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지음, 차경아 옮김 / 까치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유는 사용에 따라서 감소하는 반면, 존재는 실천을 통해서 증대한다." - 161쪽 에서

 

근대 산업사회는 "무제한의 생산, 절대적 자유, 무한한 행복"이라는 삶의 이상을 부르짖으며 이 위대한 약속의 실현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오늘 이것이 가져다주리라 믿었던 것들을 위한 요구가 '경제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와 같이 정작 그 주체여야 했던 인간은 소외되고, 인간적 자질은 이에 따라 자기중심주의와 이기주의, 소유욕이라는 인간자연의 충동이 아니라 사회적 제약의 산물에 휘둘리는 현실만 드러내 보이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상품화라는 비인격화에 내몰리고, 자연에 대한 무참한 지배는 전지구적 전염병이라는 자연의 보복으로 궁박하기 그지없는 상태에 처해있다. 경제적 동인이라 부추긴 소유와 이기심은 부의 극단적 편재로 인한 계층 갈등을 고착화시키는 탐욕과 아집의 언어가 되어 시기와 혐오, 적대만 양산할 뿐이다. 이러한 현대사회의 위기는 인간 실존에 대한 전면적인 위협이라는 인식을 요구하기에 이르고, 인류의 운명, 즉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의 육체적 생존이 인간 정신의 근본적 변화에 매달"려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실에서 인간 삶의 두 가지 측면인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인간 성격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전제조건, 새로운 인간의 본질적 특성, 나아가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제언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이 저작은 반세기를 지나 그 통찰력을 빛낸다.

 

1. 두 실존 양식 - 소유 양식과 존재 양식

 

소유와 존재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간 체험의 형태이다. 꽃을 뿌리째 뽑아 손 안에 드는 것과 가까이 다가가 꽃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바라보는 행위처럼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여기에는 죽음’, ‘폭력하나 되는 공존이라는 대비가 있다. 프롬은 산업사회 이후 언어 사용의 변화에서도 존재에서 소유로 이전되는 인간 행위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나는 생각한다.''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라든가, 환자가 '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나는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다.'로 표현하는 것처럼 존재의 양식이 사라지고 소유의 양식이 인간을 포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주체적 경험을 하는 자아가 사라지고 소유한 그것으로 대치되어 버리는 것이다. 과연 나는 문제를 소유할 수 있는가? 하면 결코 그것은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의 물건이 아니라는 점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는 오늘의 사회가 전적으로 소유지향과 이윤추구의 사회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반영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형상은 우리네 일상, 독서, 대화, 기억, 지식, 신앙, 권위행사, 사랑에 이르기까지 소유양식에 점령된 현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독서의 경우에도 줄거리나 주인공이 죽는지 사는지와 같은 이야기 소유에 머물고 획득된 인식은 아무것도 없이 종료된다. 인간 통찰 능력의 심화나 그 감응이 삶의 새로운 변화의 동력이 되는 존재 양식의 독서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소유 양식은 지식으로부터 소외, 자아로부터의 소외만을 양산한다.

 

"그대의 존재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대가 그대의 삶을 덜 표출할수록,

그만큼 그대는 더 많이 소유하게 되고, 그만큼 그대의 소외된 삶은 더 커진다....“

- 225쪽 에서

 

반면 존재 양식은 소유 양식과 같이 생동하지 않는 것, 소외 된 것,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적 경험에 의해 보증되는 자기 창조의 능동적 과정이다. 존재는 공유와 결속의 양식이다. 지식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파고드는 사유행위 그 자체로서 존재 양식일 때의 생명력이다. 일용품, 재산, 지식, 사상 등등의 소유에 집착할 때 이것들은 자유의 족쇄가 되고 자기실현의 장애물이 되고 만다. 존재는 흘러가는 것이며, 생산적 표출이라는 의미에서 활동 상태이다. 반면 소유는 아집과 소외와 굴종을 요구한다. 3부로 구성된 이 저작의 고전적 지위는 이러한 두 실존 양식의 근본적 차이에 대한 분석을 서술하는 제2부일 것이다.

