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지혜 모리스 마테를링크 선집 1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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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면서 어느 순간 이 세계가 거대하게 짓누르는 힘을 어렴풋하게 느끼기 시작하며, 그 힘은 마치 어떤 불가항력의 숙명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속박!,  이 갇힌 듯 답답함과 곤혹스런 압박감에 시달릴 때, 시인의 시선은 인간보다 더한 장애를 지닌,   "자신을 흙에 묶어 놓은 자연의 법칙이라는 막대한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꽃, , 나무 등 식물의 위대하고 집요한 저항의 경이로움으로 향합니다.

 

"식물은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 20

 

과학자의 정밀한 관찰이 시인의 정신에 깃들어 삶에 대한 통찰로 이어질 때 그것은 아름다운 생의 지혜가 되어 가슴 뭉클한 공감의 언어로 인간이라는 고독한 존재를 위로합니다. 시인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식물이 얼마나 풍부한 상상력과 재능으로  '절대적 부동성의 끔찍한 법칙'에서 벗어나는지, 또한 미 결정의 상태로부터 미래를 위해 최선책을 찾아내려 하는지 찬란한 침묵의 드라마를 펼쳐 보여줍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가장 늦게 합류한 인간은 자신이 우주 대자연의 통제자인 듯 행동합니다. 그럼에도 이 존재가 실제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초라하고 협소한 것인지 모릅니다. 식물은 시간으로 가늠할 수 없는 훨씬 오랜 영겁의 시간동안 자기만의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운명을 개척해 온 존재입니다. 식물은 부동(不動)이라는 엄혹한 법칙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하고 비좁은 세계를 벗어나 숙명적으로 닫힌 공간을 극복할 줄 압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이처럼 운명적으로 부여된 시간을 벗어나고 감당키 어려워 보이는 속박의 법칙에서 해방된 우주로 진입하는 놀라운 지혜를 지닌 식물을 지켜보게 해주고, 그로부터 우리들에게 아주 다른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저절로 스며들도록 해줍니다.  수직으로 깍아지른 듯한 해안가 암벽의 작은 틈새에 내려앉은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중력에 저항하기 위해 나무 줄기에서 손처럼 뻗어 나온 뿌리가 바위를 붙잡고 있는 비틀린 몸체로 천공을 향해 풍성한 가지를 형성하고 있는 월계수 한 그루의 형상은 독특한 비행으로 날아가 바위 틈에 안착한 한 알 씨앗의 감동적인 사연을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한 자리에 붙박히도록 한 대자연의 법칙에 저항해 회복불능의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 창안된 다채로운 씨앗의 비행술, 그 비행을 위해 분출하는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부단하고도 가공할 노력을 기울였을 겁니다. '가시 도꼬마리'의 갈고리를 갖춘 씨앗 캡슐, '뚜껑 벚꽃'의 씨앗 냄비, '제라늄'의 다섯 캡슐 등 공간 극복을 향한 헤아릴 수 없는 씨앗들의 기발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자신의 삶을 연결해주던 끈마저 단호히 잘라내고 수면을 유영하는 '나사말' 수꽃의 행복에 이르기 위한 미래 상상력의 기막힌 노력의 모습은 초자연적 신비로움의 경지를 느끼게까지 합니다. 자가수분이 종()퇴화로 이어진다는 자연 만물의 이치를 일찌감치 깨우친 식물들의 타가 수분, 까마득한 세월동안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생존의 항구성 확보 전략임을 터득한 것이죠. 게다가 수분을 위해 제 때에 여닫는 '송이풀'의 정교한 꽃가루 주머니, 꿀벌의 정확한 동작과 다른 꽃으로의 이동시간까지 고려된 '깨꽃'의 타가수분 방식은 마치  "이성과 의지를 겸비한 듯" 보이기까지 합니다.

 

'에스파냐 금작화'가 꽃가루를 뿜어내는 그 발작적인 탄력의 힘은 어쩌면 탄도학자들을 매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인은  "가장 완벽하고 조화로운 지혜의 증거(76)"를 지닌 식물로서 '난초'를 꼽고 있습니다. 과연 더없이 복잡하고 독창적인 꽃의 양태, 이를테면 난초의 해부학적 시스템이라 할까요?   "꽃의 영혼이 보여주는 지극히 영웅적인 분투에 대한 놀라운 기록이라 할 정도로 기능과 모양이 가히 천재적으로 갖추어져 작동하지요.

 

계산, 조작, 치장, 발명, 추론 등이라 인간의 언어로 명명할만한 것들을, 이들 식물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타고난 운명을 극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세밀함과 분석적 시각을 투영해 인간의 욕망과 지혜의 비유를 동원하여 삶의 근원적 이해로 뻗고 있는 이 시적 상상력 넘치는 문장을 읽게 된 것은 제겐 행운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식물들의  "장엄한 저항의 몸짓과 짐짓 평화로워 보이는 용기, 그리고 예기치 못한 도약과 중력(105)"에 대해 끊임없는 반항의 기제를 다져 온 그 역동적 에너지를 보게 되면서 작은 억압의 힘에도 고통스러워하는 취약한 존재자임을 반성케 됩니다. 보잘것없는 잡초에서 화려하기 그지없는 금작화에 이르기까지 이들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들이 발산하는 색과 향기와 모양이 지닌 힘겨운 투쟁 속에서 오늘 우리네 치열한 생존 경쟁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이 지혜로운 문장들에 겸허와 용기를, 그 분투의 정신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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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0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7월 동안 쓰신 글 중 어떤 것으로도 당선될만 하신데, 이 리뷰로 받으셨군요

필리아 2022-08-10 17:50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축하댓글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