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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쿠쿠 랜드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평점 :
“첫 번째 원고:
유실된 그리스 산문설화 『클라우드 쿠쿠 랜드』는 안토니우스 디오게네스가 하늘에 떠있는 유토피아 도시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양치기를 쓴 작품으로 집필 시기는 서기 1세기 말경으로 추정된다.” - 18쪽
소설은 다섯 명 개개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섯 서사와 양치기 아이톤의 이상의 장소를 향한 기이한 모험 이야기인 고대 필사본 「클라우드 쿠쿠 랜드」가 이들 서사와 맞물려 전개되는 구성을 하고 있다. 각 서사를 이끄는 인물들 저마다의 생의 기록을 이야기하기에 어쩌면 800여 쪽으로도 모자랐을 것이다. 이 소설책이 두꺼워진 까닭일 것이다. 사실 이 분량 때문에 빠른 속도로 읽게 되었는데, 이것은 큰 실수였던 것 같다. 남은 부분이 줄어들 때 끝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성급히 읽어댄 자신을 책망했으니 말이다.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나 새로운 항성 ‘베타 OPh2’를 향해하는 22세기 어느 즈음인가 우주선 아르고스 호의 소녀 콘스턴스가 「클라우드 쿠쿠 랜드」의 원고를 읽는 장면으로 시작되지만 조금 순서를 바꿔 감상글을 열고 싶다.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을 앞둔 며칠의 장면 속에서 묘사되는 자수(刺繡)작업으로 노예처럼 살아가는 안나라는 인물에 내 감정을 꽤나 많이 쏟아 부었던 까닭인 것 같다. 심부름길에서 우연히 문자를 가르치는 소리에 홀리듯 다가가 안나가 듣게 되는 것은 『오디세이아』다. 안나는 선생 리키니우스에게 자수(刺繡)공방을 위해 심부름하던 포도주를 축내면서 문자를 배운다. 그 첫 배움의 단어가 ‘오케아노스(Ωkεανοξ). 대양(大洋)’이다.
리키니우스는 “그 단어를 에워싸는 원을 그린 다음 그 중심을 쿡 찌른다. 여기는 알려진 세계. 그런 후 이번에 원 밖을 찌른다. 여기는 미지의 세계. (71쪽)” , 안나는 언어의 거대하고 신비한 힘에 매료되고, 이 그 언어가 가리키고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 문자를 배우기 위해 공방의 매질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피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장면을 바꾸어 같은 시대를 사는 불가리아 산 속 마을에 아버지가 죽는 날 언청이로 태어난 소년 오메이르를 쫓는다. 그에게 가해진 주변의 살벌한 눈빛들을 피해 할아버지의 보호 아래 가족 사랑의 온기로 숨기듯 양육되던 소년은 그가 키우던 두 마리의 소와 함께 술탄의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징발되어 전쟁의 욕망, 인간과 동물, 모든 생명체의 고통과 죽음으로 유지되는 전쟁의 실체를 목격한다. 소년이 꿈꾸던 휘황찬란한 대도시, 끝이 없어 보이는 콘스탄티노플의 성벽과 높이 솟아오른 건물들의 웅장함은 의미없음, 소년은 눈을 피해 전장으로부터 도주한다. 고향, 어머니와 누이가 있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불가리아의 집으로.
700년 남짓의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아버지마저 여윈 채 후견자가 된 여인과 함께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소년 지노가 쌍둥이 자매인 두 사서의 사이에서 그네들이 읽어주는 『오디세이아』가 흐르고, 『황금당나귀』,...신화들이 그의 귀를 적신다. 소년은 영웅적 희생이라는 대의에 떠밀리듯 한국전에 참전하지만 중공군의 포로가 되어 영국군 포로 렉스를 만나 땅 바닥과 서리 위에 써지는 낯선 그리스 문자를 홀리듯 바라보며 사랑을 키운다. 시간은 그의 나이 여든여섯 살, 레이크 포트 공공도서관에서 하루 앞둔 「클라우드 쿠쿠 랜드(구름 뻐꾸기 나라)」 연극 공연을 위해 다섯 명의 어린아이들과 준비하는 리허설 장면을 비춘다. 이 때 한 발의 총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온다.
