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 동화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말하는 까마귀가 연민을 가득 담고 양 눈이 뻥 뚫린 소녀를 위한 눈알의 사냥과 그 눈을 텅 빈 눈에 끼워 넣고 눈알을 잃어버린 아이들 기억의 영상에 즐거워하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까마귀의 동화로 시작됩니다.

그리곤 눈의 기억이란 동화가 오버랩 되어 눈을 매개로한 인간들의 아득한 기억을 찾아갑니다. 맑은 영혼의 소녀, ‘나미’의 번민이 어둡지만은 않게 그려지고 있어 호러(horror)물이 주는 공포를 별난 포근함과 평정심으로 감싸주고 있습니다.

우산에 찔려 한쪽 눈이 파이고, 17년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립니다. 그리곤 상실된 왼쪽 눈을 외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수술을 통해 이식받습니다. 그러나 특정 사물을 바라보면 이식된 눈의 주인이 기억하고 있는 모습들이 반투명 영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섬뜩한 서늘함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그러나 이내 눈의 주인공이 보아온 경치와 사람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마음을 빼앗기고 지워져버린 기억으로 소외되기만 하는 그녀의 삶에 위안이자 중요한 삶의 의미가 되어버립니다.

한편에선 살인마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정신병적 모험을 즐기는 사이코패스의 삶이 잔인하게 그려집니다. 인간의 생명이 끊어지는 손상은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이 엽기남‘미키’는 사람의 사지를 마구 잘라내고 내장과 신체부위를 여기저기 이어붙히기도 합니다. 그런 그의 얼굴에 드러나는 무표정이 인간 존엄성, 아니 생명에 대한 경외(敬畏)같은 것은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합니다.

어느 날 나미의 왼쪽 눈에 비친 눈의 주인공 가즈야의 사망현장이 비춰지고, 가즈야가 목격한 사지가 절단된 실종된 소녀가 감금된 장소를 보게 됩니다. 작품의 진행은 강박적으로 빨라집니다. 아니 독자의 추적이 다급해지게 합니다. 빼곡한 침엽수림과 산간도로, 그리고 숲의 그늘에 가리어져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산속의 음침한 파란벽돌집, 그곳 지하실에 갇힌 절단된 사람들, 카페 ‘우울의 숲’에서 책 읽는 여자, 정해진 시간에 점심을 하기위해 정확히 나타나는 남자, 동화속의 동화와 동명의 동일한 동화가 이야기를 더욱 미궁으로 끌어갑니다.

가즈야가 보았던 그 실종소녀를 유괴하고 있는 엽기적 범인은 누구일까? 가즈야를 죽음으로 내몬 그 살인범은 진정 누구인가? 작품의 끝까지 독자는 작가의 기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독특한 소재와 인간 내면의 광기가 어울려 빚어낸 이 동화에서 빠져나오려면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야 가능해 집니다. 내 눈이 눈구멍에 제대로 끼워져 있는가를 확인해보아야 할 것 같네요, 그 까마귀가 혹 잠든 사이 파내 갔을지도....

정말 무서운 동화란 바로 ‘오츠이치’의 작품을 두고 존재하는 용어 같습니다. 악몽을 꾸게하는 동화! 멋진 호러 동화! 바로 ‘암흑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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