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코네로가의 영원한 밤
플라비오 산티 지음, 주효숙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괴테의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탈리아 여행기』를 읽어본 독자라면 더욱 친근한 독서가 될 수 있겠다. 물론 상상의 문제이지만, 괴테가 이들 작품을 집필 할 당시의 심리적 상태를 마치 이해라도 할 수 있는 듯한 문장의 장치들로 대문호의 은밀한 내면을 들여다보는 야릇한 호기심이 채워지기도 한다.

작품은 죽음에 임박한 괴테의 ‘고백록’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실존인물을 작중 주인공화 함으로써 리얼리티를 제고하고 이성의 냉철함으로 인한 분석적 잠재시각을 잠재워버린다. 때문에 두려움에 휩싸여 진정되지 않는 의식 속에 쓰여 지는 그 강박적 불안감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이되어, 낯설고 막연한 공포감으로 시작하게 유인한다.

1786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 ‘팔레르모’에 도착한 괴테의 기이한 여정을 쫒는다. 작품의 전반부는 선술집에서 만난 낯선 남자가 들려주는 음습하고 괴이한 ‘보스코네로家’의 비밀스런 이야기로, 그리고 후반부는 작중인물로서 괴테가 직면하는 자신의 경험으로 시간적 연속선상에서 이어지는 구조로 되어있다.

머리만 뜯긴 채 나뒹구는 사체, 잔혹하게 훼손된 농부들의 시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하인과 경감 등 도통 사건의 전말을 좆을 수 없는 연쇄적인 살인사건이 이어진다. 단지 주어지는 암시란 “삶은 피를 먹고 산다”, 그리고  “심오한 징후”라는 뜻 모를 의문을 던져줄 뿐이다. 기억상실증과 수면발작증을 앓는 보스코네로가의 계승자인 남작 ‘페데리고’와 어린 시절 가정교사인 ‘텔라모니오’, 이 추상적 단서의 의미를 찾기 위한 집요한 수소문, 겁에 질린 판사, 사체를 수집하는 외과수술의,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듯 보이는 변호사까지 끔직한 살인사건의 본질에 혼란을 주는 징후들과 막연한 단서를 마구 흩뿌려 대어 독자의 긴장을 팽팽한 강도로 높여나간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그 집요한 공포와 전율의 실체를 마주하는 순간, 괴테의 지성과 이성이 하릴없이 무너져 내린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에 그칠 줄 모르고 외쳐대는 악(惡)의 실체는 바로 우리를 에워싸고 있을 뿐 아니라 언제든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음을 본 것 아닐까? 초현실적인 실체에 직면한 고귀한 우리의 이성이 이렇듯 마지막 순간까지 부들부들 떨게 만들고 그를 써내려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진실은 무엇일까?

괴테가 이 낯선 곳에서 체험한 지옥과 악의 실체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로 현현하고, ‘발푸루기스의 밤’에 모티브를 제공한다. 진실이 아닐지언정 작가 ‘플라비오 산티’의 이 악마적 고백록은 미스터리 공포소설로서, 또한 메리 셸리, 로폴리도리의 계보를 잇는 정통 고딕소설로서뿐 아니라 탄탄한 서사와 문학성으로 독자의 지성을 즐겁고 풍요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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