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페리온 을유세계문학전집 11
프리드리히 휠덜린 지음, 장영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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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페리온』을 읽어나가는데 있어 오늘의 시각만으로 접근해서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어렵다. 동시대(18세기 말)의 그 어느 작품보다 당 시대 조류에 대한 선행적 이해가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계몽주의의 이성 만능의 시대에 대한 강한 염증과 반발, 그리고 프로이센(오늘의 독일) 절대주의에 대한 저항의 시기라는 측면이다. 이 시기를 일반적으로‘질풍노도(疾風怒濤' strum und drang)의 시대' 라 하며, 이의 독특한 특성이 이 작품의 중심 사상이라 할 수 있기에 그렇다.

작중 화자(話者)이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휘페리온(Hyperion)'의 정신적 구조는 이 질풍노도의 정신적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하여도 그릇된 이해는 아닐 것이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그리스’와 같은 최초와 시원적 야성의 힘에 대한 동경, 충동이나 감정, 상상, 직관을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수단으로 보는 점, 정열, 사회비판, 자연의 동경 등 감상주의 태도, 또한 자신을 능가하려는 반인, 즉 신적 충동을 지닌 인간, 기존의 일신론적 신학관의 거부와 개인의 자의식과 범신론적인 종교에 대한 태도는 18세기중후반기 독일 젊은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휘페리온’의 삶의 여정에 대한 회고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의 스승‘아다마스’를 통한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에 대한 배움으로부터 시작하여, 청년기의 스승이자 친구인‘알라반다’와의 우정과 연인‘디오티마’와의 사랑을 통한 정신의 아름다움과 숭고함, 예술과 종교, 범신론적으로 신격화 된 자연의 정신에서 비롯한 만물의 평등과 존재의 불변성에 대한 깨달음의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총체-자연’이라는 만물에 신성을 부여하는 범신론적 사상을 중심으로 하여, 불교의 윤회사상과 닮은, 존재의 불가변성에 믿음이 아름다움과 사랑과 결합하여 독특한 삶의 태도를 형성하는 것은 이 작품의 주된 관점이라 할 수 있겠다.

전쟁에 참여한‘휘페리온’의 우유부단한 이별의 편지는 사랑하는 여인‘디오티마’의 죽음을 가져오는데, 이에 대한 휘페리온의 스토아적인 태도는 사실 당혹스러움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죽음’ 즉 내면적인 기쁨 가운데서 죽는 것은 모든 것을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고귀한 정신이라는 이해를 보이는 것이다. 전쟁에서 죽음을 암시한 연인의 편지를 보고, 존재의 불가변성에 경도되어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죽음을 택한 디오티마에 보내는 이 감정은 “내가 위대하다고 존중했던 내 청춘의 생각들, 그 사상들이 나의 디오티마를 독살했던 것이라네!”하는 믿음이 실리지 않은 독백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아무래도 시대의 엄청난 괴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서구인들의 감성과 정체성에 그리 공감하기에 어려운 것은 이 작품도 다르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제도, 인본주의적 태도, 그네들의 인간의 형상을 한 신의 모습, 신적 아름다움과 극단으로 치닫지 않는 절제의 미등 예술에 대한 찬양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격심한 문화적 회의와 이질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도 이 작품에 쉽게 동화되지 못하게 하는 방해요소가 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은 물론 호메로스와 그리스 신화, 독일의 화가‘빙켈만’, 작품의 배경이 된 그리스에 대한 묘사의 지침이 된‘리처드 챈들러’의 『소아시아와 그리스 여행』, 그리고 순수한 자연 속으로의 목가적 생활의 요구를 한 계몽주의 사상가‘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는 이 작품의 실질적 문장을 구성하고 있다하여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독해를 고달프게 한다.

“아! 아! 모든 것은 사랑의 복된 유희인 것을! ~ 서로 치켜세우는 말, 배려, 섬세한 반응, 엄격함과 관용 ~ 그 무한한 신뢰”와 같이 사랑에 빠진 휘페리온의 사랑 찬가처럼, 감정의 정당성에 대한 절대적인 옹호와 자유와 사랑 예찬, 자연인을 위한 자연적 질서의 추구를 하던 당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루소’는 완벽한 모델이었던 모양이다. 조화와 대립의 보편적인 화해라는 평화의 관념, 외적 결핍의 체험으로부터의 이상의 표상, 사랑의 자연스러움과 우정의 정신적-이상적 본질의 구분 등, 루소의 문학적 변주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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