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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은 왜 그토록 불안정할까 ㅣ 과학과 사회 3
프란시스 위스타슈 지음, 이효숙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기억의 메커니즘을 정립하고, 뇌의 신경망과 뇌기능의 연구를 통해 궁극으로는 뇌의 외부적 손상이나 신경 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기억상실 증후군,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정신착란증후군의 실제적 원인 규명을 위한 일련의 신경해부학적 성과에 대한 보고서랄 수 있다.
프랑스 캉 대학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신경해부학 팀장인 저자‘프란시스 위스타슈(Francis Eustache)'박사의 인지 신경심리학과 인간 기억의 기능에 대한 연구를 배경으로 하는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에 대한 진전된 성과는 소위 노인성 치매라 불리는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결정적 규명단계의 접근을 알리고 있어 개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적 효용측면에서도 커다란 기대를 갖게 한다.
이와 같은 질병의 의료적 개가에 못지않게 이 저술은 인간의 뇌기능과 기억의 메커니즘에 대한 수준 높은 성찰로 구성되어있다. 특히‘기억’에 대한 신경심리학적 언어들의 정의와 이해를 기초로 하여 기억의 층위(위계)별 역할과 기능, 나아가 인문학적 통찰에 이르는 기술(記述)은 독자를 인간 기억시스템에 관한한 견고한 이론가로 만들어줄 정도로 탁월하다.
‘신경심리학’은 “뇌의 상태에서 비롯되는 인지적 기능장애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정보의 획득과 저장, 회수의 시스템인 기억에 장애를 일으키는 요인을 명확히 이해하는 것은 뇌의 구역별로 특정한 또는 지배적 역할의 파악을 가능케 하고, 인류의 정신건강은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적 영향을 가져올 수 있다.
저자는 기억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일화적 기억과 의미적 기억, 서술적 기억과 절차적 기억이 그것인데, 이는 다양한 종류의 지각이 같은 방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데 기초하고 있다. 명확한 공간적, 시간적 맥락 속에 위치한 사건에 관한 기억인 일화적 기억과, 이와는 달리 언제,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는 탈맥락화한 낱말, 세계에 대한 지식 같은 의미적 기억이나, 이와 같이 일반적이고 특별한 정보와 관련된 의미적 기억과 일화적 기억을 포함하는 서술적 기억, 훈련과 더불어 점진적으로 숙련성을 획득하고 저장하여, 이전 경험에 근거하지 않고도 회복할 수 있는 절차적 기억에 대한 설명은 우리들의 기억 방식이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 정보를 제공해 준다.
여기서 절차적 기억은 우리들의 관심을 끌게 되는데, 우리가 운전할 때 기억의 도움을 받는다는 의식 없이 수행하는 것처럼, 이 기억의 표상은 암묵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 정신생활의 일부는 우리 의식을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때로는 이 기억이 우리도 모르게 욕망과 신념을 드러내어 정신의 중립성을 배반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기억의 세계는 이상하고 매혹적이며, 두렵기조차” 할 정도로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기억은 자신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주관적 느낌과 시간 속에서 중요성 여부에 따라 정보를 지속적으로 보유하고 고정화시키기도 하지만, 불과 몇 초, 몇 분 뒤에 기억 속에서 날려버리기도 한다. 특히, 일화에 관한 기억은 며칠, 몇 달, 몇 년 에 걸쳐 형성된다고 한다. 이러하다보니 겪은 장면을 그대로 복사하듯이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주체의 관심과 욕망에 따라 기억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억이란 ‘역동적 현상’이며, 부정확하고 불안정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처럼 불안정하고 장애를 일으키기 쉬운 우리들의 기억은 여러 형태의 질환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PET나 MRI와 같은 뇌기능 영상기술의 발전은 “전두부 피질은 전략적 회상을 담당하고, 해마는 에크포릭(ecphoric; 어떤 상황에서 기억에 자동 접근하고 심지어는 억누를 길 없이 접근하게 되는 것) 회상을 맡는다. 단어들의 코드화에 요구된 뇌 구역은 어디일까?”와 같은 뇌의 부분별 기능에 대한 탐색을 진전시켜왔고, 이러한 부단한 실험은 질환의 조기진단영역에서 ‘알츠하이머병’의 초기잠복진행을 발견하고 진행을 완화시키거나 심지어는 중단 시킬 수 있을 만큼 효과적 치료가 가능한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저술은 인간 기억의 새로운 상호체계의 모델을 구축하고, 뇌기능의 탐색에 엄청난 기술적 발전의 진행상황을 보여준다. 인간 뇌의 신경망과 그 위치별, 영역별 기능과 역할이 정복되는 날, 다가올 의료적 낙관 못지않게 왠지 모를 불안도 엄습해온다. 치밀하고 세련된 논리와 구성, 차원 높은 사유가 돋보이는 뇌 과학을 기초로 한 기억 시스템의 선도적 저작이다.
「기억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해 두는 대뇌 활동이 아니라, 매순간 변하는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경험의 질료’이다」 - 추천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