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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의 소리 - 개정판 ㅣ 최인훈 전집 9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7월
평점 :
1967~ 1972년에 각기 써진 한반도내에서 암약하던 일본 간자(間者;오늘의 말로 간첩)의 목소리로 전하는 한국인의 자신들이 알지 못하게 뼛속 깊숙이 내재화 되어있는 식민지 노예근성과 그 비루함과 몽매성에 대한 관찰기이며 담화문이다. 故최인훈 선생의 이 소설 《총독의 소리》는 5년에 걸쳐 총 4편으로 집필된, 소설의 통념적 형식을 파괴하면서까지 이 사회에 전하려 했던 빙적이아(憑敵利我)의 간절한 외침이기도 하다. 일본의 간자와 일제에 부역하던 무리가 그것들이 우려했던 징벌과는 달리 그대로 부패한 축재와 권력을 이어가며 반도의 상층부 지배 집단으로 기득권층을 이루고 있게 되었음에, 바로 그러한 결코 깨어나지 못할 반도민의 정치적 인식능력의 한계를 보았음에 대한 쾌재의 풍자이기도 하다.
‘빙적이아(憑敵利我)’란, 적(敵,친일부역의 무리)의 입을 빌려 내부(한국민과 그 사회)를 깨우치려는 방편으로 최인훈 작가가 역사적 타자의 입을 빙자해서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를 환기하기 위해 사용한 서술 도구이다. 소설에서 유령방송국을 통해 담화를 발하는 ‘총독(總督)’은 한국 내에서 일본을 위해, 한국의 정치사회는 물론, 외교, 국방, 경제를 망라한 그 현황에 도사린 일제 부역자들의 활약상, 즉 식민지 잔재가 왕성하게 반도를 망치고 있음으로 인한 재 침탈 가능성이 숙성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환호이며, 부역자 무리의 노고에 대한 칭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을 달리 말하자면 한국의 기득계층은 곧 친일 부역자무리가 점령하고 있다는 인식이며,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성장을 방해하고, 국론을 분열시켜 결코 화해할 수 없이 사분오열되어 어떤 단일한 민중의 권력도 부상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제어함으로써 외세에 무기력한 민족으로 남아있도록 하고자 하는 사대주의와 그것들의 자기 영달과 이익 이외에는 철저하게 분쇄하고자 하는 반민주, 권위주의 사회의 지향이며 정착이다.
여기에 동원되는 수단은 남북의 휴전상황 고착화를 이용한 반공(反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효과이다. 즉 빨갱이 몰이는 불의한 친일 뿌리의 기득권을 영속화하는 기막힌 방법이며, 몽매한데다 노예근성까지 갖춘 반도인의 맹목적 충성이 거들어주기까지 한다. 일제 식민지 기간 내내 일제에 저항했던 모든 반도인을 빨갱이로 몰아 처단했던 효율성의 경험이, 이제 반도인의 정신에 각인되어 손쉽게 정치적 반대세력을 몰아세우는 유효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총독의 소리》, 제1편 89쪽에서】
소설 속 총독이 발하는 4편의 담화를 읽다보면, 2025년 지금 한국사회에 펼쳐지는 이 혼란의 정국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가의 역사적 실체를 성찰 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그 근원인 민족 배반자들을 청산하지 못하고, 친일의 근성을 발본색원하지 못한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망각증세, 다시 말해 일제 부역자의 종자인 멸종되어 마땅한 반(反)민주주의 친일 정당 소속 윤 모가 말하듯 ‘1년만 지나면 개, 돼지들은 모두 잊고 다시 (국회의원으로) 선택해준다’는 어리석은 노예근성에 근거한 흉측스런 말에 가닿는다. 아마 이 근성은 한국 내 일본 간자들의 우두머리인 총독의 말처럼, 이들 노예근성의 한국인들이란, “인간 조건에 대한 감각이 모자란 종족”이며, “정치적 음치(音癡)이자 풍문에 사는 자”이고, “이목구비가 있으면서 죽은 자”들로서, 목하 극우를 표방하는 폭력적 야만의 작태에 대해 부끄러움도 모르는 종자들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안다는 것이 요즘보다 처절하게 그 중요함을 인식하여야 할 때가 없었던 듯 하다. 이 땅에 민주주의와 그 기반 요소들인 인권과, 평등과 공정성, 법치주의가 표면적으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표면아래서 이를 집요하게 방해하고 훼손하는 엄청난 규모의 퇴행적 세력이 있었음을 목도하고 있는 지금, 한국인, 우리들의 역사적, 민족적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뼛속까지 아려오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너무도 연약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법치는 일제 부역의 무리들, 민주주의와 헌법수호를 열망하는 국민을 향해 빨갱이 타령을 하며, 법 초월의 무도함을 지껄이는 바로 그것들이 이를 증거한다 할 것이다.
