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수집가들
피에르 르탕 지음, 이재형 옮김 / 오프더레코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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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르-은 자신만의 멋진 세상을 창조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의 마스터로 불리는 아티스트이자 예술품 컬렉터다.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일종의 회고록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베트남인 아버지 르포로부터 수집 취향을 물려받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시작해서, 한 점 두 점씩 루벤스, 게르치노 등 훌륭한 컬렉션들을 팔아 그림이 걸려있던 벽의 빛바랜 흔적이 누더기처럼 남아있던 유고슬라비아 연안의 작은 공국 브리오니의 왕녀마리루이즈가 파리의 집에서 들려주던 컬렉션들의 황홀한 내용들에 감동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름다움에 얽힌 흔적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이 진귀한 수집품들의 획득과 소유의 전율이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추억의 기록이 된다.

 

나는 수집이라는 특정 대상물에 대한 소유의 취향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책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수집가(Collector)들의 예술관 또는 그 심미안(審美眼)의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회의적 관심이었다. 컬렉터들과의 만남, 그네들의 집이나 그들의 부티크에 자리한 온갖 수집품들, 그리고 그 수집품에 얽힌 컬렉터들과의 추억들, 그로부터 느껴졌던 컬렉터 저마다의 고유한 특징들이 그리움의 감정처럼 아늑하게 흐르는 이야기 속에서 이러한 내 의혹의 눈길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컬렉터들만의 갈증은 저절로 냄새가 맡아지는 모양이다. 뮤지컬 코미디 <로키 호러 픽쳐 쇼>의 등장인물 피터 힌우드의 방 세 칸짜리 런던 집을 방문했을 때 환상과 기이함, 유머가 혼합된 그야말로 기발한 조화의 느낌을 말한다. 세 개의 방을 휘감아 돌던 경이로운 수집품들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서의 광휘를 발하고, -탕은 그로부터 찾고, 발견하고, 획득하고, 은신처에 들이기 위해공을 들이는 컬렉터만의 삶을, 아마 동류의 유대감을 얻었으리라.

 

나는 그 어떤 물질을 얻기 위해 이처럼 공을 들여 본 적이 없다. 만일 호감과 감동의 탄성을 지를 정도인 무엇이라면 눈요기, 관람으로 충분히 감당했을 것이다. ~, 하고 말이다. 어쩌면 피에르 르-탕만큼 그 예술적 아름다움과 그 물품의 단독성이 발하는 미적 발산에 편협하고 건조한 삶의 지대에서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파리 16구의 부유한 부르주아적 건물에서 에릭 마르크 알부앵의 최고수준의 아르누보 양식과 아방가르드 스타일이 세련되게 혼합된 신중하게 선택된 수집품들은 그를 보고 감탄하는 르-탕을 넘어 독자에게도 수집가의 열정이란 무엇인지가 전해진다. 그럼에도 수집품 하나하나에 다른 것은 일절 필요 없을 만큼 완벽한 존재감이 어려 있었다니, 나는 그 존재감이 무엇인지 상상해보려 애쓰지만 경험 없는 나는 그에 도달하지 못한다.

 


-탕은 획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노름꾼이 주사위를 굴리는 것과 같은 신비한 이유로 가장 중요한 행위다.”라고. 우연한 발견에서 그것을 소유로 이끄는 필연은 신비스러울 만큼 컬렉션의 핵심이라는 뜻일 것이다. 발견했을 때 완벽한 존재감이 어린 컬렉션이란 수집가의 주관적 취향일 것이다. 컬렉터들 저마다 자신들만의 고유한 수집품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보편적 매혹의 정서를 가져오는 그 무엇인가가 그들을 유혹하는 것일 게다. -탕은 전 루브르박물관장인 피에르를 비롯하여 영화 <선셋 대로; Sunset Boulevard>의 글로리아 스완슨처럼 뭔가에 고정된 시선을 지닌 우아한 여성 롤랑드루이즈 드 프티피에르, 엘리엇 호지킨, 지미 스톡웰 등 독특하고 매혹적인 20인의 컬렉터들과 그 강박적이고 비범하기까지 한 수집의 이야기들을 펼쳐내고 있다.

 

-탕 또한 독보적 컬렉터로서 자신의 얘기를 아주 조금 스치듯 들려주는데, 자신은 컬렉션으로 투기나 장식을 하겠다는 생각을 결코 해 본적 없으며, “수집은 필요불가결한 동시에 완전히 무용한 일이다.”고 말한다. 무용(無用)한데 필요불가결하다니, 쓸모없는 절대필요라는 이 모순된 문장에 수집가의 애증이 모두 담겨 있는 듯하다. 무릇 아름다움이나 예술이란 개념만큼 이 모순의 문장에 맞춤인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 컬렉터란 예술 취향이 집약된 이름일 것이다. 자신의 취향이 온전하게 배어있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순간의 만족을 가지는 느낌, 그러나 이 물질적 향취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이 물욕은 끝없이 갱신되지 않으면 고통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이 호사가는 무언가를 다시 사기 위해 팔아야만 하는 자신을 가난한(?) 컬렉터라 부른다. 아마 르-탕은 이러한 수집 취향의 굴레를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앞으로도 오랫동안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 발견과 획득의 유혹에 기꺼이 굴복할 생각이다.” 미지(未知)에 대한 궁금증과 그 신비의 장막 뒤에 빛나는 아름다움에 대한 매력의 기대는 떨쳐낼 수 없는 것인 모양이다. 그가 한때 열정적으로 수집했던 신낭만주의자들의 작품이 우아하고 비현실적 미학이었던 것처럼, 수집이란 우리네에게 부족한 그 어떤 정서적 매력 요인을 선사해주는 원천인지도 모르겠다. -탕에게서 나는 컬렉터란 어떤 존재인지를 배우게 되었는데, ‘파리의 배로 불리는 레알 시장 인접 몽토르게이 거리에 있는 유명 컬렉터인 보리스 코치노의 집에서 시대를 아우르는 희귀품 조합들과, 그 시절을 풍미했던 예술가들과의 추억이 가족처럼 친밀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던 기억으로부터이다.

 

그것은 경험 할 수 없었던 시대와 현재의 우리를 이어주는 살아있는 연결고리라는 것이다. 삶의 영속성에 대한 무의식의 갈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친구인 자크의 집 벽에 자신이 판 컬렉션이 안전하게 걸려 있음을,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 기뻐하는 르-탕의 시선과, 획득과 소유의 전율이란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것임을 이 마지막 저술에서 말하는 것은 꽤나 의미심장하게 여겨진다. 한 평생을 아름다움에 얽힌 흔적들에 에워싸여 살았던 이 예술 컬렉터의 이야기에 심취하다보면 그 쓸쓸하고 아늑한 아름다움으로 채색된 옛 기억을 거닐다 돌아 온 느낌이다. 무언가를 수집해 본 이들에겐 공감의 즐거움을, 수집의 유혹을 가져본 적 없는 나와 같은 이들이라면 예술의 향취와 추억의 길을 거니는 그런 기분 좋은 여정이 되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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