 

2. 소유의 본질, 존재의 지혜

 



왜 소유에 집착하는 것일까? 아마 "가장 중요한 대상은 자신의 자아일 것이다. 자신의 육체, 이름, 사회적 지위, 소유물(지식까지), 과시하고 싶은 이미지... 이들 허구적 자질의 혼합물을 자아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물을 자신을 확인하는 경험적 토대로 이해하고 있기에 소유는 자아 취득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그런데 이 소유는 지배 느낌의 상승, 새로운 자극의 무한 욕구이기에 타자의 경시와 무관심, 도구화, 종속화만을 요구한다. 결국 인간과 소유 대상의 관계는 살아있음의 온기, 연대감이 함께할 여지가 사라진다. 자신임을 확신하는 느낌이 사물을 소유하는 데에 의존하는 삶, 더구나 재산과 이윤 지향의 태도는 권력의 욕구, 폭력의 충동, 약탈과 탈취의 능력이 행복이라는 인식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와 달리 체험과 관계하는 존재 양식은 인간 자체를 묘사할 수 없듯이 사물처럼 술회할 수 없다. 이것은 자기를 성장시키고 흐르게 하며 고립된 자아의 감옥을 초극하는 능동적 활동이기에 그렇다. 소유와 달리 소외되지 않기에 자신의 행동을 주체로 체험하며, 살아있는 생산적 관계를 형성한다. 관계하는 대상에게 생명을 부여하며,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행위가 본성에 일치하는 능동성"이기에 이것은 활동성, 이성, 자유, 기쁨, 자기완성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에티카, ,개념정의 2,3,5; 명제 40,42)

 

이와 같이 소유지향성은 관계에 억압과 부담, 갈등과 질투로 채워지고, 경쟁심, 적대감, 두려움으로 특징지어진다. 반면 존재 지향성은 공존의 즐김, 이성과 사랑의 힘, 창조력 등 본질적 힘이 불어난다. 이 두 양식은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조차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육신, 자아, 재산, 실체와 같은 소유물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삶을 소유물로 간주하지 않는 존재 양식은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닌 삶에 대한 숙고라는 지혜로움이다. 인간 삶의 양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새삼 중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3. 새로운 인간과 사회

 

개인의 정신적 구조는 사회 경제적 구조와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소유 양식에 얽매여 있다. 그리고 이것을 벗어나야 함 또한 잘 알고 있다. 인간 자신의 보존본능을 위협하는 현실임에도 당장의 희생보다는 아득해 보이는 재난을 택하고 있다. 인간이 지닌 치명적 수동성, 과학기술과 경제사회체제의 낙관론과 기득권은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기에 그렇다. 프롬은 작심하고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이를 방해하는 난점들을 조목조목 열거하고 그를 분쇄할 정책들과 실천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실천과 동떨어진 통찰은 아무 실효가 없는 법이다." - 244쪽에서

 

인류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케 하고, 그 원인을 인식케 하며, 원인 제거와 함께 고통 해방을 위한 새로운 생활습관을 제시한다는 단계별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발군의 통찰에 이은 그 구체 실천 내용을 개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집중화로 수렴되지 않는 산업적 생산형태의 강구, 자유시장 경제 포기와 고도 분산화 경제로, 무제한 성장에서 선택적 성장으로, 노동에 대한 전혀 다른 인식 - 정신적 충족이 효율적 동인이 되게 하는, 이를테면 공공선의 기여로 노동의 가치를 재편하는 것과 같은, 또한 최저 생계비와 같은 생존근거의 부여 등 극복되어야 할 난제를 비롯하여 인간 욕구 본질에 대한 새로운 인간과학의 투자, 관료주의적 행태들(인간의 사물화, 수치화 취급, 양적 관점의 관리 등)의 폐지 등 오늘에도 급진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 생존에 대한 무제한적 권리 규범도 없는 인간 사회가 자신들의 애완동물에게는 인정하는 이 기이한 세계일지라도, 이 이기심과 탐욕은 인간 천성이 아니라 "늑대들 틈에서 늑대가 되어야 한다는 보편화된 압력의 결과"라는 시각이기에 프롬은 사회적 풍조를 바꾸려는 열망과 인류 20%의 실천이 이루어진다면 인류의 세계는 '존재의 도시'로 변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전망을 보이고 있다.

 

인간애로 가득한 프롬의 절절한, 그리고 인간 본성의 구석구석, 인간 사회 행태의 망라된 문제의식을 토대로 현대사회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제언은 지금 인류 사회 모두에게 새로운 공동체적 신체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각성,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그 어느 때보다 비상한 긴장들이 팽배해있는 오늘, 자기실현과 인간 존엄의 재수립, 인간의 유대를 포함한 정신적 가치의 새로운 정립을 제시하는 웅숭깊은 세계관은 새로운 삶의 방식, 문명 전환적 통찰의 요구인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귀중한 성찰적 지식의 표본이 되어 주리라는 기대도 갖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