고된 청소일로 아들을 보듬기 위해 애쓰는 엄마 버니와 함께 사는 자폐 증상을 지닌 소년 시모어는 할아버지가 남긴 주변에 풍부한 삼림과 자연이 있는 주택으로 인해 세상의 온갖 개발 소음을 잠시라도 피해 고통으로 절규하는 자신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들의 탐욕이 어디 자연을 그대로 두던가? 그가 늘 찾던 트러스티프렌드(믿을 수 있는 친구), 올빼미가 더 이상은 살 수 없는 개발을 상징하는 불도저가 나타나 삼림을 갈아 없고 나무를 베어낸다.
“에덴스 게이트 표지판이 등장하고....맞춤형 타운하우스와 별장, 최상급 택지 보장. 불도저들.....꿈꾸던 레이크포트 라이프 스타일을 누리세요.” 소년은 자신의 은신처가 망가지는 이 개발의 소음을 참을 수 없다. 그는 폭탄과 총을 들고 에덴스 게이트와 인접한 도서관을 폭파시키기 위해 찾아든다. 사서 섀리프에게 쏜 총이 그의 어깨를 관통하여 피가 낭자하게 바닥을 적신다.
이제 소설의 시작 장면으로 돌아가자. 지구 시간으로 592년이 걸리는 항성 베타 OPh2로 향하는 우주선 아르고스를 통제 관리하는 인공지능 시빌이 있는 격리된 볼트원이라는 공간에 열네 살 소녀 콘스턴스가 있다. 다리를 놓아주는 세대,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존재. 후 세대가 새로운 세계를 맞이할 수도 있도록 앞서 준비하는 세대로서, 세대를 거듭하며 폐쇄된 항해를 이어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주선내 역병이 돌고 모든 사람들이 죽은 듯하다. 방호복을 입혀 10년 치에 달하는 생존식량과 함께 볼트원으로 자신을 밀어넣던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시빌은 유일한 생존자를 지키기 위해 봉쇄된 문을 열지 않는다.
아빠가 들려주던 「클라우드 쿠쿠 랜드」의 아이톤의 우스운 여정 이야기, 자신이 무수히 반복해 들려달라 요구했기에 아빠가 하는 이야기의 다음을 말할 수 있었던 이야기의 기억들이 읽는 이의 감정을 촉촉이 적신다. 콘스턴스는 가상의 도서관을 찾아 가상의 지구인 아틀라스를 통해 아빠의 자취를 찾는다. 아빠와 엄마는 왜 우주선을 타야 했을까? 흐릿한 정경에 휘날리는 깃발을 누르자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드러난다. 거기서 아빠 책상위에 놓인 「클라우드 쿠쿠 랜드」를 보게 되고,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콘스턴스의 진실을 향한 집요한 인내와 용기의 과정이 소설 밖에 있는 독자를 긴장하게 한다. 제발 진실이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게 해줘~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안나는 폐허가 된 소(小)수도원에서 가져 온 필사본과 우르비노의 필경사들이 급하게 피신하며 흘리고 간 법랑위에 도시의 그림이 그려진 코담배갑을 넣은 주머니를 지니고 부서져가는 쪽배를 타고 도주한다. 파도와 바위에 떠밀려 부서진 쪽배가 도달한 곳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한 곳이다. 그녀는 서쪽으로 발걸음 향한다. 굶주린 안나의 눈앞에 나타난 주인 없이 구워지고 있는 새를 덥석 입에 물지만 둔기가 그녀의 머리를 내리치고 의식을 잃는다. 도망 병사인 오메이르와 두 사람은 이렇게 만난다. 둘은 오메이르의 여정에 동행한다.
가는 길에 의심을 피하듯 안나는 포로, 오메이르는 의기양양하게 개선하는 점령군의 외향을 하면서, 오메이르는 안나가 꼭 껴안고 있는 꾸러미의 신비로움을 지켜주고 싶어한다. 고향 마을에 다다랐을 때 그는 커다란 나무에 파인 구멍에 그것을 숨겨두고 안나에게 동의를 구한다. 안나는 그것이 안전함을 안다. 문자의 마법에 대한 미신이 사람들을 어떻게 폭력화시키는지를. 안나는 오메이르의 아내가 되어 아이들을 낳는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 막내 아이가 고열로 시달릴 때 오메이르는 비를 맞으며 꾸러미를 안나에게 내민다.
