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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ㅣ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3
존 그리샴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말 번역본인 이 책의 제목은 조금 얄궂다. 소설 주인공의 출구(出口)를 누설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샴의 소설은 이 정도로는 결코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을까? 맞는 말이다. 이렇게 재밌어도 되는 거야? 라고 토설(吐說)하고 싶으니 말이다. 가히 폭력적으로 몰입하게 하는 소설이다. 660여 쪽에 언제 이르렀는지 몰랐을 정도니까. 잠시 자신을 잊고 싶다면 이 소설이 제격이다 싶다. 그러나 이 세상에 도사린 흉물스러움이라는 망각할 수 없는 물음을 던지니 몰아(沒我)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싶다.
소설은 초반부에 세무관계 법률회사인 ‘벤디니, 램버트 & 로크(이하 ’벤디니‘로 표기함)’의 면접관이 하버드 법대 졸업예정인 스물다섯 살 ‘미첼 맥디르’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입사를 권유하면서 인상적인 문장을 선보인다. 그들은 맥디르에게 결혼 여부를 물으며, “우리는 안정된 가정을 원합니다. 행복한 변호사는 생산적인 변호사니까.(14쪽)”라고 구성원의 행복과 안녕을 중요한 회사의 이상으로 하고 있음을 표명하는 대목이다.
현대의 핵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가정’이란 자본주의의 토대이자 핵심 축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언어이다. 두 남녀와 그들의 아이로 구성된 ‘스위트 홈’이라는 이 낭만적인 형상은 자본 생산 도구인 인간의 노동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조건이자 토대라는 의미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벤디니 면접관의 말은 피고용인을 조종하기 위한 일종의 인질(人質) 유무를 알기 위함이다. 자신들에게 반항할 경우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아내와 자녀라는 대상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사악함이 포장된 언어임이 드러나니 말이다.
벤디니는 마피아 조직이 운영하는 돈 세탁과 탈세를 위한 로펌이다. 맥디르는 파괴적인 고액 연봉과 처우조건으로 이러한 조건 뒤에 숨은 조직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능한 변호사로 인정받아 최단기에 로펌의 파트너가 되기 위한 야망으로 충성을 다한다. 1주에 90시간을 넘는 업무로 헌신한다. 아마 소설 속 시대에는 로펌 입사자인 법대 졸업생만이 변호사 자격시험을 보게 되었던 모양이다.(소설은 1991년에 발표되었음.) 고객에게 청구할 수 있는 업무 수행시간이 곧 보상으로 주어지는 회사에서 시간당 계산되는 고액의 임금은 의욕으로 가득한 젊은이를 유혹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맥디르는 변호사 시험에 수석 합격하고, 이는 지역 신문에 합격자명단과 함께 게재된다.
소설을 이끄는 사건은 이로부터 시작된다. 신출내기 평변호사인 맥디르에게 FBI가 접촉을 해 온다. 죽거나 살해되거나 불법의 주체가 되어 은퇴하지 않는 이상 자의에 의해 퇴사할 수 없는 조직, 마약 조직에 의해 세금 탈루와 검은 돈을 세탁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로펌임을 전해 듣는다. FBI에 협조하여 벤디니의 은폐된 비밀 정보를 제공하거나, 이 제안을 거부하고 후일 FBI에 의해 불법 가담자로 기소되거나 선택하라는 압박이다. 또한 맥디르의 주택 모든 곳과 승용차, 전화에 고도의 감청 장치가 벤디니의 보안인력에 의해 설치되어 있음을.
딜레마, 어쩌면 이 딜레마를 이루는 인간사회의 윤리적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이 소설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비근(卑近)하게 발생한다. 조직에서 불법이나 비윤리적 불의로 내부 부패가 진행되고 있을 때, 이의 정화(淨化)를 요구하거나 외부에 발설하는 인물이 어떤 처지에 이르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해당 조직에서의 생존 포기는 물론 외부 삶에서 조차 평온한 삶을 영위하기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집단에 의해 범죄적 인물로 오히려 내몰리기 일쑤며, 외부에 안정적 보호막을 위한 장치가 전무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이 현실임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정의를 실행하는 것에 이 세계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적대적이기까지 한다는 것을. 이름하여 ‘내부 고발자’라는 께름직하기까지 한 불온한 명명까지.
