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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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절망을 말하기는 쉽고 희망을 설정하는 일은 늘 어렵다.”

- 작가의 말에서, 253

 


이 소설집 전편에 흐르는 시선은 삶의 신산함과 생명에 대한 서글픈 연민과 애도로 다가온다, 그것은 국가권력에 의한 무력한 소시민의 생의 박탈(명태와 고래)로도 출현하고, 소위 타자와 함께라는 공동체의 연대를 부르짖는 사회이지만 물질이 매개되지 않는 관계는 결코 타자를 품지 못하는 존재들의 세상임(대장내시경 검사)을 드러내기도 한다. 또한 어쩌지 못하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숙연함, 삶의 해체와 소멸의 필연성에 대한 겸허한 기도이기도 하다.

 


이젠 점점 사라지는 인간 노동의 일자리는 고작 공무원이라는 한정된 정기적 채용의 입구 밖에 없을 정도로 청년들의 삶의 미래를 옥죈다. 권력을 움켜쥐자 자신의 인맥들을 국가 공무원에 버젓이 밀어넣고는 고작 9급인데 뭐가 문제냐며 오히려 국민을 향해 악다구니를 부리는 무지와 무감각의 파렴치한 망언이 나오기까지 한다. 단편 영자구준생(9급 준비생의 약어)’으로 불리는 노량진 고시텔에서 오매불망 9급이든 10급이든 붙으려 모여든 자기착취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비애어린 삶을 묘사하고 있다.

 


지방대학을 싸잡아 비하하는, 혹은 자조하는 지잡대(地雜大)’생의 고달픈 일상을 쫓아가는 것은 이 사회가 어떤 구조로 유지되는가의 한 단면일 것이다. 식당 아르바이트로 고시텔의 관리비를 조달하며 싸구려 컵 밥에 주린 배를 채워가는 9급 재수, 삼수생들의 삶을 이 정권, 이 사회체제,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이 알고 있기나 한지 모를 일이다.

 


소설집을 시작하는 단편 명태와 고래에서부터 , 저녁 내기 장기, 영자, 48 GOP는 등장인물들에서 어떤 연결고리같은 것이 느껴진다. 남과 북의 전쟁이라는 국가 폭력 사태의 오롯한 피해자인 소시민이 겪는 권력의 희생양 찾기의 제물이 되어 가족과 재산의 파괴와 분열은 물론 14년의 옥사를 겪어내야 했던, 한 인간의 삶을 앗아간 공권력의 무참함이 시리도록 그려진다. 수감되기 전의 어둠과 바람에 몰려 조업 중 군사분계선 북쪽으로 불가항력으로 흘러들어간 것이 그의 죄다. 빨갱이 낙인찍기의 무지한 사회에서 아내와 딸은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어쩌면 단편 의 주인공 여성이 그의 딸인 것만 같다.

 


물론 의 주인공은 남해안 작은 항구 도시 출신이니 동해안 포구와는 인연이 없다. 다만, 여자는 자신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고향 선후배 사이의 남편과 사이에 10살 남자아이를 두었을 때 이혼했다. 어느 날 경찰서로부터 아이의 범죄 판결에 따른 참고인 호출을 받는다. 성폭행, 특수강간 죄목으로 군사재판에 넘겨진 자신의 아이.

 


참고인 진술 과정 중 피해자의 아버지와 우연히 자리를 같이하게 되고. 남자의 투박한 손을 본다. 남자는 자살한 딸아이가 죽기 전 구조대원의 손을 잡았음을, 그 간절한 생의 의지를 증거하며 결코 자살한 것이 아님을 항변한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범죄 입증의 효력과는 무관한 이 진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잔혹하고 난폭한 스무 살 여자아이의 강간을 떠올리며 여자는 10년 후 출소할 아이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소심한 이사를 한다.

 


타인의 생에 대한 무관심과 잔인성, 그리고 욕망 충족을 위한 폭력의 사용은 마치 9급 공무원 입시를 위해 분투하는 누군가의 자리를 강탈하고는 뭐가 문제냐고 주절거리는 정치배의 추악한 욕망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는가?


 



작품 저녁 내기 장기에는 초로(初老)의 두 인물 이춘갑과 오개남이 등장한다. 국가 폭력의 전형적 피해자인 명태와 고래의 주인공은 이춘개. 사실 소설 속 인물 명으로 두 작품의 상관성을 말한다는 것은 터무니없기까지 하지만 사회체제라는 거대한 제도와 권력의 희생자들이라는 점에서 이춘갑은 이춘개를 승계, 세대를 대물림하는 인물상이라 해도 그리 그릇된 판단은 아닐 것이다.

