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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구속
크리스 보잘리언 지음, 김시현 옮김 / 비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취약한가? 크리스 보잘리언의 이 탁월한 작품은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서 그 허약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이러한 것을 반전이라고 하는가? 반전이란 용어로는 우리인간들의 무능함에 대한 지나치게 협소한 언어처럼 보인다. 능욕을 당한 여린 한 여성의 집요한 추적은 그저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의 특징을 강하게 동반한 양극성 1형 장애와 조증”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 작품의 묘미는 ‘F.S. 피츠제럴드’의‘위대한 갯츠비(The Great Gatsby)'의 속편인 냥 롱아일랜드의 대저택과 갯츠비, 데이지, 톰과 파멜라등 부캐넌 일가의 후대를 이어간다. 작가는 이 걸작의 변주곡이라고 겸양을 보이지만 서정성과 심리적 추리물로서의 서사를 넘어 견고한 문학적 성취를 이뤄낸 작품이라고 까지 할 수 있다.
대학생이던‘로렐 에스타브룩’은 ‘언더힐’이란 도시의 산악도로에서 두 명의 남자들로부터 강간의 위기에 처하고 그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 중 쇄골이 으깨지고 손가락이 부러지는 손상을 입는다. 다행히 지나던 사람들로 인해 구조되고 범인들은 체포되어 수감된다. 이러한 정신적 상흔을 딛고 거리의 부랑자들을 돕는‘쉼터’의 직원으로서 타인을 위한 봉사에 헌신한다. 그러던 중 바비라는 정신분열증을 앓는 노인이 쉼터에 오게 되고 그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된다. 심장마비로 노인이 사망하자 그의 유품인 사진꾸러미가 로렐에게 전달되고, 그 사진의 전시를 통해 쉼터의 재원을 마련하기위한 준비를 맡게 된다.
소설의 재미는 몇 장의 사진 - 롱아일랜드의 갯츠비 저택과 갯츠비가 사망한 수영장, 갯츠비의 정부였던 데이지의 아이들로 보이는 어린 소녀와 소년의 사진, 그리고 언더힐에서 자전거를 타는 한 여자 - 으로부터 시작된다. 죽은 노인 바비의 뛰어난 사진작품과 그 사진들의 의미에 집착하는 로렐의 집요한 조사, 그녀는 바비가 곧 데이지와의 사이에 출생한 갯츠비의 아들이라는 심증을 입증하려한다.
환자 29873번의 정신과의사 상담일지가 뜬금없이 페이지를 수놓는다. 그리고 바비의 생전 생활과 그의 친구들, 이웃들, 가족들을 찾아 주위의 우려스런 시선을 뒤로하고 연민의 추적을 지속한다. 그녀의 상흔을 걱정하는 친구와 동료, 애인들을 피해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위한 행동에 몰입한다. 복선이라곤 생각지 못했던 무수한 요소들이 치밀한 복선임을 깨우치는 것은 책장을 덮을 때가 되어서이다.
모든 진실을 밝혔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의 앞에 나타난 사람들, 엄마, 이웃, 친구, 직장동료, 그리고 낯익은 남자, 근심과 우려가 그득한 그들의 표정, 그녀에게 가해진 그 정신적, 육체적 상처의 실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비의 사진은 갯츠비와 데이지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것일까?
과장된 전율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심리적 긴장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지극히 평이한 문장으로 이처럼 완벽하게 소름끼치는 반전을 이뤄내는 작가의 저력에 감탄을 내지르지 않을 수 없다. 우아한 풍미에 취해 밤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 책의 서평처럼 허구와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넋이 빠진 당신을 보게 될 것이다. 정신적 외상과 관련한 이만한 걸작은 당분간 출현키 어려울 듯하다. 걸작 중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