벤디니의 보안 조직은 맥디르와 FBI의 접촉을 의심하고, 결국 내부 자료의 제공이 일부 이루어졌음을 FBI 조직의 고위 인물을 통해 파악하게 된다. 이제 24시간 내에 더 이상의 내부 비밀 자료들이 전달 될 수 없도록, FBI의 접근을 차단하고 조직의 근간을 지키기 위해, 조직의 배신자인 맥디르를 살해하기로 결정 한다. FBI가 자신들이 보호해야할 정보원을 적인 벤디니에게 누설한 장본인이 된 것이다. 맥디르에게 다가온 위기의 순간, 이 과정은 손에 제법 땀이 차게 한다.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들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숨 막히는 도주와 집요한 추적이 시작된다.
FBI는 자신들의 정보원을 위험에 빠뜨렸고, 그의 안전을 보호함에 있어 신뢰를 상실했다. 맥디르는 벤디니와 FBI 모두를 피해 도주한다. 여기서 예상되는 질문이 있다. 정의는 실천 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이다. 사인과 사인의 관계에서 정의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것은 민사 또는 형사법이라는 실정법에 의해 법의 판결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인과 국가 권력, 또는 개인과 거대 기업 집단이나 기구, 기관과의 싸움이라는 절대적 약자와 강자의 싸움에서 정의는 핵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추가적인 현실적 문제도 있다. 비대한 국가 조직에는 항상 중요 정보를 적에게 누설하고 이익을 착복하는 존재가 있다는 점이다. 서로 불법행위나 비윤리적 행위를 상호 공유하는 폐쇄적 조직인 검찰조직 같은 경우나 조직범죄 집단에서도 이탈이 발생하곤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정의의 딜레마는 자기 편익 우선적 인간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적 본성과 정의 실현을 위한 국가 권력의 사회계약에 대한 인식 변화의 문제라는 두 측면이 도사리고 있다.
전자는 순수한 사적 윤리에 대한 문제이고, 후자는 정의와 사회 안전망 구축에 대해 사인과 국가가 맺는 사회계약의 문제이다. 이를테면 검찰조직의 불법, 비윤리적 행위를 고발하는 해당 조직의 개인을 국가가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가, 위법을 은밀하게 수행하는 기업이나 집단을 고발하는 개인의 안전을 위한 제도의 구축에 대한 논의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정의(正義)’가 실천되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사회계약의 당사자로서 주권자인 시민들 개인들을 향한 물음이기도 할 것이다.
폐쇄적 조직이란 내부 구성원이 동질적 인간들로 이루어져 끈끈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해당 조직에 발을 담그고 있는 시간이 경과될수록 기성의 부패성에도 깊게 연루되는 것을 회피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게 된 조직을 말한다. 만일 이러한 조직에서 어떤 명령이나 지시, 참여에 소극적이거나 거부 의사를 보이는 인물은 바로 배척되거나 해코지를 통해 위험에 내몰곤 한다. 그래서 정의의 실천은 개인의 엄청난 용기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조직은 새로이 들어오는 인물을 자신들 조직문화에 길들이는 비공식적 훈육 프로그램이 비교적 잘 짜여 있다. 결국 동색(同色)의 인간들로 구성된 가장 반사회적 조직이 되곤 한다. 소설 속 로펌 벤디니는 이러한 전형적 사례를 보여준다. 조직 문화를 체화하고 있는 선배 파트너 변호사가 평변호사와 짝을 이뤄 강도 높은 업무를 부여함으로써 오직 해당 조직의 구성원의 시각만을 지니도록 훈련하는 것, 즉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여 조직 내부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폐쇄조직이다. 폐쇄조직은 부패와 불법의 자연적 온상이 되는 토대임을 소설은 이처럼 아주 명료하게 입증한다.
탁월한 스토리 구성, 스피디한 위기 장면의 전환 등, 존 그리샴의 이 작품은 탁월한 재미로 책장을 넘기는 부담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면서도 아주 묵직한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국가권력인 FBI가 맥디르라는 개인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가? 살인 조직인 마피아는 자신들의 범죄증거를 넘긴 조직원을 어떻게 처리하려 할까? 이 둘 사이에서 맥디르가 실현하려했던 정의는 과연 실천할 윤리적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인가?
벤디니의 변호사들은 불법 행위를 일상적으로 행하며 아무런 도덕적, 법적 책임도 느끼지 못한다.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적 행위가 정상적 삶의 행위로서 정당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 조직에 봉사했으며, 그로부터 발생하는 막대한 검은 돈을 보상으로 챙긴 사람들이다. 조직의 폐쇄성과 정의 실천, 국가권력의 무능력과 부패성 등, 이 소설이 우리들에게 던지는 과제는 사실 그리 만만치 않다. 그리샴은 정의 실천의 실현 가능성을 주인공을 통해 말하려는 듯하지만, 그 출구가 그리 화려하지만은 않다. 정의 실현의 딜레마, 우리 세계는 이 딜레마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