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판단력에서 유리된 지식의 패악(悖惡)>
“행동은 비루하고 언변만 학자인 자들이 나는 싫다.”
- 파쿠비우스(Marcus Pacuvius; B.C. 220~B.C.130)
몽테뉴의 에세(Esse) 1 권 25장 「현학에 관하여」를 읽던 중 재밌는 구절을 발견하고 몇 자 남겨두기로 했다. 이야기는 고트족이 그리스를 침범했을 때, 그들은 단 하나의 도서관도 불태우지 않고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반전은 고트족이 지식과 문화를 존경하고 숭배해서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 도서관들을 온전히 남겨두어야 판단과 실천의 장을 멀리하고 들어앉아 글에 코를 빠뜨리는 일에 몰두하게 되리라는 견해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즉 문(文)을 숭상하고 이의 판단과 실천적 현장은 도외시하는 식자들만 우글거리기를, 그래서 칼집에서 칼도 꺼내지 않고 손쉽게 주인이 되려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몽테뉴가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정의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공부할 뿐, 그것을 판단하고 실천하는 법은 배우지 못하는, 남의 지식만으로 가득 채워진 지식의 무용성을 보여주려는 데 있다. 16세기 조선 또한 서원에 들어앉아 세치 혀를 훈련시키는 데 열중하다 왜에 손쉽게 국토를 유린당하고 백성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 것도 이와 다른 현상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 페리고르 지방의 이 귀족은 급기야 “너무 많이 공부하고 너무 많은 재료를 (두뇌)에 채워 넣으면 둔해지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고 하기도 하지만, 반지성(反知性)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는 그 어느 때보다 도서관이 많이 늘어났다. 대부분의 도시에는 곳곳에 공공 도서관이 있어 기억의 창고를 가득 채우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발걸음들로 분주하다. 그래서 이 사회의 사람들의 식견이 더 깊어졌는지, 혹은 이 사회가 더 선하고 정의로운 세계가 되었느냐고 물으면 선뜻 답변하는 데 주저하게 된다. 책과 학문에서 우리들은 무얼 배우고자 하는 것일까? 아마 법학, 의학, 경영학, 공학 등등 돈 버는 목표에 소용되는 것을 목표로 한 공부이기 십상일 것이다. 결국 정의를 실천한다거나 올바른 판단을 하기위해서나, 선한 행동을 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러한 양상은 학교 교육 또한 마찬가지이며, 오히려 더욱 극성맞게 판단력과 덕성에 관해서는 어떠한 것도 가르치지 않으며, 배우지 않는다.
때문에 고대 로마 시인 파쿠비우스가 말하듯 지식은 가득한데 행동은 비루하고 혀만 재빠른 인간들만 양산되고 있는 듯하다. 지식과 판단력을 비교해보면, 판단력은 지식 없이도 작동하지만 판단력 없는 지식은 파렴치하거나 악덕이 되기 일쑤이며,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결국 이 사회에 기억력은 충실하지만 판단력은 텅 빈 인간들로 득실대다보니 사회 정의는 실종되고, 선악이 뒤틀린 세계가 펼쳐질 수밖에 없게 된다. 몽테뉴는 법관을 임용할 때 지식만을 검증하는 시험은 그릇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양식(良識) 또한 검증되는 채용제도의 필요를 역설한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 사법의 정의를 위해서 정말이지 이들 기구에 지식은 물론 이해력과 양심이 함께 갖춰지기를!”이라고 썼다.
"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다른 어떤 지식도 해롭다! "
-에세 1권 25장, 265쪽, 민음사 刊 2022.8, 1판 3쇄에서
지식은 정말 위험한 양날의 칼이다. 판단력, 즉 선한 의지에 대한 배움이 없는 자의 손에 들어가면 필히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 세네카가 “지식만을 채운 인간들이 나타나고부터 선한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듯, 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인간들에게는 다른 어떤 지식도 해롭기만 하다는 것을 오늘 정치검찰이 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현실로 입증되고 있듯이 말이다. 몽테뉴는 “오랜 공부 뒤에 얻은 것이라곤 법조문에 불과한데 우쭐하고 오만해져 부어오른 영혼으로 바람만 잔뜩 들어간 인간들의 독성으로 가득 찬 정신”을 비판하고 있다.
지식과 바른 판단력으로서의 지혜는 전혀 다른 것이다. 또한 지식과 실천적 행동 또한 그 거리는 한참이나 먼 것이다. 우리 사회가 17세기 프랑스인이 생각하기를 권했던 인격과 실제 행동으로부터 격리된 지식 쌓기의 그 혐오스러움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 더구나 이를 시정하기는커녕 더욱 고수하려 한다는 점에서 수치스러움이 엄습해온다.
지식 자체는 정신에 광명을 주는 것도, 눈을 뜨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나 또한 이러한 지식의 직분을 혹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보게 된다. 채워 넣은 지식이 올바른 가치 판단으로 이끌어주고, 판단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지혜로 체화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인격형성과 선한 실천력으로부터 유리된 지식만이 난무하는 이 사회는 분명 잘 못된 길로 향하고 있는 것일 게다. 글한테 망치질 당한 '글 멍청이(Lettreferits)'들이 설쳐대는 사회는 고트족의 좋은 침략 대상이 되리라. 양심과 판단력을 지니지 못한 공허한 지식이 휘두르는 칼날이 이 사회를 어디까지 추락시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