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사악함을 못 본 체함으로써 혹은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허무주의를 극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와 반대로 유일한 희망은 허무주의를 명명하고, 질병의 치료약을 찾기 위해 그것을 목록화하는 데 있다. 요컨대 지금이 희망의 시간임을 인식하자. 비록 실현되기 어려운 희망일지라도."

Nous sommes dans le nihilisme. Peut-on sortir du nihilisme? C’est la question qu’on nous inflige. Mais nous n’en sortirons pas en faisant mine d’ignorer le mal de l’epoque ou en decidant de le nier. Le seul espoir est de le nommer au contraire et d’en faire l’inventaire pour trouver la guerison au bout de la maladie. Cette collection est justement un inventaire.

 -갈리마르에스푸아르 총서, 책임편집자 알베르 카뮈,

출처: <카뮈, 지상의 인간2> 47, 한길사

 

 

인용한 위 문장은 에스푸아르(Espoir) 총서 모든 책의 뒤 표지에 표기되었던 알베르 카뮈의 글이다. 프랑스 최고의 출판사인 갈리마르의 책임편집자였던 알베르 카뮈는 에스푸아르(희망)라는 소설과 비소설을 망라한 총서 발간의 책임자로서, 전후(戰後) 프랑스인들의 앞에 놓여있는 납득할 수 없는 불의한 세계의 성분을 직시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때문에 이 총서의 초기 목록들은 어둠이 지배하는 저작들이었으며, 표지조차 회색빛을 띤 소프트 커버였다고 한다.

 


설혹 달성이 미완에 그칠지라도 무엇인가를 희망하기 위해서는 직면한 문제들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말고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그 문제가 품고 있는 혐오스러움, 더구나 그것이 마주 선 자신의 것일지라도 전부 열거해서 제대로 성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믿음의 천명이다. 전후 독일 부역자들의 처리문제로 프랑스 사회는 용서와 처벌로 양분되어 곤혹을 치렀다. 그럼에도 드골 임시정부는 엄중하고 주저 없이 민족 반역자들을 극형으로 단죄했다. 프랑스 문단에는 친독은 아닐지라도 기회주의적 방관자들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인 양 슬그머니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 놓고 있었다. 카뮈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카뮈는 시몬 베이유의 유작 <뿌리 내리기>의 한 문장을 인용한다. "공식적인 역사는 살인자들의 말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 천박한 영혼이 아니고서 어느 누가 알렉산더를 성심껏 찬미할 수 있겠는가?" , 알렉산더의 동방침략 전쟁과 2차 세계대전은 물론 인간의 역사는 이렇듯 무법자들의 언어로 써진 기록이다. 카뮈에게 인간은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의무를 가져야 한다고 여겼던 듯하다. 인간들 자신의 어둠의 지대를 죽 나열해서 그것들에 웅크리고 있는 어둠의 욕망들을 들춰내는 것이 당대 문학예술의 의무라 생각했다고 이해된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지성의 노력을 갖지 못했을 뿐아니라, 민족을 배신한 파렴치한들을 단죄하지 못한 역사를 가지고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에겐 이같은 목록화된 문제들의 기록이 없다. 때문에 치료약도 없으며, 희망의 목록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70여 년 전의 과거에 발목이 잡혀있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노력을 하여야만 할 것이다. 역사에 늦은 것이란 없다. 이 목록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미래를 꿈꾼다는 것은 부질없는 모래성 쌓기가 될 것이다. 현실이 그러함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오늘 한국의 시인들, 문인들은 희망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이 단어에 혐오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것이 모두가 될 수는 없다. 목록을 만들어라! 사악하고 부정했던 것들의 목록을. 이 노력을 회피하면서 희망은 무지하고 분별없는 인간들이나 하는 망상이라 말하는 것은 무책임과 의무의 방기일 뿐이다. 상처를 보려 하지 않는다고 그 상처가 없었던 것이 되지 않는다. 카뮈의 희곡 작품인 <오해>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실존 전체를 다루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존재 기반 자체를 갱신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면 미래에 대해 희망을 걸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전시(戰時)에 의지와 관계없이 고향 알제로 돌아갈 길이 차단된 채 이방인으로 프랑스 본토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한 인간의 고뇌어린 성찰이다.

 

"정신이 마침내 칼은 칼로써 정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무기를 들고 승리를 쟁취했을진대, 어느 누가 정신으로 하여금 잊을 것을 요구하겠는가? " 이 발언의 의미는 증오가 아니라 기억에 기초한 정의 그 자체의 실현이다. 정의를 잃어버린 민족에겐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책을 읽다 하나의 단상을 더해 놓는다.

 


"이상도 고결함도 갖추지 못한 자들이 정치와 인간의 운명을 빚고 있다.

정치판에서 고결함을 갖춘 이들은 찾아볼 수 없다."

-출처: 알베르 카뮈, 작가 수첩 1,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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