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리아드 (양장, 한정판)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송경아 옮김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화적 형식을 빌린 철학의 탄생을 보는 듯하다. 발표된 지 30여년이 지난 작품이라곤 상상키 어렵게 작가의 해학적인 조어(造語)들과 과학적 편린들은 가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물론 이들 조어와 철학적 단상, 자연과학을 빙자한 표현들이 독서의 진행을 까다롭게 하지만 그 독특한 맛이 장애로 인정치 않게 한다.

기계의 전지전능한 창조주‘트루를’과 그의 친구 ‘클라포시우스’의 우주를 방랑하며 겪어내며 들려주는 영웅담은 미래의 어느 시대를 그려내는 단순한 환상 스토리가 아니다. 이들의 천방지축같은 일화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에 연유하는 욕망, 그리고 그 부질없음에 연민을 담고 있으며, 인간 실존에 대한 의문과 진실, 허위에 그득한 오늘의 과학적 오만에 대한 조롱과 자숙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 판타지에는“존재란 무엇인가?”하는 이 간단치만은 않은 숨 막히는 질문과 트루를의 기계(로봇)들이 하는 언어를 통해 그리스철학자 ‘파르메니데스’의 인식론적 사유가 기막히게 녹아있는가 하면 “있다”와 “없다”로 시작되는 존재의 속성, 존재와 비존재, 존재와 진리에 대한 사유, 그리고 우주의 무계획적 생성론과 같은 물리학적 사유의 기원을 마련한‘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의‘보편적 정신’론 등이 절묘하게 패러디되어 인간 정신과 우주의 법칙을 안내하고 있다.

바로 이 탁월한 작품은 소설의 탈을 쓴 철학서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것도 노골적으로 아주 쉽고 일상적인 언어로, 또한 누구나 알 수 있는 풍자와 은유의 말로 비아냥거리기까지 하면서 읊조린다. 시인, 철학자, 과학자...의 고식적이고 유치하며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오늘의 세계를 여지없이 비아냥대면서 말이다. 트루를의 전자시인이 인간(시인들)을 빈정대며 즉흥시를 읊어댄다.

『운명의 힘에 이끌려, 나는 노래하네 / 무기와 기계를, 지구의 해안에서 쫓겨나 망명한 / 거만한 인간의 무자비한 운명을....』그리곤 오늘의 詩作이 ‘영광 증폭 메카니즘’을 지나 난해성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그 허위성을 비웃어대는 것과 같은 식이다. 이 작품의 정수로 “게니우스 왕의 이야기 기계 세 대 이야기”라 함에 동의치 않는 독자는 없으리라.

위대한 창조자 트루를은 “동굴에 은거해서 명상에 몸 바치고 있는 게니우스 왕의 종종 다가오는 슬픔과 자기혐오”의 위안을 주기위해 요구된 이야기하는 세 대의 기계를 주문받는다.‘세(三)대’가 필요한 절묘한 이유와 같이 이 작품의 모든 어휘와 문단과 문장과 이야기는 보석처럼 빛나는 경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지나쳐버릴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일례를 보면, “두 가지의 지혜가 있네. 첫 번째는 행동하게 하는 지혜이고, 두 번째는 무위(無爲)의 지혜지. ~ 中略 ~ 그러므로 완벽은 모든 행동을 회피하는 데 있네. 여기서 진정한 지혜는 단순한 지성과는 다르지.”처럼 빛나는 지성의 보고로 가득 차 있는 것과 같다. 꺄~악~ 읽어가는 내내 작가의 무궁무진, 인류의 사상과 과학지식을 종횡누비며 그칠 줄 모르게 줄줄 새어나오는 촌철살인식 이야기속 에 “말문이 막혀 입을 떡 벌릴”정도이다.

이제 그 유명한 “가능한 한 가장 발전한 단계”인 ‘가가발단’이란 정규분포곡선에서 가장 우측에 자리 잡는 최고의 이성이 우주의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상상의 이야기에 집중해보자. 트루엘의 친구 클라포시우스가 급기야 찾아낸 가가발단의 이성들은 모래밭에 누어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들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인가? 이 질문에 그들은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라는 반문이 주어진다. 또한 “전능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전능하다.”고 주장한다. 바로 오늘 우리 인류들의 끊임없는 지적 오만과 어리석음에 대한 일침이다. 배꼽 빠지게 즐거우면서 진지하다. 이 황당한 농담 같은 진담이 우리세계를 신랄하게 비웃어대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인류에 대한 연민을 놓치 않는 작가의 사랑이 짙게 배어있음이 이 작품을 더욱 매혹적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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