안나는 필사본을 꺼내 아이톤의 모험 이야기를 낯선 발음으로 읽는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병들었던 아이가 열이 가라앉아 맑은 미소를 짓는다. 이 행위는 마법처럼 반복되고 아이들과 부부의 행복은 가이없이 흐르지만 안나는 쉰 넷의 나이로 “5월, 한 해의 가장 화창한 날, 외양간 옆 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어 세 아들이 곁을 지키는 가운데 죽는다.” 이 죽음의 장면도 울컥하는 물살이 몰려들게 하지만, 죽은 아내가 간직하던 코담배갑에 그려진 도시그림에 의존해 꾸러미의 필사본을 들고 우르비노로 생의 마지막 걸음을 걷는 오메이르의 여정은 왈칵 눈물이 흐르게 한다. “이번 생이 다하면 또 다른 생이 있어 안나가 신의 날개 밑에서 자기를 기다려 주기를 기도한다.”
세상의 무수한 손가락질과 폭력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 언니 마리아의 죽음에 죄책감을 지니고 천애의 고아로 평화로운 삶을 갈망했던 안나의 이야기가 양치기 아이톤의 원치 않은 변신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세상까지 주저앉지 않고 찾아가려는 충동의 이야기와 맞물려 어떤 시원(始原)의 감성을 건드린다. “깊은 지혜 속에 깊은 슬픔이 있고, 무지 속에 많은 지혜가 있습니다.” 마침내 깨달음에 이른 아이톤의 이 발설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다가와 내 삶의 언어로 자리 잡는다.
이렇게 다섯 명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페아, 사랑하는 이들을 상실한 아이들, 언청이와 같은 세상에서 소외된 이들이라는 여느 아이들이 겪지 않는 폭력적인 고통을 견뎌야 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소설의 서사 축인 필사본 「클라우드 쿠쿠 랜드」의 멍청이, 바보, 미친짓을 하는 주인공 아이톤과 다르지 않다. 소설 속에는 “이 원고가 어떤 경위로 콘스탄티노플 수도원 도서관에서 우르비노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소설을 끝까지 읽은 우리는 안다. 그것은 용기와 인내, 사랑과 헌신의 걸음들이었다는 것을.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관문으로서의 책이 지닌 필연적 귀결이었음을.
소설은 생태계 자연, 지구라는 행성을 파괴하며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의 감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있으며, 인간에게 아무런 의미도 건네지 못하는 전쟁의 폭력성, 인간의 다름에 대한 끈질긴 배제와 격리의 이기적 잔혹성, 그리고 이 모든 것, 추하고 더럽고 흉측한 것들을 지워 은폐, 포장하는 기만의 비판이 배경처럼 흐르며, 멸균 처리되어 미화된 이미지의 껍질을 벗겨 애초의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배경 서사에도 불구하고 단연 읽는 이의 감성을 휘젓는 것은 ‘책과 이야기’가 발하는 지성의 힘이다. 도서관 사서들이 세상의 고통으로 영혼을 잃어가는 아이에게 그 덫을 잠시나마 벗어나도록 읽어주는 한 구절의 책, 사랑하는 이들에 다가가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로서의 책, 현실의 삶 너머에 또 다른 가능성의 존재를 암시하는 가르침의 책, 하나의 씨앗 안에 황야가 통째로 접혀있듯 세상의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책의 이야기가 홍수처럼 지면을 적시고 있다.
그리고 인간 기억의 안식처로서 영혼이 먼 길을 떠난 후에도 그 기억을 시간의 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아 후세에 전달하는 그 숭고한 힘, 그러함에도 얼마나 싑사리 이러한 인간 열의가 손상되고 사라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 속에서 절로 체득케 된다. 분명 감동적인 책의 헌사이지만 이 소설은 분명 이 행성의 모든 인간과 시스템이 얼마나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깨우치게 한다. 아마 소설 속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소녀 안나가 “축축한 골방에 앉아 말도 안 되는 옛날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세의 정원에서 천사들이 불러주는 찬송가를 듣고 있는” 그 느낌처럼 어쩌면 동일한 감성에 젖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책 한 권 한권이 또 다른 장소와 시간으로 들어가는 우리네 앞에 창창한 삶을 펼쳐보이는 문이라 했던가? 이 문을 열어보라, 아마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얼굴이 여기에 있음을 보게 되리라.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 깨우친 자는 오직 한 가지만 안다.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 5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