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재론적 형상을 모두 품고 있는 도시라면 지나친 수사가 될까?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두 얼굴을, 그 이중적 내재성을, 인간의 속성이란 그러한 것임을 그 자체로 투영하는 장소에 대한 불가피한 이끌림일지도 모른다. 이 도시에 대한 속설은 ‘밀애와 이별’이라는 두 상반된 결과를 발설하곤 한다. 낯선 이들을 사랑의 열정에 휩싸이게 하는가하면 연인들을 갈라서게 만드는 곳, 도시의 여기저기를 가르는 소(小)운하와 발목까지 물이 차오른 보도, 그 거울 같은 표면위에 불을 밝힌 상점의 간판들, 허영을 부추기는 주위의 장식과 기둥과 벽공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눅눅하고 춥고 좁은 안개 낀 골목길은 인간을 비논리적 동물적 욕망에 침잠하게 한다.
프랑스의 젊은 시인 뮈세가 연인 상드를 졸라 한없는 밀애를 기대했던 곳, 그에게 베네치아는 자신과 닮은 욕망의 공간, 열정의 대기였을 것이다. 여기에는 이성(理性)의 냉철이 자리 잡아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오갈 데 없는 정신은 시인에게 한 편의 이야기를 쓰게 한다. 방탕한 정열을 한껏 태우는 쾌락의 게으름이 흐르는 세계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안개 낀 운하 위를 미끄러지듯 유영하며 밀애의 장소로 다가가는 곤돌라는 그야말로 에로티시즘과 일체가 되어 연인을 기다리는 폭발할 것만 같은 부푼 연심, 그 혼돈의 설렘을 감각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각인할 수 있게 한다. 뮈세는 단편 「티치아노의 아들」에서 자신의 반영인 주인공 피포와 베네치아 최고의 여인 베아트리체 도나토와의 사랑을 그려낸다.
최고가문의 상속녀이자 미망인인 귀족 여성의 사랑의 헌신은 연인의 잠자는 재능의 회복에 대한 희망찬 기대다. 나는 베네치아를 떠올리면 미로같은 좁은 골목길, 미궁(迷宮)에서 욕망의 제물을 기다리는 미노타우로스의 이미지와, 이성(理性)과 사랑의 끈을 상징하는 ‘아드리아드네의 실’이 내 지각에 재생된다. 길을 잃지 않고 목적을 성취토록 돕는 실, 뮈세가 그린 주인공은 이 실을 끝내 놓지 않으면서도 자기 열정의 자유까지 움켜쥔 인물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현실의 삶은 인내 할 수 없을 것이라 내게 말한다. 내 안의 미궁에 웅크린 욕망 덩어리를 인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테세우스는 아드리아드네의 손을 놓음으로써 자멸하지 않았나!
이 한 토막의 이야기(뮈세의 소설)는 사랑을 소유하려한 천재 바이올린 장인의 이야기를 읽고 연상 작용이 촉발된 것인데, 장인(匠人)은 첫눈에 순수하고 신적인 목소리의 여인을 향한 사랑에 빠져들고, 그녀의 목소리를,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흑단의 바이올린을 제작한다. 그것은 예술의 지고한 고뇌와 절망적 대비를 통해 사랑과 예술의 존재와 소유 양식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며, 인생의 의미를 되뇌게 하는 작품이었다. ‘막상스 페르민’의 『검은 바이올린』은 이 장인의 주검을 실은 채 망자의 섬인 ‘산미켈레(San Michele)’ 묘역을 향해 떠 있는 검은 곤돌라의 정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내게 기억을 파헤치고 상상을 사방으로 펼치게 했다. 이 글은 이 장면으로 비롯된 소박한 단상이다.
상여를 실은 검은 곤돌라 ... 베네치아에 비가 내렸다. ...물방울들이 대운하 위에서 내는 소리. 곤돌라의 허리를 때리며 찰랑이는 물의 소리. 이따금 건물들 사이를 지나며 바람이 우는 소리만이 들렸다. - 막상스 페르민 作, 『검은 바이올린』, 난다 2021.7刊
이 장면은 상반된 감응으로 두 문인에 의해 써지고 있는데, 시인 ‘조지아 브로드스키’는 『베네치아의 겨울 빛』에서 “물 위를 미끄러져 가는 그 길에는 유독 에로틱한 면”이 있다며, “고르게 옻칠한 듯한 검은 수면과 완벽하게 합을 이루는 요소들의 에로티시즘”을 발견한다. 이와 달리 소설가 ‘토마스 만’은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변치 않고 전해 내려온 이 이상한 배는 ...관처럼 보일 정도로 색깔이 너무 특이하게 까맣다. ...그것은 범죄적 모험을 생각나게 할뿐더러, 더욱이 죽음 그 자체”같다며, “곤돌라의 타나토스적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사실 타나토스는 에로스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황금 화살과 납 화살, 사랑과 생명의 거부, 에로스의 폭주는 타나토스로 탈바꿈하며 존재를 뒤바꾸기 일쑤인 것처럼 우리 인간 삶의 실체이다. 이중성, 태생적, 즉 존재론적으로 이 양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와 테세우스의 끊임없는 투쟁의 존재자이다.
베네치아, 황금 빛 햇살이 튀어 오르는 수면과 수세기 동안 변함없이 인간의 시원적 모습들이 도처에서 존재를 환기케 하는 곳, 이 존재 반영의 도시는 그래서 사람들을 사랑에 도취케 하고, 도취된 인간들은 그 열정에 휘말려 가까이 있는 연인을 잊는다. 사랑과 이별의 도시,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도시, 제어되지 않는 욕망과 이성의 실이 함께하는 도시,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문학과 예술이 그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올 여름 가보게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