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 킹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1 아서 왕 연대기 1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드라마틱하게 각색된 신화를 역사적 구체성과 사실성으로 재윤색한 기원후 5세기경 부족연맹 형태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이다. 헐리웃의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유럽의 작은 섬나라 역사라는 인식 없이 아서왕, 랜슬럿, 귀니비어, 원탁의 기사와 같은 인물들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여 할거된 군벌(warlord:軍閥)들의 지배력 확장을 위한 연합과 배반, 권모와 술수가 난무하는 시대상을 사실적 접근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이 인물들의 알려진 특성이 역사적 진실이라는 잣대 앞에 여지없이 전복되고 재해석되고 있어 완벽하게 새로운 지식과 관점을 제공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영국의 고대민족인 켈트족 중 주류인‘브리튼’족이 형성하고 있는 부족연맹의 맹주인‘둠노니아(일명 캐멀롯)’왕국의 후계자‘모드레드’의 출생인 서력 480년 음산한 겨울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유럽대륙의 이민족인 색슨족의 침입이 반복되는 가운데, 둠노니아의 유서왕이 서거하자, 새로운 맹주로서의 지배권력을 확보하려는 동족간의 이전투구(泥田鬪狗)로 연맹은 이해관계에 따라 결속과 분열을 반복한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부분은 이 같은 고대국가로 형성되는 과도기인 5~6세기의 영국 역사를 비교적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며, 낯익은 역사적 인물들이 역사에서 어떤 의미와 영향을 가졌던 것인지를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작품은 이러한 권력의 암중모색과 그치지 않는 군벌간의 전쟁에서 한때, 둠노니아 왕국의 후견자인 군주‘아서’의 장군이었던, 수도원의 수사‘데르벨’이 통일군주인‘브로흐바일’의 왕비‘이그레인’에게 들려주는 회고로서의 기록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당사자로서, 그리고 군벌들이 벌이는 탐욕과 질시, 사랑과 배신의 목격자로서의 증언이라는 수단은 사실성에 대한 신뢰를 제고키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소설 속의 인물들이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 실존 인물들이기에 역사소설로서의 높은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고 설득하는 듯하다.

실제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는 도시와 건축의 규모나 형태, 보통 2~300명이 치루는 전쟁의 묘사와 무기형태, 복식(服飾)과 부족들의 역사적 지배영역, 색슨과 프랑크족 등 이민족과의 혈전 등이 과장되지 않는 고증적 리얼리티를 가지고 기술되고 있어, 신화에 머물러있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화하려는 작가의 일관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나 이 작품의 매혹적인 요소로서 주술적 신앙으로서의‘드루이드’들이 등장하는데, 고대사회의 미신이 사람들의 정신사를 얼마나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었는지 재미있게 묘사되고 있다. 화자인 ‘데르벨 카다른’과 드루이드 중 최고의 주술사인‘멀린’의 제자‘니무에’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생의 굴레로 작용하는 드루이드와의 악연, 부족의 의사결정이나 전쟁의 부적으로서의 동행 등이 그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아서’의 사랑스런 여인으로만 기억되는‘귀니비에’가 벌이는 도발적으로‘아서’를 유혹하는 장면이나, 잔혹한 기운, 속물적 근성 등은 통속적 환영들을 깨부순다. 또한 “충동과 열정의 사나이”, “권력과 도덕을 혼동하는” 불완전한 신념의 인물로 ‘아서’를 묘사하고 있거나, 프랑코족에 패망한 왕국‘아르모리카’의 왕자인 ‘란슬롯’을 비열하고 간교한 자로 그리고 있는 것 등은 그 전복적 내용으로 독서를 더욱 즐겁게 해준다.

원제목이 <<warlord chronicles>>, 즉 군벌의 이야기(연대기)이듯이 패권을 위해 벌이는‘포위스’의 ‘고르버디드’왕, ‘실루리아’의 ‘군들레우스’, ‘궨트’의 ‘테우드릭’왕, 그리고 기타 부족과 ‘아서’의 ‘둠노니아’와의 연횡과 반목이 만들어내는 인간들의 다양한 술책들과 행동들 역시 이 작품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3부작 중 그 1部인 본 작품의 대미로서 어떠한 지원세력도 없이 고립된 200명의 아서 군이 수천의 군들레우스 대군과 벌이는 일전은 가히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분노와 이기심, 사랑과 복수, 전쟁과 평화, 구 신앙과 신 종교의 충돌이 큰 물줄기를 이루며 인간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영원히 쉴 수 없을 것처럼 달려가는 한 때의 위대한 인물들과 나름의 족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암흑과 혼란의 시대, 부족연맹에서 부족국가로 형성되어가는 영국사의 한 페이지가‘버나드 콘웰’의 집요한 노력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으로 멋진 역사소설로 탄생하였다 할 수 있다. 2부작, 3부작의 출간이 조속히 기대되는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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