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권() 수를 좀 줄여 조금은 가벼운 한 달을 준비했다. 해서 좀 두꺼운 것으로, 한 권의 책에 긴 호흡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으로 오직 다섯 책만을 선택했다. 우선 옥스퍼드 영문학 교수인 존 캐리가 엮은 역사의 원전(The Faber Book of Reportage)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 거의 종착지에 이르렀다. 해설의 덧칠이 없는 순수한 현장기록이라는 서문을 하고 있는데, 서구 중심의 2,500년 인간역사의 기록들이 목격자 기록이라는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는 어려울 것이겠지만 나름 근접한 기록물들을 담아내고 있다.

 

현장의 목소리라는 신빙성과 긴박성이 진실을 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그 현장성이 진실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아무튼 이 기록들을 살인 선집이 되지 않도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르포르타주라는 인간의 관심사는 죽음의 기록들을 벗어나기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각기 MIT와 프린스턴에서 문학과 독문학을 가르치는 하워드 아일런드와 마이클 제닝스 두 교수의 공저인 발터 벤야민 평전(A Critical Life)은 원제목처럼 일생을 비평가의 삶으로 지낸 인간에 대한 전기이다. 다만 이 평전은 개인의 사적 생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의 저술들을 근저로 한 사상에 중점을 둔 연대기라 할 수 있겠다. 아마 벤야민을 읽는 이들에게는 개별 저작들의 사유의 기초가 되었던 정황들을 접할 수 있어 독서에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독일 낭만주의 문학운동의 기수였던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는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으로 낭만주의를 탐색하는, 그러면서 기성의 문학에 대한 일견 잔혹한 비평을 담아내고 있는 저작으로 보인다. 지적 자만심에 가득 찬 청년기의 저작으로 현학적 글쓰기가 보인다. 그의 소설들이 근간으로 출간되고 있는데, 참고 도서로 읽을 만할 것이다.

 

그리고 두 편의 소설 작품을 선택했는데, 프랑스 작가 안느 브레스트의 우편엽서와 중국 작가 찬쉐의 격정 세계. 안느 브레스트의 소설은 단 네 사람의 이름만이 적힌 엽서가 도착함으로써 그 이름들의 역사가 술회되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요 제재인 홀로코스트보다는 20세기 유럽사회를 휩쓸던 반유대주의에 어린 인종주의와 그것의 근저를 차지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로 보인다. 욕설을 꽤나 주절거리면서 읽어 나갈 것 같다.

 

찬췌의 소설은 더럽고 악취나는 절망의 양상으로 채워졌음에도 한껏 우아함을 뽐내며 오늘의 정치적 문화적 곤경에 빠진 우리 개별 인간들을 떠올리게 했던 전작(前作) 황니가의 생생한 매혹 때문에 다시 시선이 간 작품이다. 무미건조한 삶, 먹고 사는 게 빠듯한 삶, 대충 건성건성으로 사는 삶, 목표도 의미도 없는 삶....” 이렇게 살아가는 수많은 우리네 삶을 과연 문학이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런 삶들에 다시 격정을 불러 낼 수 있을까를 질문하는 소설 같다. 아마 또 한 번 찬쉐의 세계에 빠져들어야만 할 것 같다. 작품만으로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에게 하버드, 코넬등에서 문학교재로 찬쉐의 소설이 활용되고 있다는 선전문구는 사족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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