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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말 - 이 말이 내게로 스며들었다, 살아갈 힘을 얻었다
김연숙 지음 / 천년의상상 / 2020년 6월
평점 :
가끔 어떤 책은 그것과의 적정거리를 둘 수 없을 때가 있다. 가슴에 쿡 들이미는 육화된, 몸의 언어들이 발산하는 헤아릴 수 없는 의미들 탓이다. 『토지』의 인물들이 토해내는 켜켜이 체득된 언어들을 화두로 하여 세상, 사람, 관계들을 새삼스럽게 바라보고 이해케 하는 저자의 반추로 다져진 곡진한 이야기들은 그대로 좁아터진 내 이해 공간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새로 깊숙이 스며든다.
"어 가자. 간장 녹을 일이 어디 한두 가지가. 산 보듯 강 보듯, 가자! "
- 『토지』 6권 370쪽
언젠가부터 책을 읽기위해서는 안경을 벗어야 하고,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는 다시금 안경을 써야하는 노안이 저자 김연숙 교수처럼 내게도 찾아왔다. 이 현실을 "세상과 다시 관계 맺으라는 신의 명령"이라고, 그래서 "지금껏 바라보던, 세상 모든 것들과 다시금 거리를 조정하기 시작했다."는 저자의 이해는 그대로 내 이야기가 된다. 가난한 살림의 어미와 여동생을 두고 독립 운동을 떠나며 가족에 대한 연민으로 만주벌판을 향한 발걸음을 차마 떼지 못하는 석이를 향한 관수의 말에서 비롯된 배움의 사유이다. 이 호기로움의 말, 집착을 벗어나 새로운 거리 감각을 지닐 줄 알게 되는 담대함 앞에 또 하나의 산 언어를 배운다.
"초조함은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게 한다. (...) 성급한 해결을 원하는
조바심이 아닌 어떤 것을 해결책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
생각한다는 것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지름길을 믿지 않는 것이다. ...반추하는 것, ...에움길로 걷는 것, ...
충분히 주변을 살펴 보는 것, ...통찰하는 것이다." - P 113 中에서
이렇게 공감의 문장들을 열거하다보면 책을 모두 베껴야 할 성싶다. 「나에게 스며드는 말」,「질문하는 젊은이를 위하여」,「우리 곁에 있는 사람」이라는 3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 책에서 노화가 한창인 내가 '젊은이를 위한' 장(章)의 글들에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빠져 든 것은 어쩌면 여전히 삶의 미숙함에 허우적대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여기서의 '젊은이'는 '세상을 이해하고 배우려 하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련다. 대체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왜 지금껏 마치 전방만 있다는 듯이 급하게 질주하기만 했었나, 주변을 보지 못하는 편협과 외곬, 조바심에 이은 성급함, 어쩌면 삶 내내 정말의 생각이란 것을 하기 했었나를 자문하게 된다. 이러한 감상은 철새의 날개짓에 경외의 감탄을 쏟아내는 토지의 문장에 가닿게 한다.
"어중간히 눈 밝은 자들이 큰일이라. ... 순결한 마음 순박한 열정만이 저어
수만리 장천을 나는철새처럼 목적한 곳에 당도할 수 있는 게요."
- 『토지』 7권 274쪽
결과에 맞추어진 삶의 태도가 아니라 과정자체에 정성스런 날개짓을 하는 삶의 방식, 몸에 새기는 그것이 곧 배움이며 삶의 영원한 태도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어, 배움의 이야기는 여기서 그쳐야 하겠다.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야말로 '스며드는' 이야기를 놓칠까 우려되니 말이다. 일본 홋카이도 탄광에 강제징용 당했던 이가 탈출하며, 낯선 일본인 할머니로부터의 도움을 받으며 그이를 묘사하는 문장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조건 중 으뜸"이라는 '공감'의 의미를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데 마음속으로 늘 울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 『토지』 20권 154쪽
인간과 인간이 이어져 있음을 증명하는 이 말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줄 아는 능력을 발견하는 것은 바로 지금 우리네 모두에게 요구되는 유대와 연대의 요구성으로, 어두워졌던 눈을 밝게 해주는 듯하다. 옮겨 적고 싶은 문장이 한 둘이 아니다. 이제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가치와 삶의 태도를 요구하는 그런 분기점에 도달해 있다. 노동가치의 재정의를 비롯해 자본주의적 무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모두 변화되어야 하는 그런 지점에. 그런데 사람이 단지 비용의 대상으로만 인식되고,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들은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라는 비정규, 외주계약, 다단계 하도급이라는 방식으로 자본이익의 희생물이 되어버렸다.
"하늘땅을 보믄 살아볼 만한 세상인데 우째 사람들 맴이 눈비겉이 질척거리는지 모르겄다."
- 『토지』 10권 417쪽
세상의 일상을 굴러가게 하는 노동자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 우리 뒤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아니 보지 않으며,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조차 듣지 못하고, 듣지 않으며, 그들의 죽음을 통해야만 겨우 볼 따름이라는 말은 위협과 폭력에 시달리던 경비원 죽음,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던 청년의 죽음이라는 사건에서 무엇을 보고 깨우쳐야 하는지를 생각케 한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되는 공포가 지속되는 오늘, 우리의 사회, 그리고 나와 너인 우리들의 책임임을 통감하여야 함을.
이 책의 띠지에 써진 문장으로 마쳐야 겠다. "'설움이 왈칵 솟는 삶'을 용케 살아내는 이들에게", "'박경리의 말'이 전하는 '인간의 말'"이라는 문장만큼 이 책을 잘 설명할 수는 없기에 말이다. 감각되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는다고 오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말처럼 이 책은 어떤 사태를 현실화하는 시선을 갖추게 해주는 그런 여정이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