘말론 브란도’가 마피아 조직 최고 보스로 열연한 ‘돈 꼴레오네’역과 ‘알 파치노’를 일약 대스타로 만들어준 후계자 ‘마이클 꼴레오네’의 권력 장악을 위해 벌이는 냉정한 폭력의 무표정이 연상된다.

이 작품의 원제목은 “Chi é Lou Sciortino ?(루 쉬오르티노는 누구인가?)”이다. 번역 제목인 “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는 마피아 세계의 변화를 이야기하려 한 것 같은데, 오히려 독서를 방해하기만 한다. 단순하지만 원제목이 외려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할 수 있다. 소설은 이태리계 미국인‘쉬오르티노 패밀리’의 보스인 ‘돈 루 쉬오르티노’의 손자인‘루 쉬오르티노’의 마피아 세계의 체험 성장기록이자 작가의 추후 발표되는 일련의 마피아 코미디 작품에 대한 연속성을 내재하고 있다.

패밀리의 보스인 할아버지‘돈 루’는 돈 세탁의 방편으로 운영하는‘스타쉽 영화사’의 사장으로 마피아 보스로서의 훈련을 위해 손자 ‘루 쉬오르티노’를 로스엔젤레스로 보내지만 영화사는 불의의 폭탄테러 습격을 받게 되고, 고향 시칠리아의 카타니아로 안전을 위해 도피시킨다. 소설의 배경은 그래서 미국이 아니라 이태리의 시칠리아가 되고, 패밀리들 간의 암투가 전개된다. 여기에는 세력 장악을 위해서는 살인을 일상처럼 벌이는 사람들과 이기적인 가족애, 과시적 허영의 세계만 존재한다. 자신들의 구역에서 경찰관이 살해되지만 카타니아의 마피아 중간보스인 야심가‘살 스칼라(일명 살 삼촌)’는 살인자가, 사랑하는 조카가 좋아하는 이웃의 청년이란 이유만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이 엉뚱한 사건의 구성에‘루 쉬오르티노’를 하수인으로 개입시키면서 이해관계는 복잡하게 얽힌다.

한편, 소설 속 영화인 『플라스틱 러브』처럼 무심한 폭력과 저급한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은, 다분히 세상을 향해 엿 먹으라고 하는 의도된 수작으로 보이는데, 지극히 통속적인 자극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의 상실된 감각, 사라진 정신세계를 조롱하는 한 방편이다. 이러한 키치(kitsch)적 요소들은‘살 삼촌’의 조카인 ‘토니’의 미장원에서 보이는 여성들의 허영심, 그리고‘바비큐 파티’는 물론 20세기 초‘알 카포네’부류의 갱(gang)을 연상시키는 복고적인 분위기, 소설 전반을 흐르는 욕설과 적나라하고 천박한 언어들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는 대중의 문화적 욕구를 비꼬는 장치로서 이 소설이 지향하는 핵심주제가 아닌가 한다.

 

이 작품은 스토리의 재미도 뛰어나지만 무수한 등장인물들과 독특한 매력을 지닌 인물들을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대단하다 할 수 있다. 보스에 대한 충성과 묵묵히 방해세력을 처단하는‘핍피노’, 루와 사랑의 도피를 벌이는‘민디’, 그리고 토니, 닉, 레오나르 트렌트, 그레타 등 개성이 톡톡 튀는 인물들은 신구(新舊)의 의식세계를 극명하게 분리해주고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 구절인 ‘돈 루’의 “옛날은 없다고 말이야.~지금도 처음과 똑 같다고...”하는 과거와 다른 마피아의 현실에 대한 회한의 표현은 ‘돈 꼴레오네’가 말년에 직감하는 인생의 한계와 닮아 있어, 왠지 모를 서글픔과 비장함이 전달되기도 한다.

소설 한 편을 읽었다기보다는 장면 장면이 짜깁기된 듯 구성된 타란티노식 영화 한편을 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무심한 듯 저질러지는 살인과 솝 오페라(soap opera)식 스토리의 시시껍절함, 바로 그 자체가 매력적인 유별나게 특이함을 지닌 소설이다. 아마 이 작품으로‘카펠라니’도 국내에 꽤나 매니아 층을 형성시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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