【《총독의 소리》, 제2편 121쪽에서】
50여 년 전에 써진 이 인용문은 <총독의 소리> 노변담화방송을 듣던 한 시인의 자괴감 어린 자기성찰의 목소리다, “방대한 헛소문이 엉킨 전선들의 잡음처럼” 난무하는 실상은 마치 지금 벌어지는 저열함에 지배된 소셜미디어와 사이비 언론들에 넘쳐나는 조작과 날조, 기만과 거짓을 통해 돈벌이에 나선 군상들과, 이에 영합하여 맹목적 신뢰로 옹졸하고 편협한 이성 없는 무지를 뽐내는, 자신들의 노예근성에 복무하는 군상들의 악의적 댓글과 퍼나르기를 보고 있는 듯하다.
“원시인의 귀보다 더욱 가난한 초라한 장치를 조작”하면서 “이 세상의 악의와 선의의 목소리를 알아들으려는” 시인은 그나마 자신의 무지에 대한 성찰이 보이기라도 하지만, 저 친일 부역 종자들이자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부패한 기득권 무리들의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무도함과 불순함, 폭력성, 이를 선전 선동하는 것들에게서는 그 어떤 역사적 각성은 물론 도덕성조차 찾을 수 없다. 오직 자신들의 편익과 편의, 권력과 축재(蓄財)라는 탐욕만이 목적인 불의함만이 더러운 썩은 내를 풍길 뿐이다. 이것들에게는 헌법의 수호, 즉 법치의 질서도,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정신도, 헌법 전문에 새겨진 대한민국의 민족정신인 현대사까지도 왜곡과 파괴의 대상이 된다.
【《총독의 소리》, 제3편 129쪽에서】
외교 무대에서 버젓이 자국의 국기를 외면하여 국가를 모멸하고, 적국의 입장에서 식민지민이 생각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발언을 국영방송에서 서슴지 않고 뇌까리는 것들이야말로 한국사회의 기득권 계층의 낯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의 한 표징일 것이다. 위의 인용문장은 청산되지 않고 이 사회의 권력과 부를 움켜쥔 친일부역의 종자들이 지닌 혐오스러운 믿음의 실체를 토설한 내용이다. 움켜쥔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이것들이 자신들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국민을 향해 빨갱이 몰이와 민주주의 근간의 파괴라는 이중의 배격 수단을 활용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소설은 해방 후 202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식민지 황국신민의 충성스런 노예로서의 민주주의의 싹이 자랄 수 없도록 사회의 혼돈을 상시화하며, 일본의 한반도 재탈환의 토양을 성숙시키고 있음에 대한 자기 격려의 말을 그치지 않고 있음에 매서운 질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식민지 지배 조건이 해방 이후 80년이 지난 지금에도 고스란히 유지 보존될 수 있는 가에 대한 국민 각자의 반성의 요구이다. <총독의 소리>에서 간자가 한반도의 정세에 대해, “분단 대치상황으로 인한 군사비 과도 지출, 남북 간에 적대적 무한경쟁 체제로 인해 통일은 요원한 문제일 것”이라고 진단하듯, 친일 부역의 무리들은 이 불안한 분단의 지속이 권력의 유지와 방어에 요긴하기 때문에 종전(終戰)이나, 남북의 평화적 화해무드를 방해한다.
이 불안정성이 곧 기득권 유지의 필요조건인 탓이다. 2025년, 현재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와 국가적 현실의 이해를 향한 적극적 앎의 여정이며, 우리들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하는 가에 대한 충실한 지혜를 향한 탐구의 노력이 될 것이다. 소설은 비단 국내 정치질서에 대한 성찰만이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에 대한 냉혹한 인식을 촉발시키는 현실적 진단의 통찰도 있으며, 엔카(演歌)를 기원으로 한 일본의 리듬을 그대로 답습한 트로트에 열광토록 분위기 몰이를 하는 황색 미디어들이 유행처럼 하는 짓, 즉 일본풍의 선율과 음계에 익숙해짐으로써 정서적으로 내지(內地;일본을 의미)와의 유대를 계속하고 있음의 제국일본을 향한 복종의 표지임을 말하는 것들을 향한 반면교사의 비판적 메시지도 있다. 즉 보이지 않는 문화적 식민 토양을 축조하려는 은밀하고 더러운 반민족적 행위에 대한 응징의 메시지다.
매국 황색미디어에서 시작된 이러한 친일 부역 도당의 신(新)황국신민화 표방은 이제 공중파 방송에까지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사회의 기득권 계층이 거의 모두가 친일의 뿌리를 지니고 있음의 반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최인훈 선생은 아직도 ‘이따위 소리를 하고 있구나’ 라며, 작금의 한국사회에 대해 비통과 울분을 금치 못했을 것 같다. 지금 벌어지는 내란의 심판은 바로 신(新)식민지화를 도모하던 매판 세력과 민족적, 민주주의적 민중세력과의 싸움이라는 오래된 뿌리를 지닌 역사적 심판인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과 소수의 반민주 기득권 집단과의 결전이라는 의미이다. 이 작품으로부터 현대사의 구체적이고 수월한 이해를 수행하고, 나아가 『해방전후사의 인식』, 『반민특위의 역사적 의미를 다시 묻는다』와 같은 우리 현대사의 독서로 나아가면 보다 명료한 역사인식을 갖추는데 적절하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