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 지식인마을 32
하상복 지음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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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 합리주의 이성에 대한 비판과 긍정의 대립적 시각으로 대표되는 20세기의 두 석학, ‘푸코’와 ‘하버마스’의 사상(思想) 입문서라 하겠다. 근대 이성(理性)을 설명하기 위해 르네상스 시대와 계몽주의 시대에 대해 친절의 과잉으로 다소 장황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푸코의 근대이성에 대한 억압과 지배 메커니즘의 비판과 하버마스의 부르주아(Bourgeois) 공론장에 입각한 의사소통 가능 영역을 위한 체계의 인식과 이성의 긍정을 매우 수월한 언어로 깔끔하게 정리한 역작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대사회를 인식하고 비판하는 논서(論書)들의 대다수에서 수없이 인용되는 푸코와 하버마스의 저술들과 핵심사상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이해하는데 충분한 지식을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실과 이격된 철학으로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는 사회문제에 직결하여 사유케 하는 지식 실용서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수행해 내고 있다.  

인간에 대한 근대 서구사회의 지식이 보편적 진리와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폭로하는 작업으로서 ‘푸코’는 근대이성의 은밀한 폭력성을 해부한 사상가로 이해되고 있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폭넓은 독자를 지니고 있는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시대마다 ‘광인(狂人)’을 다양하고 이질적인 언어로 규정하고 이해하고 있음을 통찰하고, 이는 바로 “언어는 사물의 진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사물을 특정한 의미를 내재한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도구”일 뿐 이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이성과 비이성적인 분류란 국가권력과 과학적 합리주의라는 이름으로 구축된 지식-담론에 의해 관리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통제대상들이 내면의 윤리의식에 의해 스스로 통제하는, 즉 권력은 지식과 담론을 적극적으로 창출해 내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특정한 도덕률을 축조해 냄으로써 그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적극적 힘이라는 것이다. 결국 근대는 과거와는 다른 특이한 억압과 지배의 메커니즘인 “도덕규범의 내면화를 통해 개인 각자가 참과 거짓, 옳음과 그름의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통제”하는 근대인이라는 ‘종속적 주체’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한편, 하버마스는 “문화는 자신과 사회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시도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조직생활과 단조로운 소비에 매몰된 대중으로 전락시킨다. 궁극적으로 대중은 「객관적 이성의 소멸과 모든 내적 의미를 상실한 현실의 공허함에 대해 어떠한 유감도 표현하지 않는」 존재들이다.”라고 근대 이성에 대한 비관론적 사상을 전개한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로 대표되는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의 비판주의를 비판론적으로 계승하며, 오히려 서구 근대이성은 본래부터 해방적 힘을 발휘해 왔으며, 단지 그 해방적 힘이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서 가라앉아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17~8세기 ‘부르주아 공론장’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의사소통을 근거로 제시하며 근대이성을 긍정한다.

특히 오늘의 사회를 '체계(System)'와 ‘생활체계(lebenswelt: life-world)’로 구분하고, 프랑크푸르트학파 1세대는 합리성을 물질의 생산과 분배기능인 ‘체계’의 관점에서만 파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체계의 도구적 합리성(목적론적 합리성)을 막아낼 일종의 방어진지로 생활체계를 인식하고, 현대서구의 본질적 위기는 ‘생활체계의 식민화’, 즉 “국가권력과 과학기술의 합리성이 삶의 영역에 과도하게 침투함으로써 대중의 정치의식이 파편화되고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처럼 푸코와 하버마스는 근대의 목적론적 합리성과 이성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의 평행을 달린다. 그래서 체계 내에서의 언어가 아니라 의사소통적이라 할 수 있는 생활체계 내에서의 언어로 ‘타당성 요구’라는 진정한 의사소통을 위한 최소 필요조건을 통해 완전한 의사소통 영역의 축조를 주장하는 하버마스는 이상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푸코는 너무 비관적이어서 결과적으로 오늘의 억압체계를 온존시키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는 보수적이라는 회의를 낳기도 한다.

이에 대해 자기모순이 종속적 주체를 자신의 도덕규범을 만들어 나가는 능동적 주체로 전환하는 ‘윤리적 주체’, ‘파르헤지아(parrhesia)’의 도덕적 자질이자 태도로서 푸코는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하버마스는 신념, 담론, 행동의 공동체로서 인터넷과 같은 뉴미디어를 위력적인 민주주의 동력으로서 완전한 의미의 참된 의사소통의 장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가치가 매몰된 목적 지향의 합리성에 경도된 오늘의 사회와 권력의 지식과 담론에 종속된 무지한 현대인의 권력의 주체로서의 전환은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푸코와 하버마스의 사상적 계보는 물론, 관련 저술과 용어들의 인용과 해설을 중심으로 기술된 이 저술은 ‘촛불시위’를 소재로 한 두 석학의 가상대담 형식을 통한 근대 이성에 대한 선명한 이념적 대비, 그리고 ‘금기와 편견’, ‘매스미디어와 공론장’이라는 현실세계의 비유를 통한 두 사상의 이슈에 대한 정리는 실질세계의 비평적 시각을 제고시켜 주기도 한다. 푸코와 하버마스의 본격적 읽기에 앞서 이 저술의 정독은 이해와 연구의 효율을 분명 높여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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