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열린책들 세계문학 255
알베르 카뮈 지음, 박언주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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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실존은 굴욕적이다." -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에서

 

"부조리는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비합리적 침묵간의 대면에서 태어난다. (...)

비합리성, 인간의 향수, 그리고 이 둘의 대면에서..." - 47쪽에서

 

산다는 것은 진정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살아가고 있다. 어떤 순간, 산다는 것의 이 습관같은 삶에 진저리 처질 때가 있다. 일상의 하찮음, 삶의 의미 부재, 고통의 무용함 등이 육신을 훑고 지나 갈 때면 마치 낯선 곳에 멍하니 서 있는 듯한 자신에 흠칫 놀라곤 한다. 삶의 유한함이 몰고 온 ''라는 개체와 이 세계의 불화(不和), 그 메워지지 않는 간극이 가슴 깊이 밀고 들어오는 느낌에 전율한다. 세계에 대한 이러한 공허와 분노가 치밀어 두리번거리며 방황하는 정신, 아니 의지를 다스리려 할 때면 카뮈의 이 에세이를 집어 들고 대체 어떻게  "희망의 전적인 부재, 계속적인 거부, 그리고 의식적인 불만을 전제"하면서 삶에 열정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지를 반복하며 곱씹게 된다.

 

세계는 전혀 이성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세계는 내 이해의 바깥에 있다. 카뮈는 말한다.  "만약 인간 사고에 대한 단 하나의 유의미한 역사를 써야 한다면,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후회와 무기력의 역사"일 것이라고. 인간의 몸인 내 육신은 죽음 앞에서 뒷걸음질 치지만 육체는 돌이킬 수 없는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 모순, 그럼에도 이 한계를 회피하기 위해 희망을, 삶을 초월하고 이상화하며, 혹은 삶을 배반하는 위대한 이념, 내세에 대한 희망과 같은 속임수에 내 삶을 걸지 못한다.

 

그래서 해독 불가능하고 한계가 정해져있는 세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하나의 원칙으로 환원될 수 없는 이 세계와 나는 불화한다. 그러니 선택지는 명확하다. 벗어나거나 버티는 것, 자살하거나 아니면 희망 없는 상태에서 고집스럽게 버텨내며 살아가는 것 중에서 골라야 한다. 나는 습관처럼 살고 있다. 매번 이 끔찍한 균열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는 원상복귀하고 마는 것이다. 여전히 나와 세계는 적의로 가득하다. 이 부조리를 끌어안고, 공허한 미래의 약속인 희망이라는 어휘를 떠나보낸 나는 '죽음의 초대를 삶의 원칙으로' 바꾸어 놓은 카뮈의 반항, 열정, 자유의 정신세계를 다시금 펼쳐들고 밑줄 그으며 문장을 거듭 거듭 읽어본다.

 

부조리란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명철한 이성"임을 모르지 않지만, 동경이나 희구, 희망이라는 미래는 내게 없음을 알면서 현실, 바로 지금의 삶에 고집스레 열정을 쏟아내는, 그 자체로 행복을 견인하는 것은 끊임없는 비약과 구원으로의 도피, 유혹을 낳는다. 카뮈가 그려낸 '리외'라는 인물을 안다. 어찌할 수 없는 재앙,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직면했을 때, 그가 묵묵히 하나하나의 생명을 위해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안다. 온통 고통과 인내를 수반하는 자기 몫의 삶을 다하는 것, 아마 세계와 한 인간 삶의 간극인 부조리에 대한 인식을 지니며 명징한 자기 이해를 수행하는 숭고함으로 내게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아름다움과 용기, 지성을 아는 것이 곧 내 삶의 방식으로 전용되지 않는다. 공허와 습관을 반복하는 무기력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거대한 바위를 산비탈로 굴러 올리기를 반복해야하는 형벌을 수행하는 '시지프', 그의 모든 힘, 열정을 쏟아 부어도 아무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다. 인간 삶의 전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카뮈는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팽팽하게 긴장한 육체의 반복적인 노력의 행위에서 부조리한 인간의 위대한 열정을 발굴해 낸다.

 

산 정상으로 바위를 올려놓았을 때 비탈로 다시금 굴러 내려간다. 시지프는 굴러 올리기 위해 아래로 되돌아간다. 그때 순전히 '인간적인 확신'으로 돌보다 더 단단하고 강한 시지프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의 비참한 조건(인간 조건의 한계)이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음을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은 가득 채워진다." 반항하는 인간, 인간 조건에 경멸을 보낼 수 있을 때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없음을, 그것이 삶의 행복일 수 있음을 상상해낸다.

 

한편으로 부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열광하는 것, 이것이 부조리한 창조자 앞에 펼쳐진 길이라고 한다. 허무에 자기만의 색깔을 입힐 수 있는 것, 자신의 조건에 맞서는 끈질긴 반항과 성과 없는 노력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집요함, 이것이 인간의 유일한 위엄임을 깊이 마음에 새겨 넣는다. 진실의 한계에 대한 정확한 판단, 그 절도와 힘을 생각해 본다. 카프카 (Das Schloss)의 인물 '측량기사 K'의 죽음을 깨우쳐 가는 무시무시한 배움의 과정을 삶이라 부르는 그 감동 어린 얼굴을 그려보게 본다. 모순 속에서 믿음을 길어내는 그 의지로 충만한 인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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