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연민이 없다. " -P237中에서
17편 장‧단편(掌‧短篇)으로 구성된 이 소설집의 중심인물들은 남편 혹은 남자는 모두 “어딘가로 가려고 애쓰는”중이어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이다. 또한 “침대 속으로 뛰어들기 전에 시청으로 달려갈 정도의 시간도 없는”, 그래서 아이들의 아버지도 불분명하며, 그렇다고 아이의 부양에 열성적인 인물들도 아니다. 그리곤 온통 “불행, 불행, 불행이야”를 외치며 회색빛 세상을 그려낸다. 가족의 끈끈한 관계성에 집착하는 내 관념에 반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계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가족관이 이 소설을 우울하게 읽게 한다. 또한 이건 아주 낯선 감정인데 어쩌면 남성 독자이며, 사회적 약자로 불리는 데 익숙한 경험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연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매 작품들은 그리 평범한 이야기로 읽히지도 않는다. 미혼모들이 즐비하게 등장하며, 지상 3.5m의 나무 가지위에 두 발을 흔들며 앉아 내려다보이는 동네 여자들과 그 아이들을 관찰하는 여자,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모두 다른 아이의 엄마, 이민자, 유대인, 노동자, 흑인사회 등 소시민 사회를 형성하는 이들의 신산한 일상이 그러하다, 게다가 지극히 건조하고 아무런 수식도 없이 날것 그대로 서술되는 이야기의 진행은 생경하다 못해 어색한 불쾌감조차 낳는다.
그런데 이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야기가 바로 소설이 하려는 진심이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소위 주류적 시선에 매몰되어 실체, 그 진실을 볼 수 있는 잃어버린 시선이 있었음을 생각게 된다. 페이지를 여는 「소망」이란 작품부터 자기 것을, 자신의 욕구를 한 번도 주장해 본 적 없던 여자, 남편을 위해, 가족을 위해 정작 자기 삶을 상실했던 여자가 비로소 외치는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소망’이 얼마나 막중한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발견하는 것은 뭔가 날카로운 통증이 된다.
한편, ‘페이스’라는 여성 인물이 주인공인 「페이스 오후의 한 나절」, 「나무에서 쉬는 페이스」, 「아버지와 나눈 대화」등 몇 편의 깊은 인상을 남기는 작품들이 있다. 이들 작품은 ‘페이스’라는 여성의 삶을 일관성 있게 바라보게 해준다. 더구나 비평가들은 작가 ‘그레이스 페일리’의 분신으로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페이스가 보고 느끼며 발설하는 언어들은 유대계 미국인으로서, 사회운동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의 페일리를 이해하는 우회적 읽기가 되어주며, 특히 소소한 일상적 풍경에 담아 여성으로서 마주해야만 하는 소외와 고독, 상실의 내재성을 절로 드러내는 이야기의 서사는 그 어떤 화려한 인문적 담론을 능가한다.
이 소설의 서술방식은 아주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너무도 실제적인 현상 그대로의 기술(記述)이어서 이야기의 논지가 마구 널뛰는가하면, 바로 이 산만한 대화가 오히려 풍부한 주제를 담아내게 한다. 매력인 동시에 읽기를 방해하는 끼어들기 식 대화와 급작스레 홀로 떠나는 상념의 세계가 마구 섞여든다. 이것이 바로 하루키가 이 소설을 “‘씹는 맛’의 중독성”이라 한 음미의 즐거움을 지닌 페일리의 소설만이 주는 묘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삶의 버거운 짐과 불행에 내쳐진 현실에도 불구하고 결코 “두 개의 점 사이에 확실한 선이 이어지는 그런 이야기”로서의 희망을 앗아가는 폐쇄적, 숙명적 운명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더욱 매혹적이다. 다섯 명의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은‘키티’가 페이스에게는 그 끊임없는 실수의 경험을 한 존재이기에 경청할 대상이 되며, 거리의 싸움을 접하는 것이 일리움의 공포상황, 『일리아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교육가치에 대한 해학은 열린 사유에 대한, 포용력을 지닌 세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아마 “현실의 인물이든, 가공의 인물이든 모든 이는 삶에서 열린 운명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소설,「아버지와 나눈 대화」의 문장들은 명백한 비극으로서의 우리네 운명에도 희망, 그 가능의 세계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특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록 삶에 연민이란 없을지언정, 중년의 뜨거운 에너지를 품고 달리는「장거리 달리기」를 하는 마흔 두 살 전후의 페이스처럼, 혹은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들」에서 공산주의자 그라놉스키, 일명 데니스의 노래로 울려 퍼지는 'For Our Son'처럼 세상은 예기치 않은 반응으로 “젊은이가 노인의 집을 찾아가는 횟수가”늘어나기도 한다. 마음대로 굴러다니는 페일리 특유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면 메마른 일상에서 웃음과 사랑, 즐거움을 찾아낼 수 도 있을 것이다.