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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가 오랜 동안 가슴에 묻어둔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어렵게 토해낸 것 아닌가하는 뒤숭숭한 걱정이 꼬리를 문다. “눈치 챘겠지만 이 글로 인해 난 일종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주인공의 입을 통해 기억과 진실이란 저 밑바닥에 감추어 두었던 비밀이 이 뛰어난 작가의 질긴 고통이었음을 단정 짓게 한다.
기존의 작품들(아크엔젤,이니그마,폼페이 등)이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한 팩션 이었다는 점과는 달리 오늘의 정치, 권력 세계를 배경으로 한 권력조직과 그 구성계층들을 중심으로 한 허위와 기만, 음모와 배신과 같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어떤 작품보다 더욱 작가의 의지가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하고 싶다.
영국의 전 수상인‘애덤 랭’의 자서전을 대필하는 작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어, 이러한 의구심은 더더욱‘로버트 해리스’자신의 익명성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작품의 긴장감은 자서전의 원 대필자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부여되기 시작하고, 주인공의 1인칭 시점을 이용하여 펼쳐지는 상황마다의 복잡한 심리의 움직임이 포착되도록 한 진행은 그 강도를 더하게 한다. 특히, 영국과 미국이라는 서방세계의 최 상층부 정치세계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함으로서 실존 인물들과 교묘히 대조케 하는 위험한 곡예를 느끼게 한다.
“마침내 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 않는가? - 中略 - 어차피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하는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하는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 앞의 독백은 소설이 가지는 주제의식의 명료성과 사회적, 도덕적 가치에 대한 존중에 대한 작가의 극적 선회의 확신으로 보인다. 그의 기 발표된 작품들 역시 인간군상 개체에 대한 어리석음이나 헛된 욕망,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사회의 부조리와 파편적 사건을 이야기하였으며 바로 이러한 문학적 내면을 팩션이란 형식으로 간접적인 시사를 하였다는 측면에서 선회라는 표현이 부적절 하게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 작품 ‘고스트 라이터(Ghost)'는 숨김의 미덕을 최종적으로 부인하고 있으며, 설사 아무도 믿지 않을지라도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전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극단적 예로서 어처구니없는 당혹스러움과 터무니없는 허구를 전제로(작가의 의도된 구성이지만) 미국 CIA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영국수상의 추정이나, 자신들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한 냉정한 관계청산의 수단 등은 실로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스릴을 준다. 이 작품의 묘미는 또 하나의 관점에서 주의를 주고 있다. 주인공(유령=자서전 대필자의 은어)의 행보에서 취약한 인간 의지의 구조를 해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체로 발견된 전 대필자‘맥아라’에 대한 죽음 의 궤적을 따라 만나게 되는 ‘폴 에미트 교수’, ‘영국 전 외무장관 라이카트’그리고 다시 ‘애덤 랭’과의 대면에서 보이는 인간이 조정하는 인식의 허약한 변화, 그리고 사실, 즉 실제 하는 존재의 가치에 갈등하는 혼란스런 내면 등 인간의 본원적 취약성을 추적한다. 물론 작가는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진정성이라는 결론을 마지막 페이지에서 시사하고 있긴 하지만, 작품 전체에서 보여주는 오늘날의 서방 정치세계를 비롯한 권력계층에 대한 시니컬한 시선은 거두지 않는다.
이 작품은‘로버트 해리스’의 모든 작품들이 그렇듯이 읽는 자의 재미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일종의 추리스릴러의 형식을 가미하여 사건의 진행, 단서와 암시, 그리고 대립과 갈등, 긴장과 불안, 트릭, 보이지 않는 반전 등으로 독자의 상상력의 공간을 가득 채워 작품의 내용으로부터 도피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그러니까, 그러면...,”하고 자신의 지난 행위를 더듬는 황폐한 망설임의 불온하고 불완전한 세상의 폭로라는 진실에 흥행을 멋지게 덧 칠 할 줄 아는 작가이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오, 세상에 루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