 


이춘갑은 국가 경제 부도여파로 사업을 접어야 했던 인물이다. 부도로 인해 채무부담에서 헤어나 정상적 경제 거래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까지 오랜 고통을 겪는다. 2000년 전후를 통과했던 이 땅의 사람들이 정경유착을 통한 당대의 기득권자들이 유린한 사회의 고통을 보통의 서민들이 모두 뒤집어써야 했던 시절이다. 한편 오개남이란 인물은 단 한명을 뽑는 구청 청소과 임시직 채용에 무지막지하게 몰려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너무 가팔라 차량이 올라가지 못하는 산동네 쓰레기 수거를 제동장치도 없는 수레를 끌고 담당한다.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이면 쓰레기의 무게를 버티며 빙판의 경사진 언덕을 내려오는 일은 사고를 각오한 혈투에 가깝다. 여당 대표여, 들으시오! 고작 청소 임시직에도 삶의 모두를 걸어야 하는 인간들이 이 땅에는 수두룩하답니다. 오개남은 아이를 안고 내려가는 여인을 피하려다 사고를 당하고, 구청은 나이가 들어 정신이 산만해져 발생한 부주의라며 해고하고 만다. 이 사회 많은 사람들의 삶이 본질이 은폐된 권력의 착취와 불가분임을 외면할 수 없다. 오개남과 함께했던 누군가에게 버려졌던 개의 목에서 차마터지지 못하고 우 우~’하는 소리는 어쩌면 이들의 눈물을 머금은 탄식의 한 숨 같기만 하다.

 


이 소설집의 작품들에는 몇 가지 중첩되는 배경으로 바다와 포구가 등장하고. 깨진 얼음 위에 실려 먼 바다로 정처없이 끌려가며 구조를 요청하는 우우거리는 개, 쓰레기 수레 옆을 동행하며 우우하는 개 등이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소설의 배경들이 바다 연안의 작은 포구이다. 영자의 고향 마을도, 48 GOP임하사의 고향도, 명태와 고래의 향일포도 의 화자(話者)도 표제작인 저만치 혼자서도 바다와 멀지 않은 풍수상 버려진 장소이다.

 


개는 아마 소설 속 주인공들인 권력과 제도의 피해자이며 희생자들, 권력에 의해 발가벗겨진 이들의 또 다른 자아일 것이다. 또한 농업에도 어업에도 생활을 의탁할 수 없는 척박과 빈곤이 상시적인 곳을 에둘러 반농반어의 지역이라 표현하는 작은 포구 마을들도 우리네 체제와 제도 위선의 구역질나는 반감의 언어일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인간 간의 차이를 표시하는 기호들에 대해 둔감하고 그것이 은폐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곤 한다.

 


작가는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이 땅의 사람들이 대체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 어떻게 사유하여야 하는지를, 그래서 변화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타자 감응의 시간이 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 48 GOP를 읽다보면 전쟁 중 부대원 전체가 궤멸된 전투에서 전사한 임하사의 할아버지 임종석 이등중사의 마지막 편지를 되뇌는 할머니의 신음에 가까운 탄식이 들려온다.


 

....우리는 날마다 죽어나간다. 오늘밤에도 죽는다. 상치쌈이 먹고 싶다.


상치쌈이 먹고 싶다네. 아이고.“

 


오늘도 여전히 최전방 전선에 서서 북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자식들, 형제들이 있다. 그리고 70년 전에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탐욕스런 권력욕이 야기한 동족 전쟁에 내몰려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우리들의 부모, 조부모가 있다. 그들의 생을 과연 누가 처분할 권리를 지녔다는 것일까? 할머니가 70년 전 남편이 먹고 싶다던 보잘 것 없는 상치쌈을 잊지 못하고 거듭 반복하여 되뇌는 이 문장은 내 전신을 고통으로 훑는다.

 


소설집의 마지막에 표제작 저만치 혼자서의 제목은 고등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는 김소월 시인(詩人)산유화한 구절에 있는 표현이다. 입시를 위해 기계적으로 기술된 정형화된 해설 탓에 많은 이들이 피상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시()이기도 하다. 저만치는 인간과 자연의 거리이며, ‘혼자서는 고독하고 순수한 존재라는 암기된 해석이 따라 붙는다. 문학은 이렇게 기계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음미와 사유를 요구한다. 이 소설은 아마 이 작품집 전편에 흐르는 생의 쓸쓸하고 고독한 해체와 자연 순환에 대한 경건한 기도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음을 맞는 수녀들의 사목을 맡아 이를 지켜보며 신의 섭리 혹은 자연에 순응 할 수 없는 그 고통의 죄업을 끊임없이 기도하는 젊은 신부의 모습은 어쩌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 아니 인간 모두를 위한 대속의 행보만 같아 아린 슬픔이 몰려온다.

 


나는 분명하고 간결한 문장들로 구성되어 독특한 문체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 김훈 작가만이 발산하는 기사 보도형식의 분위기를 늘 즐거워한다. 그 명쾌한 문장들이 모여 은근하고 사색적이며 다채로운 의식들이 발하는 풍성한 작품으로 어느새 변화하여 묵직한 감응으로 마음 깊은 곳에 내려 앉아 찌든 정신을 새롭게 갱신하게 해준다. 작가는 한 이웃으로 이글을 썼다.” 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집은 우리 이웃, 바로 너와 나, ‘우리들의 이야기다. 우리를 연민할 이들이 누구이겠는가? 바로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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