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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의 징표
브래드 멜처 지음, 박산호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19년 뒤 홍콩의 어느 곳, 소설의 첫 장부터 알 수 없는 추궁과 비열한 살인 장면이 예사롭지 않은 추격의 양상을 암시한다. 게다가 단지 성서에 16줄에 불과한 기술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살인자가 된 카인의 이야기와 슈퍼맨의 원작자인‘제리 시걸’과 그의 아버지‘미셸 시걸’의 죽음에 얽힌 비밀까지 얽혀들며 현실과 신화적 사건을 오르내리게 한다.
또한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아이, 아버지의 구속, 정신적 외상을 지닌 채 거리의 부랑인들을 거두는 청년 칼의 숨겨진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도 커다란 하나의 축이 된다.
이처럼 이 작품은 다분히 미국적이고 그네들의 정체성을 유지시켜온 성서와 짧은 역사 속에서 지켜내고 싶은 우상(슈퍼맨)으로서의 충분한 화젯거리를 소재로 하고 있는 본격 범죄추리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코믹스(Comics)와 영상매체를 오가는 감각적인 작가의 특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이 한 컷 한 컷 치밀한 구성이 돋보이는데, 근본주의자 광신도 앨리스와 마주한 하퍼 부자와의 팽팽한 긴장의 순간장면들은 가히 헐리웃 영상을 뛰어넘는다.
수감되었던 아버지와의 19년만의 재회, 이들 부자의 앞으로 다가온 은밀한 암시는 미지의 책으로 발길을 인도한다. 이후 작품 곳곳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회한과 갈등이 교차하고, 풀어야 할 미궁 역시 아버지와 아들의 용서와 화해를 들려주지만, 이러한 주제의식을 굳이 의식할 이유는 없다. 이미 강력한 묘사라는 도구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이 작품은 정밀한 퍼즐식 스토리의 전개와 불안, 긴장, 잡힐 듯한 단서, 그리고 의외성과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의 혼을 쏙 빼앗아 가버릴 정도로 완벽하기에 이야기의 지적 전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더구나 마지막에서야 드러나는 예언자의 실체와, 툴레회의 광신자 앨리스를 인도하는 다이어리, 칼이 손에 쥔 제리 시걸의 초판본 만화책, 그리고 의문의‘거짓의 서(The Book of Lies)’, 궁극에는 카인의 징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작가의 교활한 트릭으로 결코 책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한다. 카인은 무엇으로 아벨을 죽였을까? 시걸의 초판본 만화책은 무엇을 지시하고 있는 것일까? 제리는 아버지 미셸의 죽음을 목격한 것일까? 하퍼 부자는 카인의 징표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이러한 요소들은 현실적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더더욱 사실성이라는 진실에 대한 호기심으로 달아오르게 한다.
그리고 작품 전체에 도도히 흐르는, 아들 칼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흐뭇한 안도의 표정, 고통스러웠을 아들을 향한 용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무모한 저항을 무릅쓰는 부정(父情)은 카인을 용서한 하느님의 선물과 연대하여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다. 끊임없이 긴장을 요구하는 스릴러임에도 작품을 휘감아 도는 부자간의 시선과 감정의 교감이 왠지 모를 따뜻한 정감을 느끼게 한다. 신약을 차용한 걸작이 『다빈치코드』라면 『카인의 징표(原題: The Book of Lies)』는 크리스천 미스터리 팩션의 완결판이라 함에 어떠한 손색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